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시 산책]그러나 어느날 우연히

2013.10.03 21:11:39 20면

 

그러나 어느날 우연히/이성복

어느날 갑자기 미루나무는 뿌리째 뽑히고 선생은

생선이 되고 아이들은

발랑까지고 어떤 노래는 금지되고

어떤 사람은 수상해지고 고양이 새끼는

이빨을 드러낸다



……

어느날 갑자기 주민증을 잃고

주소와 생년월일을 까먹고 갑자기,

왜 사는지 도무지 알 수 없고



그러나 어느날 우연히 풀섶 아래

돌쩌귀를 들치면 얼마나 많은 불개미들이

고물거리며 죽은 지렁이를 갉아 먹고

얼마나 많은 하얀 개미 알들이 꿈꾸며

흙 한점 묻지 않고 가지런히 놓여 있는지

-이성복 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 /문학과지성사



 

하루가 멀다 하고 들리는 소식은 대개 ‘어느날 갑자기’ 일어나는 사건들이다. 점점 어지간한 사건에는 놀라지도 않는다. 그러다보니 가끔은 왜 사는지 회의에 젖기도 한다. ‘어느날 우연히’ 내가 능동적으로 다른 삶 곁으로 다가가 보는 것은 어떤가. 나를 둘러싼 수많은 이웃들, 꽃과 나무와 개미와 개와 바람과 바위 등등. 사소할지도 모를 그들의 모습을 통해 놀랍도록 반전되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왜 사는지 도무지 알 수 없을 때, 우연히 들친 돌쩌귀 아래 불개미 식구들의 치열한 삶의 현장, 더구나 흙 한점 묻지 않고 가지런히 놓인 알들, 너와 나의 꿈, 누가 삶을 지긋지긋하다 할 것인가. /이미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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