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하의 다정한 편지] 밤에 우리 영혼은

2025.04.28 06:00:00 13면

 

그는 오늘도 소리 없이 닫힌 문을 열고 들어와 어느 틈엔가 곁을 파고든다. 밤손님, 불면이다. 다음 날 오전 약속이라도 있는 날에는 더욱 한 치의 어긋남이 없다. 어둠의 볼륨을 키우며 “오늘도 나와 함께 아침을 맞아야지”라고 속삭인다. 그러나 이것은 나만의 괴로움이 아니다. 수면장애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겪는 문제다. 단순한 개인의 고통이 아닌, 점점 더 많은 이들의 일상이 되고 있다. 그래서일까? 최근 영화와 드라마에서도 잠들지 못하는 인물들이 자주 등장한다. 그 배경엔 스트레스와 불안, 트라우마 같은 우리가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원인들이 숨어 있다. 이야기 속에서 겪는 사건들은 특별하지만, 그 근원은 우리가 겪는 불안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잠들지 못하는 밤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다. 호르몬의 변화로 인해 겪는 갱년기 증상, 병의 통증, 교대 근무나 야간 노동처럼 직업적 요인도 큰 몫을 차지한다. 이 외에도 원인을 정확히 알 수 없는 수많은 경우들이 존재한다. 그에 따른 다양한 치료법도 나와 있다. 잠들기 전에 마시는 따뜻한 우유 한 잔, 멜라토닌 처방, 햇볕 쬐기, 가벼운 운동, 전자기기 사용 줄이기 등 여러 가지 방법이 권장되지만, 누구에게나 똑같이 효과적이지는 않다. 그만큼, 불면은 깊고 고유한 얼굴을 지니고 있다. 신체적 질환이 아니라면, 수면장애의 가장 큰 뿌리는 결국 마음의 문제일 것이다. 불안과 외로움, 고단한 삶의 무게가 쉼 없이 압박을 가해 오기 때문이다.

 

깊은 밤 어딘가에서 우두커니 앉아 밤을 꼬박 지새울 사람들을 생각한다. 누웠다 일어나 결국전등을 켜게 되는 밤, 눈꺼풀보다 마음이 무거운 밤이 있다. 지나간 일과 아직 도착하지 않은 미래의 시간에 사로잡힌 밤. 우리는 환한 대낮이 남긴 상처들로 얼룩진 밤을 통과한다. 왜 그랬을까,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후회의 말들이 이명처럼 파고든다. 어떻게 살아갈까, 생계를 걱정하는 가장의 한숨이 짙어지는 밤이다.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 알 수 없는 청춘의 막막함, 밤의 고요는 점점 불안의 소리로 차오른다. 낮의 좌절이 마음을 짓누르고 우리는 그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 있다. 이 어둠에서 무엇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깊은 잠에 들 수 있을까?

 

영화와 드라마 속의 인물들이 잠이 드는 과정은 다른 존재를 통해서였다. 상대가 자신을 해롭게 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생기자, 그토록 어려웠던 잠이 일상이 될 수 있었다. 물론 허구를 이용한 사랑의 서사가 작동되는 경우가 많았다. 어쩌면 모든 불안은 누군가로부터 분리되어 있다는 두려움에서 시작되는 것인 지도 모르겠다. 잠들 때까지 토닥여 주는 손길. 무서운 꿈을 꾸다 잠에서 깨면 달래주던 엄마의 자장가를 들으며 우리는 무사히 어른이 되었다. 후렴만 반복해서 불러주는 노래는 두려움을 씻어주었다. 그렇게 걱정과 불안에 잠긴 밤을 견디게 해 주는 존재가 우리 곁에 있기를.

 

사람이 사람을 밀어내지 않았으면, 사람이 사람에게 무서운 존재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손 내밀면 언제라도 연결되는 존재들이라면 좋겠다. 스르륵 눈 감으면 다정한 이를 만나는 꿈이라도 꿀 수 있기를. 봄밤이니까, 우주의 따스한 입김 속에서, 당신이 찬란하기를. 깊은 밤에 우리 영혼이 건강하게 회복되기를 꿈꾸어본다. 그러니 기억해 주었으면 좋겠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고, 우리는 언제나 함께 있다고.

박인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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