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들의 건강상태가 예전과는 크게 달라졌다. 이미 박진표 감독의 영화 ‘죽어도 좋아’를 통해서 입증됐듯이 어르신들의 신체 기능이 연장되었다. 독수공방 생활은 못할 노릇이고 감옥 같은 독거생활에서 벗어나야 한다. 서로 의지하며, 편안하게 늦정을 쌓으며 사람답게 살 권리가 어르신들에게 있다. 10년, 20년을 홀로 보내기엔 너무 긴 세월이다. 그래서 부부결연 사업은 확대되어야 한다. 체면이나 자식들의 입장 때문에 어르신들이 인내하며 혼자 고민하게 해서는 안 될 일이다. 비밀을 갖고 혼자 고민하기보다 어르신들은 당당히 주장할 권리가 있다. 말 못하시는 어르신들의 고민은 이제는 공론화 시켜야 할 때이다. 세상의 모든 어르신들이 행복한 여생을 보내실 수 있도록 부부결연사업을 확대했으면 하는 나의 제안이다. 사회적 제도를 넘어서는 어르신들의 만남을 주선해 드리다. 먼저 자식들이 나서서 부모님들을 지옥 같은 고독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드리자. 이 세상은 어르신들의 노력의 결과이다. 어르신들은 이제 당신들의 권리를 누리셔야 할 때이다. 자식들이 나서서 먼저 그 권리를 찾아드려야 할 것이다. 어르신들 일거리로는 뭐가 좋을까? 시간은 쉼 없이 화살처럼 달려간다. 아무 생각
무예(武藝)영화는 각종 무술을 소재로 한 액션영화다. 무예영화는 무협영화로 주로 소개돼 왔으나 최근에는 꼭 그러하지만은 않다. 판타지, 멜로, 드라마가 섞이며 퓨전화되어 진화되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제작된 ‘산채왕’은 처음 만든 무협영화이며 그 후 ‘홍길동전’ 등의 무협영화가 만들어진다. 이들 영화가 일본 찬바라(ちゃんばら) 영화의 영향을 받았음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한국영화는 1919년 10월 27일을 기점으로 한다. 그것은 김도산 감독이 만든 다큐멘터리 ‘경성전시의 경’과 연쇄극 ‘의리적구토’가 단성사에서 개봉됐기 때문이다. 한국의 무예영화는 한국영화 초창기부터 만들어져 왔다. 광복 이후 광복영화나 반공 계몽영화의 제작으로 한국 무예영화는 제작되지 않았고 과거 영화와 단절된다. 1950년의 한국전쟁 휴전 이후에도 전쟁영화나 멜로영화가 강세를 보였다. 1960년대 들어서며 한국형 무예영화들이 선보이기 시작했다. 흰 도포를 휘날리며 검을 휘두르는 모습은 그야말로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의적 일지매’ 류의 영화를 비롯해 ‘황혼의 검객’ 등 서부영화 제목의 무예영화들이 등장했다. 그렇게 시작된 한국무예영화 붐은 한홍합작영화의 전성시대를 만들었다.
‘애국혼(愛國魂)’은 1928년 상하이에서 한국인들에 의해 만들어진 영화다. 과연 무슨 영화였기에 한국인들이 상하이까지 가서 만들었을까? 일제의 검열을 피해 만들었던 그 영화는 바로 안중근 의사의 일대기이다. 극영화이고 무성영화였다. 당시 일제의 영화검열이 강화되자 국내 영화인 중 일부가 상하이로 이동한다. 그 중 대표적 인물은 정기탁(鄭基鐸), 전창근(全昌根), 이경손(李慶孫), 정일송(鄭一松), 한창섭(韓昌燮) 등이다. 이들은 상하이에서 10년간에 걸쳐 ‘애국혼’(愛國魂), ‘양자강’(楊子江), ‘광명지로’(光明之路), ‘재회파, 상해’ 등 13편의 영화를 만들었다. 일제강점기의 영화인들은 여러 제약으로 국내에서의 활동이 자유롭지 못하자 어쩔 수 없이 조국을 등질 수밖에 없었다. 당시 일제의 정치적 제약은 여러 분야에서 행해졌는데 영화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조국에서 만들 수 없었던 영화를 타국에서라도 만들어야 했던 그들은 국내영화인에 비해 파격적인 소재를 다룰 수도 있었으며 영화를 통한 다양한 주제 전달도 가능했다. 그들이 상하이로 가서 만든 첫 영화 ‘애국혼’은 국내에서 만들지 못했던 항일영화였다. 항일영화란 일본 제국주의의 정치이념에 항거하는 반제
지난 7월 20일은 세기의 스타이며 불세출의 배우로 일컬어지는 이소룡의 타계 46주기였다. 그는 ‘당산대형’, ‘정무문’, ‘맹룡과강’, ‘용쟁호투’, ‘사망유희’ 등 5편의 영화를 남기고 우리 곁을 떠났다, 그렇지만 그의 인기가 당대 최고였다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1973년 7월 27일, 한국의 이소룡 팬들은 이날을 ‘브루스 리 데이’로 정하고 매해 기념을 하고 있다. 이날은 한국의 팬들이 이소룡을 처음 만난 날로 서울 피카디리 극장에서 ‘정무문’이 상영돼 56일간 31만5천579명을 동원했다. 이 기록은 그 해 최고 흥행기록이다. 이후 그의 영화는 속속 개봉됐고 우리 주변의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한국영화계에는 때 아닌 태권도영화 붐이 일었고 이소룡의 캐릭터로 등장한 많은 배우들이 홍콩으로 떠났다. 그리고 이소룡 문화현상이라고 일컬어지는 문화 전반에 걸친 그의 영향이 한 시대를 풍미했다. 그런데 세기가 바뀐 지금은 어떠할까? 이소룡은 아날로그 시대의 영웅이었는데 지금 디지털 시대에도 유효할까? 답은 ‘아니다!’일 것이다. 그것은 디지털 시대를 맞아 마블영화의 슈퍼 히어로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소룡 세대를 3기로 나누어 본다면 1기 세대는
우리가 운전하면서 자주 보게 되는 스티커가 있다. ‘차안에 아기가 타고 있습니다’ 인데 그것을 무심결에 보다가 문득 든 생각이다. 이런 스티커는 어르신 차에도 필요한 것이 아닐까? 흔히 서행하는 앞차를 추월해서 보면 휴대폰을 들고 있는 경우가 많지만 어르신들의 차인 경우도 있는데 차 뒤에 경로스티커를 붙여드리면 어떨까? ‘양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인사말과 함께 손을 든 어르신의 캐릭터를 디자인해서 어르신들 차에 붙여드리는 것이다. 이 시대 경로사상을 다시 한번 생각하는 계기도 될 것 같다. 어르신 모시기의 두 번째 제안은 인사하기다. 너무도 당연한 것이지만 사실 어르신들에게만이 아니라 웃어른에 대한 인사 자체가 실종된 현실이 아닌가 한다. 예전의 기억으로는 골목길에서나 거리에서나 어르신들에게 인사하는 건 쉽게 볼 수 있는 우리의 아름다운 생활 예절이었다. 어르신들에 대한 존경심의 발로로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스스로 먼저 인사를 드렸다. 그런데 요즈음은 어린아이들까지는 인사를 잘 하지만 조금 머리가 굵어지면서 부터 다는 아니겠지만 어르신들을 뵈면 존경심은 커녕 눈조차 마주치기를 거부하는 세태이다. 사실 기성세대가 잘하는 것을 TV에서 본적이 없으니까 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