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시산책]고향

2019.06.20 19:45:00 16면

고향

                                /김언

아주 멀고 조금 더 멀다. 조금 더 멀고 아마 더 멀 것이다. 조금도 가깝지 않다. 조금 더 가깝지 않은 곳에 있다. 조금 더 가깝지 않은 것이 조금 더 있다. 조금 더 있으려고 조금 더 빠져 있다. 조금씩 빠지고 있다. 다시 빠지고 있다. 다시 빠져나와야 있다. 있는 것만 알고 있다. 없는 것도 알고 있다. 어디든지 어디에도 없는 것이 있다. 조금 더 있고 아마 더 있을 것이다. 그걸 생각하려고 더 있을 것이다. 여기서 조금도 가깝지 않다. 거기서도 아주 멀다. 조금 더 깊은 자국이 생겼다. 그걸 밟고 간다. 하마터면 지나쳤을 것이다.

 

 

‘고향’을 문장으로 산출하는 김언 시인의 현상학적 사유에 가깝다. 그는 모든 문장에서 (‘고향’이라는) 주어를 괄호로 묶어버리고, ‘고향’에 대한 우리의 공통감각을 다시 쓴다. 그는 ‘고향’이라는 물리적이고 실체적인 충만함보다는 완전한 개체로 추상하고 3차원으로 선형화된 ‘고향’만을 남기고 있다는 말이다. 이러한 사태는 ‘멀다’와 ‘가깝다’에 투영된 거리감과 ‘더 있다’와 ‘더 빠져 있다’라는 집체감을 통해서 더욱 선명해지는데, 이어지는 문장에서도 그는 ‘고향’을 아주 낯선 어떤 것으로 변형시켜버린다. 하지만 주어가 생략된 이 문장들의 반복은 ‘고향’이라는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실체와 결합하면서 오히려 우리의 감각에 집적된 침묵을 소란스럽게 만들고, 결핍 또한 욕망과 의지로 탈바꿈시킨다./박성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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