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의 인기가 국내를 넘어 해외 시청자들까지 사로잡으며 K드라마의 힘을 보여줬다. 특히 시대극이면서 한국인의 독특한 정서가 세계에서도 통한다는 것을 입증하면서 오징어게임 열풍 이후 가장 큰 수확을 거두고 있다.
'폭싹 속았수다'의 흥행으로 넷플릭스는 2년 만에 국내 월간활성이용자수(MAU) 1400만명을 넘겼다. 글로벌 평점 사이트 IMDb에서는 '오징어 게임' 등을 제치고 한국 콘텐츠 사상 최고점을 받기도 했다.
이 드라마의 흥행 비결을 꼽자면 드라마의 서사가 만국 공통인 가족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고 한 사람의 일생을 4계절로 묘사하는 등 참신한 스토리 구조가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여기에 주연 배우들은 물론 모든 출연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력까지 더해지면서 드라마의 인기가 국경을 넘어 세계인의 공감을 이끌어낸 것이다.
‘폭싹 속았수다’는 1950년대 제주에서 태어난 가난하고 불쌍한 소녀 오애순(아이유·문소리)의 일생을 그리고 있다. 1950년대 생은 지금의 70대 노년층으로 이제 중년이 된 그들의 자녀들은 두 주인공의 삶과 자기 부모의 삶을 겹쳐보게 됨으로써 묘한 향수를 느끼게 된다. 여기에 한 여성의 인생 전체를 통찰하게 하는 서사는 마치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 오하라'의 단면이 엿보여 괜스리 친근하게 느껴진다.

이와 함께 문학소녀 오애순의 곁을 지킨 무쇠 같은 양관식(박보검·박해준)의 모습은 감정 표현에 서툴지만 자기만의 방식으로 가족을 품고 지켰던 무뚝뚝한 그 시절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리게 해 눈물을 쏟게 만든다. 특히 자식의 사망 신고서를 차마 쓰지 못해 주저앉아 오열하는 장면에서는 보는 이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화사한 봄꽃 같은 오애순의 삶은 봄처럼 따사롭지 않았다. 뜨겁게 불타올랐던 여름을 맞은 애순과 관식의 청춘은 인생의 거센 풍랑에 차갑게 식어버렸다. 결실의 계절, 그들의 가을은 소박했다. 하지만 자식이라는 소중한 결실이 맺혔다. 계절의 끝 겨울은 역시 매섭고 추웠지만 그 혹독함 뒤에는 따뜻한 봄이 기다리고 있었다. 겨울에 맞게된 이별은 가장 아팠다. 하지만 소멸된 자가 남긴 사랑과 배려는 아름다운 추억과 함께 가족의 새로운 봄날로 다시 찾아온다.
전쟁의 폐허 속에 보릿고개를 견뎌야 했던 60년대. 그 시절을 살아온 사람들을 그리며 이 드라마가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성 있게 하고있는 말은 ‘살민 살아진다’는 것이다. 죽을 것 같아도 살고자 하고, 살아야 하면 살아지는 게 삶이란 것이다. 여기에 덧붙여 “사름 혼자 못 산다. 같이 가라, 같이 가. 같이 가면 백리 길도 십리 길 된다”는 대사는 변화무쌍한 인생의 사계절을 지날 때 혼자보다는 다른 이와 함께 하는 것이 훨씬 견딜만 하다는 뜻이다. 그럼 누구와 같이 갈까. 그것은 바로 나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가족이다.

이 드라마의 특이한 점 중 하나는 사람의 빈 자리를 다른 사람으로 채운다는 것이다. 그것이 부모의 빈자리라 하더라도 말이다.
애순에게는 부모가 없지만 평생 오애순만 바라보는 양관식과 애순 엄마 광례와 함께 물질하던 해녀 이모 삼총사가 있다. 어린 애순이 모진 시집살이를 견디다 못해 시댁을 나와 쪽방살이 할 때 조금씩 쌀통을 채워준 주인집 노인 내외. 죽은 자식의 어린 딸을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내어준 할머니까지 누구하나 놓칠 수 없는 주변 인물들은 드라마 전체를 끌고 가는 큰 힘이 됐다. 심지어 악역으로 등장하는 부상길(최대훈)마저 결국엔 또 다른 우리 시대 아버지의 모습으로 그려져 미워할래야 미워할 수 없는 조력자로 등장한다.
봄이라고 해서 모두에게 똑같이 희망차거나 따뜻한 것은 아니다. 그 무더운 여름이 누구에게나 신나고 즐거운 것도 아니다. 그것은 가을과 겨울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모두에게 동등하게 주어진 사실은 모든 계절엔 끝이 있고 그 계절은 다른 누군가의 삶을 통해 반복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반복될 때마다 그 계절이 누구에게나 항상 똑같이 미소지으며 오는 것도 아니란 것이다. 그래서 인생은 끝까지 가봐야 하는 것이고 언제나 희망을 품게 만든다.

특히 마지막 편에 등장하는 출판사 편집장 클로이(염혜란)의 모습은 가장 큰 반전이다. 비록 전생의 삶은 비루했어도 다시 주어진 삶은 180도 달라진 그의 손에 애순의 시집이 쥐어져 있고 시집의 내용에 하염없이 눈물을 쏟는 그의 모습은 불교적 윤회를 떠올리게 하면서도 다른 한편 우리의 삶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늘 무엇인가를 그리워하고 또 기대하며 사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지금의 삶이 비교적 가난하고 힘들어도 수고한 당신이 있기에 또 소중한 그대들이 늘 함께 살아주었기에 "아꼬운 당신 폭싹 속았수다(아까운 당신 수고하셨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 경기신문 = 우경오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