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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호의 한반도 리뷰] 세 번째 ‘태양’을 준비하는 나라

 

지난 4월 15일은 북한의 최대명절이자 김일성의 생일인 ‘태양절’이 최대 변곡점을 맞이한 날로 기록될 것이다. 북한 매체에서 ‘태양절’ 언급이 일제히 사라지고 ‘4월 명절’ 정도로 축소 언급되면서 성대했던 경축 분위기가 차분해졌다. 김일성 생가로 선전되는 만경대는 ‘태앙의 성지’에서 ‘애국의 성지’로 대체되었다. 이틀 후인 17일 북한 조선중앙TV는 ‘친근한 어버이’라는 뮤직비디오 형태의 선전가요를 공개하며 노동신문을 통해 김정은을 ‘주체조선의 태양’으로 높였다. ‘세 번째 태양’의 등장이 기정사실화되었다. 1997년 김일성 사망 3주기에 맞춰 ‘태양절’과 함께 제도화된 것이 김일성 탄생년도인 1912년을 원년으로 하는 주체연호이다. 당시 김정일에 의한 선대의 우상화는 이듬해 구월산 양각봉 바위에 자신을 ‘21세기의 태양’으로 아로새기기 위한 사전 정지작업이었다. 이제 북한의 공적 영역에서 축소 흐름 하에 있는 주체연호의 위상도 장담할 수 없게 되었다. 김정일이 첫 세습통치의 당사자로서 ‘두 개의 태양’을 공존시켜 ‘백두혈통’의 계보를 강조했다면 김정은은 ‘하나의 태양’ 노선을 채택한 셈이다.

 

역사적으로 태양은 권위를 앞세운 중앙집권적 통치자들의 상징이었다. 로마제국이 추앙했던 무적의 태양신(Sol Invictus, 솔 인빅투스)는 황제를 향하는 영광스러운 호칭이었으며, 신성로마의 황제들, 프랑스 루이 14세, 독일의 히틀러는 권력에의 갈망을 지지 않는 태양에 투영시켰다. 로마는 공화정 시대부터 태양신을 숭배했고 트라야누스 황제 치세에는 태양신의 초상이 새겨진 동전도 발행되었다. 다만 고대 로마의 태양신이 어둠을 밝히는 절대 종교적 영역 내지는 권력자를 지켜주는 수호신, 칭송의 의미였다면 북한의 권력자들은 스스로가 태양을 자처한다는 면에서 차이가 있다.

 

돌이켜보면 로마의 태양신에 대한 믿음에 균열이 가고 기독교가 공인된 서기 313년 이후 제국은 쇠퇴의 길을 걸었다. 서기 100년 콜로세오 경기의 희생자에서 기독교 영웅으로 재탄생한 이그나티오스 주교의 처형과 같은 몇 가지 사건들이 축적되면서 권력의 속박에 익숙했던 로마인들의 양식을 변화시켰다. 마흔을 갓 넘긴 김정은 위원장이 주민들에게 선전하는 친근한 어버이나 수호자 역의 태양으로 수렴되기 위해 넘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 숭배와 믿음의 대상이었던 태양과 눈높이를 맞췄다는 것은 이른바 수령 무오류주의를 부정하고 실정에 대한 발빠른 사과와 잘못을 인정하던 기존의 통치 스타일인 김정은식 반성정치와도 사뭇 상충되는 지점이다.

 

기존의 통일정책 수정과 적대적 2국가론으로부터 이어지는 선대 지도자들과의 거리두기는 만 13년차 김정은 체제의 자신감이면서도 수령 결사옹위 완수를 위해 권력 재편이 긴요한 수세적 상황을 양가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김정은식 ‘태양’ 정치는 주민들에게 엄격한 정보 통제와 선전을 통해 국가 이데올로기와 지도자에 대한 더욱 높은 수준의 충성을 자양분 삼을 것이다. 또한 앞선 ‘두 개의 태양’을 기억하는 주민들 사이의 혼란과 불만, 남한 문화에 노출된 청년세대 사이의 ‘사상감정’를 관리하기 위해 국제정세의 진영화 호름과 안보적 위기상황도 내치에 동원될 것이다. 권력자 스스로 부여한 국가적 어버이상과 태양의 지위는 영속적인가? 우리는 이미 답을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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