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갑의 난독일기] 부정선거라는 이름의 전염병

2025.07.21 06:00:00 13면

 

지구라는 별에는, 민주주의라는 이름의 제도가 존재합니다. 사람들은 그 제도에 따라 투표합니다. 다수의 결정에 따라 소수가 승복하는 게 핵심입니다. 물론 그 결과가 언제나 옳았던 것은 아닙니다. 민주주의는 갈등과 타협을 견디며 진화해 왔습니다. 그 모든 과정을 ‘불편한 축제’라 부를 수 있다면, 선거는 그 축제의 정점이자 시험대입니다.

 

그런데 요즘, 이 축제를 겨냥한 새로운 전염병이 돌고 있습니다. 전염병의 이름은 ‘부정선거 음모론’입니다. 놀랍게도 이 신종 전염병은 국경과 인종을 가리지 않습니다. 성조기 휘날리는 미국의 안방에서부터, 태극기 나부끼는 대한민국의 길거리까지. 새로운 전염병 바이러스가 사람들의 눈과 귀를 멀게 하고 있습니다.

 

'중국이 전 세계 선거를 조작하고 있다', '우편투표는 사기다', '기계가 표를 바꿨다' 등 처음엔 우스워 보였던 말들이, 어느새 사실로 둔갑하여 거리를 떠돕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이 병에 걸린 사람들 모두가 진심이라는 점입니다. 그들은 월차까지 내며 집회에 나가고, 주머니를 털어 모금함을 채우며, 밤잠을 줄여 피켓을 만듭니다. 그런 열정은 나라 안팎을 가리지 않습니다. ‘윤 어게인’을 외치는 사람도, ‘트럼프가 진짜 대통령’이라 믿는 사람도, 저마다 진지합니다. 카메라에 잡힌 그들의 열정은 때로 감동적이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그 믿음의 뿌리를 파헤쳐 보면, 고개가 절로 갸우뚱해집니다. 그들이 믿는 믿음의 뿌리에는 논리와 진실은 없고 의심과 조작만 가득합니다. 그렇다면, 그 음모론의 뿌리를 만들어 낸 건 과연 누구입니까? 부정선거라는 말을 처음 꺼낸 사람들은 모두가 권력에 있었던 자들입니다. 선거에서 패배했지만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던 자들. 정당한 투표보다 유리한 선동을 선호했던 자들. 자신의 몰락을 민심이 아니라 ‘음모 탓’으로 떠넘기고 싶었던 자들입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패배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대신 새로운 이야기를 지어내고 거기에 상응하는 적을 만들어 냅니다. ‘중국’, ‘빨갱이’, ‘여성’, ‘이민자’, ‘기득권 언론’, ‘사법부’, ‘투표 시스템’... 그들이 만들어 낸 음모론으로부터 누구도 안전하지 않습니다. 그 누구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음모론은 그렇게 만들어집니다. 가장 약한 고리를 찾아내고, 가장 큰 목소리로 흔들어 댑니다. 그 흔들림 속에서 누군가는 이익을 얻습니다. 거짓으로 들뜬 질서 속에서 돈을 벌고, 권력을 틀어쥐며, 대중을 통제합니다.

 

그러니 우리는 물어야 합니다.정말로 부정한 것은 선거입니까? 아니면 그 부정을 설계한 자들입니까? 한국이든 미국이든, 민주주의는 지금 같은 질문을 받고 있습니다. ‘당신은 믿습니까, 아니면 의심합니까?’라는 질문 말입니다. 그러나 진짜 질문은 이것이라야 옳습니다.

 

'누가 이 의심을 퍼뜨리고, 누가 그 의심에서 이익을 보았는가.'

 

음모는 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선동은 말이 많습니다. 우리는 말 많은 자들의 ‘침묵 속의 이익’을 경계해야 합니다. 그들이 ‘진실’이라는 이름으로 퍼뜨리는 것은 언제나 ‘두려움’과 ‘증오’였습니다. 이제, 그들의 가면을 벗겨야 합니다. 우리 사는 세상이 더 망가지기 전에 말입니다.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기 마련입니다.

고향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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