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쟁을 경험한 세대와 청년세대는 보훈에 대해 어떤 시각차가 있을까. 전쟁의 참혹함을 온몸으로 겪은 세대에게는 지금도 전쟁이 생생하지만, 평화의 시대를 사는 요즘 세대에게는 그저 낯설고 멀게만 느껴진다.
신천지자원봉사단 서울·경기남부지역연합회(회장 성창호·이하 서울·경기남부지역연합회)는 6·25전쟁 75주년을 맞아 전쟁을 경험한 참전 용사와 평화로운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이 만나 전쟁과 평화, 안보와 보훈에 대해 묻고 답하는 ‘세대 인터뷰’를 기획했다. 세대가 달라도 기억이 단절돼선 안 된다는 취지에서 시작했다.
이번 인터뷰를 통해 살아가는 시대는 달라도 전쟁의 아픔을 기억하고 평화를 지키려는 노력은 모두에게 중요한 가치임을 확인하리라 기대한다.
최은석 6·25참전유공자회 송파구지회장과 서울·경기남부지역연합회 봉사자 이종훈 씨가 인터뷰이로 참석했다.
- 자기소개 부탁드린다.
최은석 지회장= 6·25참전유공자회 송파구지회장을 맡고 있는 최은석이다. 1928년생, 만으로 97세다. 23살에 참전해 휴전 3개월 후에 제대했다.
이종훈 씨= 서울·경기남부지역연합회 봉사자 이종훈이다. 만 34세다. 요식업에 종사하고 있다.
- 당신에게 ‘한국 전쟁’은 어떤 의미인가?
최 지회장= 영국에 ‘전쟁은 죽음의 잔치’라는 속담이 있다. 전쟁의 끔찍함과 비참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전쟁터에 총을 들고 들어서면 내가 산다는 건 장담할 수 없다. 승리를 쟁취한다는 정신 하나뿐이지, 다른 생각을 가질 수 없다.
부모를 생각한다? 거짓말이다. 막상 닥쳐 보면 아무 생각이 없다. 적을 발견하면 내가 먼저 쏴야지, 그렇지 않으면 내가 죽는 것이다.
이 씨= 결코 잊어선 안 되는 가슴 아픈 역사. 우리나라는 현재 전쟁을 일시적으로 중단한 휴전 국가 아닌가. 겉으로 볼 때는 평화롭게 보이지만, 다시 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마음이 있다.
- 안보는 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
최 지회장= 우리나라는 당시 해방되고 겨우 독립한 상태였기 때문에 무력을 갖출 형편이 못 됐다. 전쟁이라는 건 있어선 안 된다고 생각했기에 전쟁이 일어나리라는 것은 전혀 생각지 못했다.
그런데 북측에서 기습 남침을 해왔다. 우리는 대항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격퇴할 수도 없는 처지가 됐다. 국가적으로 불행한 일이었다.
속수무책으로 죽어가면서 다시 소생(甦生)하겠다는 마음으로 후퇴할 수밖에 없는 비극의 상황이었다. 이러한 현실을 우리 국민이 되새겨야 한다.
이 씨= 앞에서 얘기했듯 대한민국은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국가의 안정을 위해서라도 안보는 필요하다.
안보의 중요성에 대해 이론으론 배웠지만 현실 안보에 대해서는 조각조각의 지식만 있다. 그래서 자세히 말하긴 어렵지만, 평화를 계속 알리면 그 자체가 안보가 되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 ‘보훈’이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최 지회장= 내가 참전했을 당시 동료 중에는 17살도 있었다. 당시 군인이 없었으니까 어린 사람도 다 입대시켰다. 참전한 약 4년 동안은 공부도 하지 못하고 기술도 못 배웠다.
제대로 먹지도, 입지도 못한 채 어렵고 기막힌 생활을 했다. 하지만 내 나라 대한민국을 지키겠다는 일념이 그 모든 것을 상쇄시켰고, 나를 위로했다.
이제는 나라가 안정됐다. 그러면 나라를 위해 젊음을 바치거나 헌신한 사람에게 보답하는 것이 보훈이요, 보훈 정신 아니겠나. 나에게 해달라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이제는 국가에서 우리 같은 국민이 어느 정도 살아갈 길은 열어줘야 하지 않겠나 생각한다.
이 씨= 나라를 위해 헌신한 일에 보답하는 것이 보훈이라 배웠다. 참전 용사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이 존재하지 않았을 거라 생각한다.
그분들이 있었기에 나도, 국민도, 나라도 있는 것이다. 그분들을 위한 보상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분들이 목숨 걸고 지켜낸 대한민국의 평화를 유지하는 것 또한 보훈이라 생각한다.
- 현 사회에서 이뤄지는 보훈을 어떻게 체감하고 있나? 그리고 어떻게 발전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최은석 지회장= 한 7, 8년 전에 부산유엔기념공원에 갔다가 캐나다 참전 용사를 만난 적이 있다. 전쟁 수당, 예우 수당을 얼마 받냐고 물어봤는데 수당이 아니라 월급으로 받는다고 했다. 800만 원을 받는다더라. 그때 우리는 5만 원 정도 받고 있었다.
상황이 이러니 앞으로 전쟁이 나면 자원할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정말 안타까운 심정이다.
일개 최은석이라는 유공자의 신세타령으로 보지 말아 달라. ‘이 정도 금액으로 만족할 것이지 왜 욕심을 부리나’ 하는 자책감이 들기도 하지만, 이 나라를 위해 희생한 사람들에게는 나라가 허용하고 나라의 경제가 허락하는 한 지원해 주는 것이 도리가 아니겠나.
이종훈 씨= 지회장님 이야기를 듣고 보니 보훈에 대한 실태가 어떤지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 같다. 봉사에 참여도 하고, 일상에서부터 보훈을 실천해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령에 접어드는 국가유공자들의 고충을 국가가 적극 나서서 도와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단순 금전적인 부분을 넘어서 변화하는 시대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국민도 이런 부분을 함께 고민해야 발전이 된다고 생각한다
- 유공자의 공로를 잊지 않기 위해 정부나 사회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최 지회장= 우리 부모님이 나를 키우며 뒷바라지하시느라 많은 고생을 하셨기에 내가 돈을 벌어 보답하겠다고 생각했다.
나라도 마찬가지다. 우리 유공자들이 국가와 국민을 위해 노력한 것과 같이 국민은 나라를 위해 일해야 한다. 그래야 부강한 국력을 갖출 수 있다.
우리나라는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다. 평화가 오면 좋겠지만, 만일이라도 전쟁이 일어날 때를 대비한 방패가 있어야 한다. 열심히 노력해서 산업을 발전시키고 경제적 부유함을 이뤄 국력을 강화해야 한다.
이 씨= 우선은 우리의 역사와 현실을 알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모르기에 잊고 있다.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기까지의 일들을, 그리고 살아 있는 영웅들이 있음을 알려야 한다. 그렇게 하면 깨어 있는 청년들은 앞장서서 도우리라 생각한다.
- 전쟁을 경험한 우리나라의 미래는 어떤 모습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나?
최 지회장= 우리나라 반만년 역사를 보면 평화로웠던 시기보다 전쟁을 치르거나 다른 나라의 식민지가 되는 등 고통받던 시기가 더 많았다. 지금도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데, 전쟁은 피해야 한다. 평화가 와야 한다. 평화를 유지해야 한다. 그러려면 힘이 있어야 한다. 이탈리아의 어느 학자가 평화를 가지려면 손에 칼을 들면 된다고 했다. 예전과 달리 우리도 이제 우리를 지킬 무력도 갖췄다. 우리에게 힘이 없었으면 벌써 전쟁이 났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지금의 우리 사회에는 그런 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씨= 전쟁에 대한 불안감이 없는 평화로운 모습이길 바란다. 그러려면 한반도에 평화 통일이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불안한 정세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지는 방법이라 본다. 한반도 통일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통일된 한반도가 국가의 위상이나 경제나 여러 분야에서 더 이익이 되리라 생각한다. 서로 함께 살아가는 평화로운 대한민국이 됐으면 좋겠다.
[ 경기신문 = 천용남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