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시 산책]목련

2013.05.07 20:53:02 20면

목련                                                                                           /전기철

세밑이었어요. 杜甫는 今夕行.

집으로 가는 길은 멀게만 느껴졌어요.

종묘 앞을 지나가고 있었어요.

“자고 가요!” 할머니였어요.

어둠을 휩쓸어가고 있는 거리는 몽상으로

얼룩졌어요. “자고 가요!” 나는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신의 말씀 때문에

종종걸음을 치며 안절부절 못했어요.

불량배들의 놀이터인 도시 서울에서는

길을 잃어야 제대로 산다고 했던가요.

今夕行! 세상의 표지는 너무 우울했어요.

불행한 사람이 세상을 구한다고 했던가요.

“자고 가요!” 신의 말씀을 어기고

뒤돌아보니 저 멀리 목련의 눈이

흔들리고 있었어요. 라 캄파넬라!

-전기철 시집 <누이의 방>에서-

 

 

 

한 번쯤은 이성을 잃고 흐트러지고 싶을 때도 있다. 저물어가는 거리로 나서며 제발 나도 한 번쯤은 모든 굴레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나쁜 짓을 저지르고 싶다. 나를 숨기고 제멋대로 노는 사람들과 어울려 하루 저녁을 보낸다고 해서 커다란 죄가 아닐성도 싶다. 그러나 그러한 방황으로도 끝내 나쁜 짓을 저지르지 못하고 집으로 발길을 돌리고야 만다. 저무는 거리의 유혹하는 모든 것들이 마침내는 목련꽃처럼 하얗게 피어버리고 만다. 순식간에 아름다운 종소리가 밤거리를 뒤흔든다. 본능을 유혹하는 저 어두운 것들의 정체조차도 아름다운 생명의 신호로 전환시켜버리는 시인의 재주가 부럽다. 본능을 감추고 이성적으로 살아가는 일이 편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불편한 이성과 합리적인 사고로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 하루 저녁의 본능적인 방황은 아름다울 만하다.

/장종권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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