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최저임금이 시간당 1만 320원으로 결정됐다. 1만 320원은 올해 최저임금(1만 30원)보다 290원(2.9%) 높은 금액으로서, 내년도 최저임금의 월 환산액(월 노동시간 209시간 기준)은 215만 6880원이다. 이번 최종안은 2008년 이후 17년 만에 근로자·사용자·공익위원 합의로 결정돼 특별한 의미가 있다. 이번 결정을 계기로, 걸핏하면 극한 갈등으로 치닫는 노사문화에 양보와 타협의 미덕이 깊게 퍼지면서 ‘상생 정신’이 폭넓게 발현되는 변화가 나타나길 기대한다.
최저임금을 심의·의결하는 노·사·공 사회적 대화 기구인 최저임금위원회는 정부세종청사에서 지난 10일 제12차 전원회의를 열고 2026년도 최저임금을 이같이 의결했다. 내년도 최저임금은 근로자위원 중 민주노총 위원 4명이 불참한 가운데 노·사·공 위원 23명의 합의로 결정됐다. 이번 인상률은 1%대였던 올해(1.7%)나 2021년(1.5%)보다는 높지만 상당히 낮은 수준이다. 특히 역대 정부 첫해 인상률 중에서는 두 번째로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최저임금위원회는 이미 지난 회의 때 공익위원 심의 촉진구간(1.8%∼4.1%)이 제시된 상황에서 이날 마무리 짓는 것을 목표로 심의에 들어갔다. 민주노총 위원 4명이 예상보다 낮은 심의 촉진구간에 반발하며 퇴장해 근로자위원은 한국노총 측 5명만 남았으나, 노사는 9·10차 수정안을 제시하며 격차를 좁혀 나갔다.
10차 수정안에서 노동계는 1만 430원, 경영계는 1만 230원을 제시해 격차는 200원까지 줄었고, 이후 공익위원들의 조율 등에 힘입어 최종 합의에 도달했다. 노·사·공 합의를 통한 최저임금 결정은 1988년 최저임금 제도 도입 이후 8번째다. 가장 최근 합의는 2008년 결정된 2009년도 최저임금이 마지막이었다. 최저임금위원회는 의결한 내년도 최저임금안은 내년 1월 1일부터 효력이 발생한다.
최저임금위원회에 사용자 측으로 참가한 한국경영자총협회는 대체로 긍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이재명 정부 출범 전부터 최저임금 대폭 인상을 요구했던 노동계는 예상을 벗어난 인상 폭에 반발하고 있다.
최저임금제도로 인해 가장 영향을 크게 받으면서도 논의기구에서 번번이 제외되는 소상공인연합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인상을 최대한 자제했다곤 해도 여전히 누적된 인건비 인상 여파 등으로 한계에 몰려 있는 소상공인 처지에선 부담이 과도한 게 사실이다. 지난해 폐업 신고를 한 사업자가 처음으로 100만 명을 넘었다. 이번 최저임금 결정 이후 “일자리안정자금 부활, 소상공인 경영 안정 자금 지원 확대 등 다각적인 방안을 실효성 있게 마련하라”고 목소리를 낸 소상공인연합회의 주장에 귀를 기울여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최저임금은 실업급여, 육아휴직급여 등 수십 개 법령과 연동된 국가 정책의 주요 기준으로서 그 영향력이 막대하다. 객관적 지표에 근거하고 업종·지역별 여건 등을 고려해 최저임금을 합리적으로 결정하는 틀을 더욱 발전시키는 일은 해묵은 숙제로 그대로 남아 있다.
노사 갈등이 여전히 전방위 갈등 환경의 뿌리 중 하나인 우리 국가사회에서 모처럼 노·사·공 합의 방식으로 최저임금이 결정됐다는 것은 가볍지 않은 의미를 남긴다. 결과에 불만이 많은 노동조합 측의 주장에도 일리가 있지만, ‘합의’의 관행을 구축하는 일의 커다란 가치를 더 높게 인식해야 한다.
‘상생’이라는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갈등구조 혁신은 이 시대의 온갖 난제의 해법을 관통하는 키워드다. 생각이 다르고, 이해관계가 다른 계층 집단의 협상에서 ‘양보와 타협’보다도 더 유용한 미덕은 없다. 세상 모든 협상을 전쟁처럼 여겨 ‘전부가 아니면 전무(全無)’라는 극단적 승패의 눈으로 바라보는 이 못된 습성부터 바꿔야 한다. 17년 만에 이룬 최저임금 근로자·사용자·공익위원 합의 결정을 가벼이 보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