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세상에서 ‘염치’라는 말을 들으면 고전 문학에서나 나올 법한 단어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염치는 결코 시대에 뒤처진 개념이 아니다. 오히려 지금처럼 무분별한 이익 추구와 책임 회피가 난무하는 시대일수록 그 존재감은 더욱 절실해진다.
염치란 간단히 말해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다. 이는 단지 도덕적 결벽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위치와 처신을 돌아볼 줄 아는 최소한의 자각이다. ‘내가 이 말을 해도 될까’, ‘이 행동이 남에게 피해를 주는 건 아닐까’, 이런 질문이 생기는 순간이 바로 염치가 작동하는 때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는 염치에 무감각해지고 있다. 정치권은 말 바꾸기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재벌은 사회적 책임보다 눈앞의 이익을 앞세우며, 개인은 공동체보다 자기 편의를 우선한다. 그러면서도 모두가 당당하다. 마치 염치란 감정을 느끼는 사람이 바보라도 되는 양.
우리가 놓친 건 윤리의 거창한 원칙이 아니라 소소한 부끄러움에 대한 감각이다. 타인의 눈을 의식하지 말자는 유행이 진심으로 타당하려면 최소한 자기 자신을 의식하는 기준은 있어야 한다. 그게 바로 염치다.
‘염치가 없다’는 말을 듣는 건 가장 날카로운 사회적 비판이었다. 지금은 그 말조차 희화화되고 때론 자랑처럼 여겨진다. 염치 없는 자가 오히려 당당한 세상,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함께 두려워해야 할 미래다.
염치의 회복은 법이나 제도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한 사람, 한 사람의 내면에서 깨어나야 할 윤리의식이다. 더 늦기 전에 우리 사회가 다시 부끄러움을 느낄 줄 아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 경기신문 = 박진석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