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신문 = 황기홍 화백 ]
지난 5월 지역균형 발전 사업 평가 위원으로 경기 북부 ‘삼천(동두천, 포천, 연천)’을 방문하였다. 프리미티브한 대자연이 펼쳐진 이곳에 발을 디디면 탄성이 절로 나온다. 손상되지 않은 자연, 신선한 공기, 풍부한 먹거리, 사람이 살기에 이 보다 좋은 곳은 없으리라. 한 가지 흠이 있다면 큰 병원과 문화시설이 빈약하다는 것. 이 점만 잘 보완하면 ‘삼천’은 지상낙원이라 할 수 있다. 부족한 의료 시설은 원격 진료센터를 설치하여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서구에서는 저밀도 지역의 부족한 의료시설을 원격 진료센터 설치로 보완 중이다. 프랑스는 2001년부터 이 방식을 추진해 왔지만 사회적인 주목을 받지 못하였다. 그러나 2018년 오메디스(Omedys)라는 회사가 설립되면서 상황이 반전되었다. 두 전직 응급의학과 의사가 원격 상담 전용 진료실 두 곳을 오픈한 것이다. 금상첨화로 이해 9월부터 원격 진료가 의료보험의 적용을 받게 되고 코로나 19가 확산되면서 바야흐로 원격 의료의 시대가 시작됐다. 원격 의료는 병원 응급실의 부담을 덜어주고 특히 시골, 교외 등 의료 인력이 부족한 지역에서 의사와 쉽게 접촉할 수 있는 접근성을 높여 준다. 또한 환자와 의사의 진료 시
바야흐로 인공지능(AI) 시대다. 모든 화두의 중심에는 AI가 있다. AI가 아닌 그 무엇을 놓치고 있지 않은지 돌아볼 여유조차 쉽지 않다. 쏟아지는 새로운 개념, 기술, 서비스 등을 쫓아가려 하지만 변화의 방향이나 크기는 가늠조차 어렵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각 부문에 미칠 영향에 대한 전문가 전망이 며칠 사이 겸연쩍게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최근 언급이 잦은 소버린(sovereign) AI는 한동안 우리 AI 산업 전반의 가늠자가 될 것이 분명하다. 네이버에 따르면 “소버린 AI는 각 국가가 자체 데이터와 인프라를 활용해 그 국가나 지역의 제도, 문화, 역사, 가치관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AI”다. 이를 판단하는 합리적 기준은 “기술적 자립 여부보다는 해당 국가가 사용하는 AI에 자국의 가치관과 윤리, 문화적 특성이 충분히 반영되었는지, 그리고 해당 국가의 이익과 존속을 지켜낼 수 있는지”다. 잘 알려진 것처럼 현재 AI 분야의 세계 패권은 미국과 중국이 가지고 있다. 이들의 AI 시장 점유율, 투자 및 인프라 비율, 특허 비율은 절대적이다. 이들이 어떤 국가, 어떤 언어를 중심으로 데이터 학습을 했는지는 뻔하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안타깝지만 오늘의 대한민국은 ‘마약청정국’이 아니다. 마약 범죄가 급증하면서 우리 사회의 가장 큰 골칫거리 중 하나가 됐다. 최근에도 태국에서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25억 원 상당의 마약을 들여온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 이들은 지난 16일 새벽 인천국제공항으로 필로폰 6㎏과 대마 5.2㎏을 밀반입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윤석열 정부 당시인 2023년 1월엔 말레이시아 국적 피의자들이 필로폰 약 74㎏ 밀수 범행을 저지르다가 검거됐다. 그런데 대통령실과 경찰·관세청 고위 간부 등이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수사에 외압을 행사했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이에 대검찰청은 지난 10일 경찰, 국세청, 금융정보분석원과 이 사건의 실체를 규명하기 위해 합동수사팀을 출범시키기도 했다. 대검찰청이 펴낸 2023년 마약류 범죄백서에 따르면, 2022년 마약류 사범 검거 인원은 1만 8395명이었는데 2023년엔 2만 7611명으로 급증했다. 특히 젊은 층에서 마약 범죄가 부쩍 늘어나고 있다. 20∼30대가 전체의 50% 이상이다. 청소년들의 마약 범죄도 심각하다. 10대 마약류사범은 2021년 450명에서 2023년 1477명으로 크게 증가했다. 무려 3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 경기신문 = 황기홍 화백]
‘막말’이란 말의 의미 정체(正體)는 무엇일까. ‘막’이란 접두어는 ‘함부로 한다’는 뜻을 품고 있다. ‘막가파’, ‘막가자는 거냐?’, ‘막되어 먹은 놈’ 등의 ‘막’이 바로 그것이다. ‘막’에는 ‘거칠다’라는 뜻도 있다. 막걸리는 ‘막’(거칠게)과 ‘거르다’가 합성된 말로, ‘거칠게 걸러낸 술’이라는 뜻이다. 막말은 함부로 거칠게 해 대는 말이다. 나쁜 말, 맞다. 또 ‘막’은 ‘밑바닥’, ‘낮은’ 등의 뜻도 있다. ‘막장 인생’이 ‘밑바닥 인생’으로, ‘막노동’이 ‘별다른 기술 없이 몸으로 감당하는 밑바닥 등급의 노동’으로 통하는 데서, ‘막도장’이란 말이 ‘임시변통의 상황에서 아무렇게나 만든 값싼 도장’이었던 데서, 막말의 숨은 의미소를 볼 수 있다. 막말은 말의 품격으로서는 밑바닥 수준의 말이다. 나쁜 말, 맞다. ‘막’은 ‘끝’, ‘마지막’ 등의 뜻도 있다. ‘막차’란 말이 ‘마지막 차’를 일컫는 데서, ‘막내’가 ‘맨끝의 자식’을 뜻하는 데서, ‘막판’이 ‘마지막 판’임을 나타내는 데서, ‘막다른 길’이 ‘길이 끝나는 곳’임을 뜻하는 데서 ‘막’의 의미를 읽을 수 있다. ‘막’에는 심리적으로 ‘마지막 의식’이 숨어 있다. ‘마지막 의
냉장고 속에서 사과 몇 개가 나왔다. 단단했던 사과는 쭈글쭈글 말라가고 있었다. 이렇게 될 때까지 잊고 있던 내가 한심했다. 맛보다도 붉은 빛깔을 잃어버린 것이 더 속상했다. 과일만큼 예쁜 식물이 있을까. 꽃과는 다른 차원의 얘기다. 나는 과일을 무척 좋아한다. 그러다보니 과일가게 앞을 지날 때는 발걸음이 저절로 멈춰진다. 그 앞에서 과일을 구경하는 일은 소소한 행복감을 준다. 요즘에는 과일가게라고 부를만한 곳이 많지 않아서 예전처럼 그런 행복을 누리지는 못한다. 대형마트에 자리를 내 준 과일코너에서는 그런 기분이 느껴지지 않는다. 과일 앞에서는 침샘이 폭발한다. 봄이면 깨알 같은 씨앗이 톡톡 박힌 귀여운 딸기는 가까이 다가가기도 전에 단내를 풍긴다. 무더운 여름의 푸른 수박과 노란 참외가 가득한 과일가게는 대지의 건강함을 한껏 보여주는 장소 같다. 철마다 다른 과일들이 진열되어 있는 과일가게 앞에서는 그것들을 지나간 햇살과 바람과 비를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사람을 생각한다. 더위와 갈증을 풀어주는 한여름의 수박 같은 사람, 빼곡한 이야기를 알알이 매달고 있는 포도송이 같은 사람, 한 입 베어 물면 새콤한 과즙이 가득 고이는 여름 끝물의 풋사과 같은 사람을
약 1년 전인 2024년 6월 24일 경기 화성시에 있는 일차전지 업체 아리셀 공장 3동 2층에 쌓여 있던 리튬 배터리 더미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첫 배터리 폭발 이후 동시다발적인 폭발이 발생하면서 불길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이 사고로 23명(내국인 5명, 중국 국적 17명, 라오스 국적 1명)이 사망했고 8명이 다쳤다. 리튬 배터리의 군납 기준을 맞추려는 욕심에 근로자의 안전을 뒷전으로 두면서 불거진 총체적인 인재(人災)라는 것이 경찰의 수사결과였다. ‘군납 기준을 맞추기 위한 검사용 시료 바꿔치기’ ‘타 기관으로부터 받은 시험성적서의 데이터를 조작해 제출’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하루 평균 생산량의 두 배를 목표로 제조 공정을 무리하게 가동했다. 참사가 발생 이틀 전에도 발열전지 1개가 폭발했지만 별도의 조치를 하지 않았다. 숙련되지 않은 일용직 근로자들이 투입됐고, 공장 내 대피로를 제대로 조성하지 않았다. 1년이 지났다. 32명의 사상자가 난 참사였지만 아리셀 대표 등은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입장을 유지, 유족과 피해자들을 분노케 하고 있다. 이에 23일 아리셀산재피해가족협의회와 아리셀중대재해참사대책위는 수원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시간
[ 경기신문 = 황기홍 화백 ]
경기도가 ‘아리셀 참사(화성 전지공장 화재사고)’ 1주기를 맞아 참사의 원인부터 대응책까지 담은 종합보고서 ‘눈물까지 통역해 달라–경기도 전지공장 화재사고, 그 기록과 과제’를 발간한다고 밝혔다. 도의 자기성찰 기록이자 지방정부가 피해자 목소리로 완성한 국내 최초 ‘피해자 중심’ 종합보고서라는 설명이다. 기억하기조차 두려운 ‘아리셀 참사’의 희생을 교훈 삼을 특별한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 다시는 이 같은 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예방·대응 지침서로 활용되어 기록물의 효용성을 더욱 넓혀나가길 기대한다. 보고서는 1부 경기도의 대응, 2부 자문위원회의 분석과 권고로 구성됐다. 1부는 CCTV 분석, 화재 진압과 소방본부의 재현 실험, 긴급생계비·통역·의료·심리지원 등 도의 대응을 시간순으로 정리했다. 보고서에는 특히 김동연 경기도지사의 ‘이주노동자도 경기도민’이라는 선언 아래 법적 지원체계가 불명확한 외국인 유가족까지 차별 없이 지원한 전국 최초 사회적 재난 지원, 재난안전대책본부의 현장 설치, 솔루션회의 등 새로운 대응 체계에 대한 논의 과정과 성과가 포함됐다. 현장 관계자들의 발언을 구술형 기록으로 재구성해 기존 행정 백서와는 다른 ‘기억 중심의 기록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