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는 각종 공해에 시달리고 있다. 우리를 피곤하게 만드는 공해에는, 미세먼지와 같은 공해 문제도 있고, 자동차와 같은 소음 공해도 있다. 그런데 우리 국민은 정치권에서 발생하는 공해에도 시달려야 한다. 그런데 요즘에는 소음 공해와 정치적 공해가 합쳐지는 모양새다. “헌법 재판관들을 처단하라”, “"공수처, 선관위, 헌법재판소, 불법과 파행을 자행하고 있다. 이 모두 때려 부숴야된다. 쳐부수자!", "지금 윤석열이 온갖 거짓말을 하고 잔꾀를 부리고 어느 신부님 말씀대로 'X랄 X광'을 하고 있지만 윤석열은 패배할 수밖에 없다" 등등의 말들은 정치 공해와 소음 공해가 합쳐진 전형적인 모습이다.
물론 진보, 보수 각 진영의 적극 지지층들은 자기 진영의 이런 소리를 소음으로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시원한 ‘사이다 발언‘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유권자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는 중도층들은 이런 발언을 들으면 정말 피곤함을 느낄 것이다. 동아시아 연구원 측의 조사(동아시아연구원이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1월 22일부터 23일까지 18세 이상 1514명을 대상으로 웹 조사를 실시,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2.52%P.)에 따르면, 현재 중도층의 비율은 전체 유권자의 49%를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만일 조기 대선을 치른다고 가정하면, 이 정도 규모의 중도층은 절대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런 발언을 쏟아내는 정치인들은 이런 상황을 모르고 있는지가 궁금해진다.
이들은 조기 대선이 치러진다고 하더라도, 이번 대선은 양대 진영 지지자들의 결집 정도에 따라 승패가 갈린다고 보고 있는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강성 지지층의 눈치를 보며, 이들 강성 지지층이 ‘원하는’ 발언을 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진짜 진영 구도로 진행된다고 하더라도, 중도층은 선거 승리의 캐스팅 보터가 될 수 있다는 데 있다. 즉, 중도층의 목소리가 크지 않다고 하더라도, 이들의 선택이 선거 승패를 좌우할 것이라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강성 지지층의 눈치를 살피며, 정치적 양극화에 편승하면, 혹시 있을지 모르는 대선에서 패배를 재촉하는 꼴이 될 것이다. 정치적 양극화에 편승하면 안 되는 이유는 또 있다, 지금처럼 정치적 양극화가 극에 달하면 정치는 사라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 그것이다.
상대를 인정하고, 상대를 협상의 파트너로 생각해야 존재할 수 있는 것이 정치인데, 지금처럼 언어 폭력을 통해 정치적 양극화에 편승하면 정치적 상대방은 타도의 대상으로 전락하게 되고, 협상이라는 단어와 타협이라는 단어도 사라지게 된다. 이런 단어가 사라진 상태에서 정치는 존재할 수가 없다. 정치가 사라지면, 정치인도 궁극적으로는 사라지게 된다. 다시 말해서, 이런 자극적인 언어를 구사하며 자기 진영의 강성 지지층만을 바라본다면, 이는 결국 스스로 자신의 존재를 없애버리는 행위라는 것이다.
종합적으로 보면, ‘피곤 사회’는 결국 정치적 양극화의 산물이라고 볼 수 있다. ‘피곤 사회’는 중도층에게만 피곤을 선사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은 극단적인 소음을 만드는 정치 세력에게도 부메랑이 되어 돌아갈 것이라는 점을 정치권은 기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