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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과 양심]문명의 충돌 對 조선의 포용 융화정신

 

아름다운 정원에는 다양한 식물들과 화려한 꽃들이 다채롭고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다. 때문에 한 가지 식물과 꽃들로만 채워진 공간은 정원이라 할 수 없고 아름답지도 않을 것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 역시 다양한 인종과 많은 문화권들이 정원의 꽃밭처럼 공존하며 조화를 이룬다면, 정원을 아름답게 가꾸는 사람의 기쁨처럼 신(神) 또한 그러하리라.

오랫동안 인간들은 지구 곳곳에서 문명을 일으켜왔다. 그 과정에서 세력 확장과 통합으로 집단 간에 충돌현상은 당연한 절차였다. 그런 충돌현상들 중에서 우리는 십자군원정과 이교도간의 대규모 전쟁들이 세계사 속에서 두드러짐을 알 수 있다. 이는 한 문명권의 핵심세력이 타 문명권에 대한 경계심으로 점차 상대에 대한 정보와 이해가 깊어짐에 따른 정복과 소유의 욕구에 기인한다. 그리고 다수를 전쟁에 동원, 결집하기 위해 “신을 위하여”, “악마 이교도집단으로부터 세상을 구원하자”로 쉽게 적개심과 호전성을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9·11테러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던 정치학자 사무엘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은 필자에게 적지 않은 혐오감을 느끼게 했던 책으로 기억된다. 그는 외형적으로는 문명의 충돌을 제어하고자 하는 평화지향론이지만, 우월한 서구사회 대(對) 열등한 비서구사회란 관점 하에서 세계를 상호 적대적 이분법적 관계로 구분했다.

헌팅턴은 세계문명권을 종교적 특징에 따라 8개 권역으로 나눈다. 서구 기독교, 동방정교, 이슬람교, 인도의 힌두교, 중국의 유교, 일본의 신도, 라틴아메리카 그리고 아프리카 문명이 그것이다. 즉, 그가 말하는 문명의 충돌은 종교전쟁과 다름이 아니다. 미국의 보수전략가이기도 한 그는 8개 문명 중에서 서구 기독교 문명을 중심으로 삼고, 이슬람과의 대립을 우선적으로 거론하며 ‘피의 경계선을 가진 문명’으로 규정한다. 또한 그동안 이슬람권에 대한 갈등의 근본적인 원인을 간과한 채 이슬람의 적대감으로 유발하는 두 문명의 충돌 가능성을 진단한다.

뿐만 아니라 헌팅턴은 이슬람 국가들에게 중국과 북한의 무기판매를 거론하며 이슬람과 유교권의 동맹가능성을 두고 적대문명권으로 가시화하기도 했다. 그는 이러한 문명들 간의 충돌로 국제질서가 위태로워짐을 경고하면서도 이면에는 우월적인 서구기독교문명의 선도적 역할을 강조하려는 의도이다. 따라서 필자에게 각인된 그의 저서는 탈냉전 시대를 맞아 미국과 소련 양극의 대립과 긴장관계에서만 가능했던 체제유지를 위한 새로운 대립적 세계와 적을 알려주려는 지침서 정도로 밖에 평가되지 않았다.

그런 까닭에 ‘선과 악의 대결로서 전쟁’ 그리고 ‘미국 아니면 테러리스트를 선택하라’는 당시 미국 대통령이 세계를 향한 선포에서는 헌팅턴의 이분법적 문명충돌론의 그림자는 물론, 십자군원정을 호소한 교황 우르반 2세의 메아리 조차 느끼기에 충분했다.

헌팅턴이 구분한 세계 8대 문명권에서 빠뜨린 한국은 세계에서 유래 없는 기록유산의 나라이다. 고구려, 백제, 신라 왕조를 차치하고 조선왕조처럼 14세기 이후에 500년 이상의 왕국은 세계사에서 찾아볼 수 없다. 그 비결은 강력한 왕권이 아니라 신하와 백성들과의 소통 제도 때문이었다. 왕은 신하의 상소는 물론, 신문고와 격쟁을 날마다 해결하며 백성들과 만났고, 사관 없이는 누구도 독대할 수 없는 엄격한 제도 하에 통치했다.

더구나 당대의 석학들과의 경연에 참석해 성군이 되는 노력이 당시에 왕들의 필수덕목이었으니 세계의 왕들 중에서 가장 고달픈 왕의 자리였던 것이 분명하다. 그러한 조선은 소통과 합리성을 근간으로 포용과 융화의 정신을 발휘함으로써 긴 왕조를 유지했다. 한국은 세계와 공유할 수 있는 조선의 기록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500년 간 사관들이 기록한 6천400만자 실록과 2억 5천만자의 승정원일기 등 무수한 기록보물들을 간직하고 있다. 이 속에는 조선의 포용과 융화의 정신이 녹아있다. 지금 종교전쟁, 문명충돌의 시기는 끝났다. 한국의 포용과 융화의 정신이 되살아나 다채로운 공존문명시대를 개막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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