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詩산책]아버지의 집

2012.11.20 21:29:57 13면

 

고추꽃이 지고 나면 고추 열매가 매달립니다.

가지꽃이 지고 나면 가지 열매가 자랍니다.

오이꽃이 지고 나면 오이 열매가 매달립니다.

상추밭에서 볼일 보시다가 아버지가 들킵니다.

어머니 부지깽이가 온 집안을 들쑤십니다.



봉숭아꽃이 지고 나면 누이의 꿈은 사라집니다.

나팔꽃이 오므라들면 아침도 저녁이 됩니다.

나리꽃은 활짝 피어도 징그럽기 짝이 없습니다.

어머니 몸 꽃이 붉게 피던 시절에는

아버지도 꽃밭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배춧잎에 배추벌레 일일이 잡아내던 시절도

상추 잎에 벌레길 이리저리 뜯어내던 시절도

먹을 수 있을 때 먹는 것이 싱그러운 입맛이라.

알고 보면 아버지의 아버지 되는 가르침이었으니

배추꽃이 다 지도록 텃밭을 버려두지는 말라.
/장종권
 

 

 

이 시 한 편이 텃밭의 성쇠를 한 눈에 보여준다. 싱싱하다. 생명의 연속성이 있고 푸름과 푸름이 연대감을 이뤄 무성해 가는 텃밭의 분주함을 보여준다. 가족사를 잘 보여준다. 한 때 부지깽이는 어머니가 가진 가르침 대이다. 나도 어릴 때 장난꾸러기여서 그 날 사준 고무신을 신고 숲이며 바닷가며 뛰어다니다가 그 날 찢어져서 저녁에 부지깽이를 피해 달아났다가 별 초롱초롱할 때 집으로 그야말로 몰래 숨어 들어간 적이 있다. 그때 부엌에 잘 차려진 밥상이 얼마나 고맙고 또 어머니를 존경하게 만들던지…. 이 시에는 그런 가족사를 가족의 내력을 다시 한 번 더듬어 보게 한다. 모든 것은 적당할 때라는 시기가 있음도 잘 보여준다. 배추꽃이 다 지기 전 또 뭔가 계절에 맞게 뿌려야 될 씨앗이 있기에 어디서나 텃밭은 푸른 것이다. 텃밭 곁에 빨갛게 익은 앵두를 매달아 놓고 푸른 것이다. 이 시를 통해 나도 오늘 기억에 있는 텃밭으로 나가 마음껏 물이라도 흠뻑 주고 싶은 것이다. /김왕노 시인

- 시인축구단 공동시집 /토요일이면 지구를 걷어차고 싶다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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