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에세이] 지금 잘 살고 있는 거야

2025.06.12 10:00:10 13면

 

아내도 먼 나라의 이웃이 되고 아이들은 견우와 직녀 같은 만남이다. 나이테 늘어 직장의 문이 닫히면 친구들도 제 집에서 늙어 간다. 이승의 삶을 혼자 힘으로 살아내는 것이 아님을 알기까지에는 너무 많은 세월이 흐른 뒤였다. 외롭다는 말이 혼자 살아간다는 말보다 사치스럽다는 것을 알게 될 때 머리에는 무서리가 내렸다. 땅 속으로 수맥이 흐르듯 사람에게도 보이지 않는 수원이 흐르고 있으며, 음덕과 양덕이 있어 자신의 의지와 조화를 이루어 생활에 에너지가 되어준다는 것을 모르고 갈 뻔했다.

 

사람은 도덕군자 연한 체 해도 더우면 옷 벗고 싶고, 한기를 느끼면 당장 옷을 껴입고자 한다. 한두 끼 굶으면 허기를 느끼고 며칠만 혼자 있게 되면 외로워 못 살겠다고 한다. 이 얼마나 기회주의적이고 이기적 심리인가. 이 길에 있어 ‘인간’이란 말을 앞세우고 지성과 교양과 품위를 이야기하면서 좀 더 진지하고 느긋하게 살고자 한다. 그리고 생각의 유연성과 갈래의 갈피를 잡아 순서와 순리를 따르면서 순응 속 의지의 생활을 현실이란 시간 속에 디자인해 가며 ‘하루’라는 시간 길이로 마무리한다.

 

자신을 미워하고 학대한다는 것은 자기의 불행한 운명의 한계 상황에 대한 반역심리인지도 모른다. 밤 되어 자리에 누울 때, ‘이대로 그냥....’ ‘내일 아침이 없었으면-’ 하는 생각을 가져볼 때가 있다. 내가 내 삶을 인정하지 못하고 자신이 미워질 때의 일이요 일상의 무의미가 가슴 끝까지 차오를 때의 일이다.

 

모든 사람이 다 행복한 것 아니듯 가난한 사람 모두가 불행한 것도 아니다. 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위로해 보고, ‘작가는 많은 것을 체험하고 체념하고 다 잊어버리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필요할 때 재생시키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얼러보기도 한다.

 

어느 시골 목사는 내게도 좋은 점이 있어 앞으로 할 일이 많다면서 하나하나 예를 들어 주었다. 어려서는 학교에서 내가 그를 가르쳤다. 그런데 이제 나이 든 사회에서 새로운 생활의 보법을 그에게서 배우고 있다. 살만한 세상의 한 단면을 경험하고 있다.

 

고독은 작가의 운명이요 사명이라고 한다. 모든 창조의 산물은 고독과 명상과 참회의 새벽길에서 그 배아가 싹트는 것 같다. 그래서 수필가의 길을 선택했고 책 속에서 삶의 경작을 위한 쟁기질을 습득했다. 이어서 글을 쓰면서 그 과정의 수확을 독자와 나누게 된다. 그리고 나는 다시 독서의 길을 간다. 때로는 사막의 낙타같이, 히말라야 산맥 등정 길 블랙야크 같이.

 

내 어렸을 때 어머니는 나의 그릇된 행동을 보고 당신의 생명이 피곤할 때는 너도 자식 낳아 길러 보라 ‘모두 물레 살같이 돌아간다’고 하셨다. 그런데 이제 나는 손자 앞에서 백기를 들고 녀석이 하자는 대로 하고 있는 세월의 길 앞에 서 있다.

 

손자가 자박자박 걷는다. 위태위태해 손을 잡아 주려면 뿌리치고 혼자 가겠다고 달아난다. 몇 평의 아파트 공간에서 풀려난 내 자유를 당신이 아느냐는 것인지. 그러나 허방을 디뎌 곧 넘어질 것 같은 불안한 이 걸음이 생명의 강을 뛰어 넘은 듯 흥미와 스릴을 동반할 때도 있다.

 

산다는 것은 인내에서 성공으로 가는 길도 불행에서 행복으로 가는 열정도 아니다. 영화의 한 장면 장면같이 순간순간의 시간 앞에 참되고 진지하게 임하는 것이다. 혼자 있든 여럿이 있든 자신의 시간 앞에 담담하면서도 진중하게 임하는 것이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예로부터 예술가나 장인에게는 가끔 신의 경지(接神)라는 말을 덧보탰다. 그를 추겨 세우기 위한 수사가 아니라면, 예술가가 신에게 가까스로 닿는 길은 오로지 몰두밖에 없다는 뜻의 격려이었을 것이다. ‘어머니,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아십니까?’ 의 신석정 시인은 평소 제자들에게 ’진정한 아름다움은 생활 한가운데에 있다.‘ 고 했다. 수필 작가로서 지혜로운 성실로 순간순간의 무늬를 시간 속에 수놓을 것이요 새김질 할 일이다. 그리하여 공부하는 사람은 공부하다 죽어버리는 그런 마음 밭 노동으로 두려움을 뛰어 넘는 삶의 용기와 경건함이 있어야 한다. 그럼으로써 스스로에게 던져지는 한 마디의 말은 ‘걱정하지 마, 지금 잘 살고 있는 거야’라는 자기 사랑의 언어와 긍지가 포함된 언어이다.

김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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