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이 전 국민 규모의 개인정보 유출 사태에 대해 박대준 대표이사의 사임을 공식 발표하며 사실상 ‘최고 수위의 책임’을 선택했다. SKT·KT·카드3사(KB국민·NH농협·롯데카드) 등 과거 대규모 정보 유출에서도 대표 교체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번 결정은 한국 기업들 사이에서도 이례적으로 ‘직접적 책임경영’에 가까운 행보로 평가된다.
박 대표는 지난 10일 “개인정보 사태로 국민께 실망을 드려 송구하다”며 모든 직위에서 물러난다고 밝혔다. 국회 질의 과정에서도 “한국 법인에서 벌어진 일이며, 전체 책임은 나에게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내부에서는 ‘경질’에 가깝다는 해석이 나오지만, 외부에서는 “사태를 축소하거나 책임을 회피했다는 비판 속에서, 최소한 책임의 형태는 가장 직접적인 방식으로 이행했다”는 분석이 따라붙는다.
쿠팡의 이번 조치는 과거 대형 사고 사례들과 비교할 때 더욱 두드러진다.
2014년 카드3사 정보 유출 당시 피해 규모는 1억 건이 넘었지만 최고경영진의 사퇴는 없었다. 올해 SKT에서 2300만 명의 유심·개인 인증 정보가 외부로 유출된 사건, KT의 불법 기지국을 통한 소액결제 피해 사건에서도 최고경영자가 책임을 지고 물러난 적은 없다.
한 정보보호업계 관계자는 “법적 책임과 별개로, 기업의 최고 책임자가 직접 사퇴한 예는 흔치 않다”며 “쿠팡 행보는 책임 회피 논란을 정면 돌파하려는 시도이자 한국 시장에서 신뢰를 지키려는 신호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쿠팡Inc는 후임으로 해롤드 로저스 CAO를 임시 대표로 선임했다. 하버드 로스쿨 출신 법률·컴플라이언스 전문가인 로저스 대표는 “재발 방지를 위한 정보보호 강화와 고객 신뢰 회복이 가장 우선”이라며 “조직을 안정시키고 사태 대응을 총괄할 것”이라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그동안 한국 법인이 주도하던 대응 구조가 미국 본사로 직행했다”는 점에 주목한다. 이는 단순 내부조정 이상의 의미가 있다는 분석이다. 쿠팡Inc가 직접 진두지휘하는 형태는 글로벌 본사의 책임감과 사태 수습 의지를 ‘최고 단계’로 끌어올린 조치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물론 외국인 임시 대표 선임이 ‘현장 책임의 분산’처럼 보일 수 있다는 반론도 존재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번 행보의 방향성 자체가 시장 안정과 소비자 신뢰 회복에 초점을 맞춘 점을 강조한다. 과잉대응 우려가 나오는 규제 논의 속에서도, 기업이 먼저 내부 리더십을 교체하며 시스템 점검에 들어갔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유통·IT 업계 한 관계자는 “SKT나 KT 사고 때도 대표 교체는 없었는데, 쿠팡은 조직 수장 교체까지 결단했다”며 “정치적 압력 때문이라는 시선도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시장 신뢰를 위해 선제적 조치가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쿠팡은 “우려를 끼쳐 죄송하다”며 “재발 방지와 정보보안 강화를 위해 총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사고가 났을 때의 대응은 결국 서비스의 일부다. 쿠팡이 ‘문제가 생기면 끝까지 해결한다’는 로켓배송식 고객 대응 철학을 이번 사태에도 적용할 수 있을지, 향후 수습 과정이 고객 신뢰 회복의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 경기신문 = 박민정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