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치매, 국가가 적극 나서야 한다

2025.01.13 06:00:00 13면

치매 환자와 그 가족 위한 국가의 정책적 개선 시급하다

지난 2023년 9월 경기도 수원시에서 80대 남편이 70대 아내를 살해하는 일이 벌어졌다. 아내는 치매를 앓고 있었다. 남편은 2020년 치매 진단을 받은 아내를 4년간 홀로 돌봐왔다. 그러나 갈수록 아내의 증세가 악화되고 자녀들로부터 적절한 도움도 받지 못한 상태에서 간병을 혼자의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자 살해하기로 했다. 아내에게 독성분이 있는 약을 먹인 뒤 자신도 음독해 생을 마감하려고 했다. 그러나 아내가 독성분 약에 반응을 보이지 않자 목을 졸랐다고 한다.

 

당시 재판부는 “60여년을 함께한 배우자를 살해한 것으로, 살인은 어떠한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중대한 범죄”라면서도 “다만 남편으로서 피해자를 성실히 부양했고 간호를 도맡아 온 점, 고령으로 심신이 쇠약한 피고인이 피해자를 돌보는 것이 한계에 도달했던 것으로 보이고 자녀들이 선처를 탄원하고 있는 점 등을 참작” 징역 3년을 선고했다. 그리고 지난달 12일 대법원은 징역 3년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간병살인’은 오랜 지병 등을 앓는 가족을 병간호하던 보호자가 지쳐 결국 환자를 살해하는 범죄다. 간병살인은 계속되고 있다. 2022년 5월엔 인천 연수구에 있는 아파트에서 딸에게 수면제를 먹여 잠들게 한 뒤 베개 등으로 질식시켜 살해한 60대 여성이 구속됐다. 자신 역시 다량의 수면제를 복용, 목숨을 끊으려 했으나 6시간 만에 발견돼 미수에 그쳤다. 이 여성은 중증 장애 딸을 38년간 간병해 왔다. 2023년 1월 인천지법은 살인 혐의로 기소된 이 여성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선처 이유로 “이씨는 딸에게 최선을 다했고, 큰 죄책감 속에서 삶을 이어 나갈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2023년 7월 서울에서는 70대 배우자를 2년여 간 병간호하다 살해한 60대 남성이 법원으로부터 징역 5년 형을 받았다. 10월에는 대구 남구에서 60대 아버지가 아들을 살해하고 극단적 선택을 시도한 사건이 일어났다. 아들은 1급 뇌 병변 장애가 있었다. 지난 해 1월 대구 달서구에서는 50대 아들이 80대 아버지를 살해하고 극단적 선택을 했다. 아버지는 10년간 치매를 앓고 있었다.

 

장기적인 신체적 질병이 원인인 사례도 있지만 정신적인 문제, 즉 치매나 조현병, 자폐성 장애, 지적장애 등 발달장애로 인한 간병살인 사례가 빈번하다. 이들을 돌보는 부모, 자식, 형제자매 등 가족들이 기약 없는 수발에 지쳐 목숨을 빼앗게 되는 것이다. 치매 등 정신성 질환자의 보호자가 간병을 하면서 받는 스트레스는 상상을 초월한다. 간병을 하느라 자신의 생애를 온전히 포기해야 한다. 직장이나 학업을 중단하는 것은 물론 대부분은 병원비와 약값, 생활비 등 금전적으로 쪼들리게 된다. 여기에 더해 매끼니 식사수발은 물론 대소변까지도 치워줘야 하는 등 육체·정신적 고통은 형언할 수 없다. 이를 견디지 못한 나머지 간병살인이라는 죄까지 저지르게 되는 것이다.

 

아내나 남편, 혹은 부모나 자식 등 가족에게 의존해야만 하는 이의 생명 역시 존엄하다. 따라서 소중한 목숨을 앗아갈 수 있는 권리를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들의 생명을 빼앗는 행위는 절대로 합리화될 수 없다. 지금 우리 사회는 초고령화를 향해 가고 있다. 앞으로 치매로 인한 사회적 문제는 더욱 커질 것이다. 그리고 간병살인 범죄 역시 늘어날 수 있다.

 

치매환자를 보살피는 일을 단지 개인의 문제라고 지나쳐서는 안 된다. 간병살인이라는 극단적 사건들에서 볼 수 있듯이 개인과 해당 가정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사회와 국가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국가와 사회는 지금도 치매환자와 가족에 대한 충분한 지원을 하지 않고 있다. 그저 ‘남의 일’ ‘안타까운 사정’일 뿐이다.

 

치매는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병이다. 따라서 치매 환자는 내가 될 수 있고, 치매환자를 돌봐야 하는 사람은 내 가족이 될 수도 있다. 치매 환자와 그 가족들을 위해 국가·사회가 버팀목이 돼야 한다. 정책적 개선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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