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마을 공동 우물의 도르레가 제 예술의 첫 번째 교사였습니다.”
‘지퍼리즘(Zipperism)’으로 관객 참여형 조형을 확장해온 이상근 작가(사진)는 신작 ‘조건의 문(Emergentism)’을 발표하며 자신의 작업 세계가 어디에서 출발했는지를 이렇게 설명했다.
이 작가는 칠석날마다 마을 사람들이 모여 우물을 퍼내던 기억을 또렷이 떠올린다. 천장에 걸린 긴 밧줄과 큰 도르레, 그리고 누가 어떻게 줄을 당기느냐에 따라 매번 달라지던 움직임.
그는 “두레박을 올리고 내리는 과정에서 긴장과 풀림, 꼬임과 반전이 계속 나타났다”며 “작은 변수 하나에도 결과가 바뀌는 예측 불가성이 어린 나에게 강렬하게 남았다”고 말했다.
그 경험은 훗날 ‘지퍼리즘’으로 이어졌다.
관객이 지퍼를 열고 닫는 행위를 통해 작품의 구조가 스스로 변형되도록 만든 작업이다.
그는 이를 “관객이 구조를 결정하는 관객 주권의 미학이자 작가 중심에서 벗어난 구조의 혁명”이라고 규정한다. “관객이 지퍼를 여는 순간 작품은 단일한 조형이 아니라 변화 가능성을 가진 구조 자체가 됩니다.”
그러나 그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고자 했다.
구조가 개방된 이후에도 “구조를 완전히 비운 자리에서 조건만으로 예술이 발생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생겼고, 그 물음이 신작 ‘조건의 문’의 출발점이 됐다.
이번 작업은 전기·센서·모터 등 모든 외부 동력을 배제한다. 문과 연결된 줄과 도르레, 중력·충돌·흔들림·감쇠 같은 물리적 조건만이 움직임을 만든다.
이 작가는 “관객이 문을 여는 행위는 단 하나의 조건일 뿐”이라며 “그 이후의 모든 운동은 세계가 스스로 만들어낸 결과”라고 말했다.
작품의 첫 장면은 가장 긴 줄에 매달린 골프공이 천장 위에서 ‘툭’ 떨어지는 순간이다. 그 충격이 모빌 전체로 전해지며 연쇄적 진동이 시작된다.
공들은 서로 충돌하고, 바닥의 경사에 부딪힌 공은 미세하게 튀어 오르며 다른 줄과 얽히고 풀린다. 문을 어떻게 닫느냐에 따라서도 매번 다른 결과가 발생한다.
“부드럽게 닫는 관객, 갑자기 놓아버리는 관객, 끝까지 손을 대고 지켜보는 관객—각각의 행동이 새로운 조건이 됩니다. 하지만 누구도 그 결과를 통제할 수는 없습니다.”
그는 이 작업을 무구조주의(Astructuralism)의 연장선에서 바라본다.
“지퍼리즘이 구조를 열었다면, 무구조주의는 구조를 비우고, 이머전티즘(Emergentism)은 비워진 자리에서 발생 그 자체를 예술로 포착하는 단계입니다.”
이 작가는 다시 우물의 기억을 언급했다. “밧줄이 꼬이고 풀리고, 물이 흔들리며 예측할 수 없는 운동이 생겨났던 장면은 세계가 스스로 사건을 만드는 최초의 현장이었습니다.”
‘조건의 문’은 그 풍경을 현대적 조형으로 되살린 작업이다.
“누가 문을 열든, 어떻게 닫든, 발생을 결정하는 것은 인간이 아니라 세계입니다. 예술이 인간 중심에서 벗어나 세계 중심으로 돌아가는 순간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 경기신문 = 최순철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