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시 산책]수요일

2013.07.02 20:25:21 20면

 

수요일                                                              /최문자

진정한 지옥이란

미지근한 물이

너무 오래 흐르는 것



시는 월요일은 모든 것인 듯

화요일엔 모든 것이 아닌 듯

들쥐처럼 멀리 지나가는

월요일 화요일

진정으로 너를 찾아오는 수요일은

꽃말 있는 꽃이 되려는 중



히말라야에서 들었다

뿌리에서 올라오는 꽝꽝 얼린 꽃말



월요일 화요일 보내 놓고

수요일은

히말라야의 꽃말이 필요하다

- 최문자 시집 <사과 사이사이 새>민음사 2012

 

그래, 내세의 지옥이 유황불처럼 화끈하다면, 현세의 진정한 지옥은 그저 미지근한 삶이 아니겠는가. 한 주간의 생애가 월요일로부터 출발한다고 믿는 이들에게는 월요일이 모든 것이 되리라만, 단 하루의 고단함으로 화요일은 이내 모든 것이 아닌 것처럼 되어 버리지. 아, 그때 찾아오는 수요일은 꽃 한 송이 피울 수 없는 꽝꽝 얼어버린 황량한 지평으로 보일 거야. 동결(凍結)의 땅 저 깊숙한 곳으로부터 올라오는 뿌리의 숨줄기가 보인다면, 그 줄기를 따라 물이 오른다면, 그래서 그 수맥을 따라 피어나는 꽃이 있다면, 40여년 시와 신앙과 선생으로 살며 수요일마다 미지근하거나 아예 얼어붙은 사람들의 가슴을 녹이는 수맥이 되어 살아있음의 꽃말을 퍼 올리고 있는 시인의 모성이 참으로 삭막한 세상의 히말라야, 그 수요일의 꽃말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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