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한 대가 동체착륙을 시도할 거야. 너랑 내가 관제를 맡는다, 디디."
"ROGER(라져)."
바다 건너 맞닿은 주파수. 전파를 통해 맞닿는 운명.
하늘과 바다를 책임지는 두 남자가 무전을 통해 연결되며 관제의 세계를 무대 위에 펼쳐낸다.
㈜창작하는공간은 창작 초연 뮤지컬 'ROGER'로 관객들과 만나고 있다.
이번 공연은 2025 공연예술창작산실 올해의신작 선정작으로, 'Roger'라는 관제 용어를 핵심 키워드로 삼아 이야기를 전개한다.
모든 관제 통신의 마지막에 사용되는 확인의 응답이기도 한 'Roger'는 '메시지를 정확히 들었고 이해했다'는 뜻의 용어로, 그 짧은 응답이 갖는 의미를 인간에 녹여 확장한다.
관제탑과 등대, 서로 다른 공간에 서 있는 인물들은 매일 밤 무전을 통해 마주하고 소통하며 조금씩 서로를 이해하고 마음을 열어간다.
그 과정 속에서 상실과 책임, 선택의 문제를 마주하며 관객들에게 거창한 해답이 아닌 다음을 향해 나아가도 된다는 위로를 건넨다.
항공 사고로 파일럿이었던 아버지를 잃은 후, 아버지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살아온 '스카일러'와 작은 항구 오가르를 지키고자 하는 유쾌하고 열정 넘치는 바헤이미안 청년 '디디'.
좁혀지지 않을 것 같던 이 두 남자의 아슬아슬한 관제 수업 속 일어나는 사건들은 관계의 변화와 더불어 각자의 내면 깊은 곳 상처를 마주하게 한다.
비행기 기내 안내음과 함께 시작된 공연은 항공 사고를 다루는 과정에서 사용되는 폭발음과 조명 효과를 사전에 고지하고 관람 시 유의사항까지 전달하는 센스 있는 연출로 문을 연다.
사다리꼴 형태의 무대 위 창문들은 미디어 영상을 통해 공항을 바라보는 관제탑 시점으로 활용되며, 가운데 놓인 '반투명 보드'는 레이더 화면과 주인공 두 명의 시점을 분리하는 장치로도 사용된다.
무대는 대체로 단순한 구조로 구성되며 조명과 배우들의 동선으로 공간을 분리한다.
밝고 구체적인 공간은 현실을 뜻하고, 어둡거나 추상적인 공간은 인물의 내면을 표현한다.
특히 주인공 스카일러(주민진·고상호·기세중)와 디디(정휘·이한솔·박주혁)가 위치한 관제실은 파란색과 주황색 조명으로 공간을 분할해, 인물의 심리와 서사를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이는 무대에서 하나의 시간·심리·기억이 동시에 존재하는 방식으로, 극의 몰입도와 긴장감을 향상시킨다.
이번 공연에서는 조명 중심의 서사 전달이 눈에 띈다.
핵심 장치로 작용하는 조명은 색과 밝기로 감정 상태를 직관적으로 보여주는데 차가운 톤은 고립과 불안을, 따뜻한 톤은 회상과 관계를 나타낸다.
특히 비행기 운항 중 위기를 맞은 순간에는 강렬한 사이렌 사운드와 함께 공연장 전체의 조명이 빨간빛으로 물들고 회전하며 위기 상황을 입체적으로 표현한다.
또 비행기가 비상착륙을 시도할 때에는 '레이저'를 활용한 여러 개의 조명이 가느다란 직선 빔을 평행하게 쏟아내며 마치 활주로에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무전으로 연결되는 상황 역시 무전기를 켜고 끄는 과정에서 조명을 활용해 비추며 접속 유무를 표현한다.
이밖에도 배우 중심의 연출 역시 감정선을 극대화하며 몰입도를 높인다.
대형 군무나 화려한 전환이 아닌 배우들의 표정, 호흡, 정지 동작에 집중한 공연은 자연스레 인물의 내면을 따라간다.
과거·현재가 명확히 나뉘지 않은 연출은 빠른 전개보다 감정을 축적한 인물들의 내면과 서사에 집중하며 깊은 여운을 남긴다.
이처럼 2인극 형태의 공연에도 무대를 꽉 채우는 압도적인 성량과 섬세한 감정 연기, 몰입도를 높이는 적재적소의 연출, 명확한 대사 전달력, 깊은 울림을 전하는 메시지에 관객들은 5분여 간의 기립박수와 환호로 화답했다.
개막과 동시에 많은 관객들의 발걸음을 이끌고 있는 두 남자 만의 관제탑은 5월 31일까지 NOL 서경스퀘어 2관에서 만나볼 수 있다.
[ 경기신문 = 서혜주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