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경기도 31개 시·군 단체장. (사진=경기신문DB)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의 최종 선고가 임박한 가운데 경기도 기초자치단체장들의 반응이 국민 여론과는 온도차를 보이고 있다. 경기도 31개 시·군 단체장 중 더불어민주당 소속 9명은 모두 ‘탄핵 찬성’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힌 반면, 국민의힘 소속 22명 중 대다수는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은 채 침묵을 유지하고 있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이 같은 ‘묵묵부답’이 내년 지방선거 공천을 의식한 ‘정무적 침묵’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경기신문이 27일 도내 31개 시·군 단체장들의 탄핵에 대한 입장을 확인한 결과, 더불어민주당 소속 이재준(수원시), 정명근(화성시), 조용익(부천시), 정장선(평택시), 최대호(안양시), 임병택(시흥시), 김경일(파주시), 박승원(광명시), 김보라(안성시) 등 9명은 탄핵 찬성을 분명히 했다.
반면 국민의힘 소속 단체장 중에서는 방세환(광주시)과 김덕현(연천군)만이 공개적으로 탄핵 반대 입장을 밝혔다. 이현재(하남시)와 백영현(포천시)은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존중한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내놓았고, 나머지 18명의 단체장들은 공식 답변을 피하거나 “입장 표명이 어렵다”는 입장을 반복했다.
이 같은 침묵 기조는 최근 여론 흐름과는 괴리를 보인다. 한국갤럽이 지난 18일부터 20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성인 1003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95% 신뢰수준, 표본오차 ±3.1%p) 결과에 따르면 윤 대통령 탄핵에 대해 ‘찬성한다’는 응답이 58%로 과반을 넘었다. ‘반대’는 36%였다. 정치 성향별로는 진보층의 95%가 찬성, 보수층은 71%가 반대했고, 중도층에서도 찬성 의견이 64%로 나타났다. 연령대별로는 70대 이상을 제외한 전 세대에서 찬성이 우세했다.
시민들의 반응도 싸늘하다. 고양시에 거주하는 한 시민은 “시장이 이 정도 중대 사안에 대해서 아무런 입장도 밝히지 않는다는 건 민심을 무시하는 것과 같다”며 “결국 윗선 눈치를 보고 있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다른 시민은 “시장 SNS에 탄핵 관련 글이 하나도 없다. 이런 때일수록 대표자로서 소신 있는 입장을 보여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기초단체장들의 공천 의존도는 높은 편이다. 시장·군수 선거에서 정당 공천이 당선 여부를 결정짓는 주요 요소로 작용하는 만큼, 중앙당과의 관계가 공천권과 직결되는 경우가 많다. 이에 국민의힘 소속 단체장들은 정치적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탄핵 관련 발언을 자제하는 것으로 보인다.
익명을 요구한 지자체 관계자는 “우리는 이미 내부적으로 어느 정도 입장을 정리하고 있지만, 언론에 드러내기는 부담스럽다”며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공천을 받아야 하는 입장에서 대통령 탄핵이라는 민감한 사안에 함부로 말을 꺼내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발언 하나 잘못했다가 당내에서 찍히면 공천이 어려워지는 현실을 모르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정치권에서는 이러한 ‘정무적 침묵’이 오히려 정치적 책임 회피로 비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 정치학 교수는 “지방자치단체장은 행정가이자 정치인으로서 지역 민심을 대변해야 하는 자리”라며 “탄핵과 같은 국가적 이슈에서 침묵하는 것은 지방자치의 정신과 맞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시민사회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유권자들에게 명확한 태도를 보이는 것이 단체장들의 책임”이라며 “소신보다 눈치를, 민심보다 공천을 택한 단체장은 결국 표로 심판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헌법재판소는 이르면 4월 초 윤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를 내릴 예정이다. 결과에 따라 정치권 전반에 상당한 파장이 예상되는 가운데, 도내 단체장들의 침묵이 향후 어떤 후폭풍을 불러올지 귀추가 주목된다.
[ 경기신문 = 박진석·장진·박민정 기자·박희상 수습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