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詩산책]김삼환"검은 구두를 보며"

2012.07.04 19:55:08 13면

 

검은 구두 뒤축으로 달그림자 밟고 와선

지고 온 내 허물을 자정 넘어 벗는다

무량히 쌓이는 비늘 그 하루가 곤하다



빗금으로 솔질하며 지난 흔적지우다가

토사가 씻겨 내리는 어느 계곡 물소리

구두를 닦는 아침에 환청으로 듣는다



무수한 발걸음이 역사가 되기 위해

오로지 그 무게를 지탱해 준 검은 구두

한 줄기 햇빛을 받는 행사장이 더 환하다

- 김삼환시인 , 계간 ‘시와 문화’ / 2012년 / 여름호

“토사가 씻겨 내리는 어느 계곡 물소리”에 구두를 내어놓는다면 곤한 어제가, 때로는 모르는 척 타협했던 순간들이 말끔하게 흘러갈까? 갑자기 구두를 닦는 손이 제의(祭儀)처럼 느껴진다. 어제의 시간에서 내일의 시간으로 건너가는 세례의식 같은 것? 구두만큼 제 주인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 또 있을까? 옷은 세탁을 해서 일그러진 모양을 다시 잡아줄 수도 있고 리폼을 통해 거듭날 수도 있지만 구두는 그럴 수가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제 주인의 발을 그대로 현상해 낼 뿐이다. 조금 과장한다면 구두는 그야말로 한 개인 역사의 상징물이다. 얼마나 어떻게 걸어왔는지를 여실히 드러내놓는 시간의 산물이다. 새 구두를 원하면서도 현관에 서면 늘 신던 구두한테로 발길이 향한다. 고집 센 발, 고집 센 기억으로 오늘도 편식 중이다. /박홍점 시인

 

경기신문 webmaster@kgnews.co.kr
저작권자 © 경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영덕동 974-14번지 3층 경기신문사 | 대표전화 : 031) 268-8114 | 팩스 : 031) 268-8393 | 청소년보호책임자 : 엄순엽 법인명 : ㈜경기신문사 | 제호 : 경기신문 | 등록번호 : 경기 가 00006 | 등록일 : 2002-04-06 | 발행일 : 2002-04-06 | 발행인·편집인 : 김대훈 | ISSN 2635-9790 경기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Copyright © 2020 경기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kg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