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시 산책]어떤 기다림

2014.03.10 22:01:00 20면

 

어떤 기다림

/고우란

팔순 난 할머니는 콩새의 눈알 같이

작은 콩꽃씨를 텃밭에다 심으시고

헤살헤살 웃으셨다 선한 바람 잘 들라고

잡초를 뽑아 놓고 헤살헤살 웃으셨다

이빨 빠진 구멍으로 헤살헤살 웃으셨다



텃밭에 처박혀 있던 땅꼬마 콩꽃씨께서

실눈 뜨고 일어나 두리번거리다

세 달 박이 어린 젖니를 내밀어

연두 꽃대를 세워 놓고

신비한 주문을 외워 콩새 한 마리

카수 시켰다 가는 귀 먹은 할머니 귀에

--계간 리토피아 2013년 겨울호에서



 

 

 

시인의 상상력이란 게 상상을 초월한다고 말하면 조금은 우스울지도 모르겠다. 시적 상상력이란 것이 얼마나 기가 막힌 것인지 시를 읽다 보면 알게 된다. 인생을 다 살아버린 팔순 할머니가 할 수 있는 일이 꼭 콩꽃씨 하나 텃밭에 심는 일은 아닐 것이다. 자연에 대한 친화가 왜 노년기에 와서 더 심각해지는지도 우리는 그저 짐작만 할 뿐이다. 생명에 대한 경이로운 아름다움이 돋보인다. 콩꽃씨 싹이 터 꽃대를 세우더니 가는 귀 먹은 할머니를 위해 콩새 한 마리 불러서 노래를 들려주고 있다. 콩꽃과 콩새와 할머니가 한 폭의 그림으로 다가오면서 슬그머니 웃게 한다. 이렇게 해서 생명은 생명끼리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면서 더불어 탄생과 소멸을 되풀이하는 것이다. /장종권시인

 

경기신문 webmaster@kgnews.co.kr
저작권자 © 경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영덕동 974-14번지 3층 경기신문사 | 대표전화 : 031) 268-8114 | 팩스 : 031) 268-8393 | 청소년보호책임자 : 엄순엽 법인명 : ㈜경기신문사 | 제호 : 경기신문 | 등록번호 : 경기 가 00006 | 등록일 : 2002-04-06 | 발행일 : 2002-04-06 | 발행인·편집인 : 김대훈 | ISSN 2635-9790 경기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Copyright © 2020 경기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kg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