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시 산책]주름

2014.09.04 21:17:22 16면

주름

/장옥관

돋보기 쓰고 아내를 보니 온 입가에 잔주름이다

주름진 것들은 모두 슬프다



갓 태어난 딸아이 물미역처럼 쪼글쪼글한 얼굴에도, 누운 지

삼 일만에 흰 나비로 빠져나간 어머니의 무명이불에도

지울 수 없는 주름이 잡혀 있었다



힘줄 튀어나오도록 꽈악, 꽉 움켜쥔 젊은 날 주먹의 안쪽에도

분명 주름이 울고 있었을 것이다



주름의 갈피마다 스며들었던

눈물이여, 슬픔이여



꿈이든 사랑이든, 한순간 팽팽히 부풀었다 꺼진 것들에는 필시

주름이 잡혀 있을 터



침대 위 던져놓은 아내의 낡은 브래지어 캡에도

보푸라기 인 주름이 자잘하게 잡혀 있다

-장옥관, 『현대문학』 2013 3월

 

 

 

주름은 시간의 흔적이다. 세상에서 처음 맞보는 기쁨의 흔적도 있다. 가슴이 아파서 오그라들어 그대로 굳어버릴 것 같았던 시간도 있다. 꿈꾸고 꿈을 좇아 혼신을 다했던 소중한 날들의 기록이 들어 찬 것이 주름이 아니던가. 그래서 주름은 세상 어느 것보다 깊은 아름다움을 품고 있다. 갓 태어난 아이는 엄마의 몸 속에서 보낸 흔적이 생의 첫 주름이다. 꽃처럼 활짝 펼쳐질 주름, 그런 주름도 있고 얼굴 곳곳에 길을 내는 주름도 있다.지내온 시간의 조분조분한, 혹은 격정적인 삶의 기록이다. 그래서 주름은 그 자체로 간직해야 할 지울 수 없는 흔적이다. /이명희 시인

 

경기신문 webmaster@kgnews.co.kr
저작권자 © 경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영덕동 974-14번지 3층 경기신문사 | 대표전화 : 031) 268-8114 | 팩스 : 031) 268-8393 | 청소년보호책임자 : 엄순엽 법인명 : ㈜경기신문사 | 제호 : 경기신문 | 등록번호 : 경기 가 00006 | 등록일 : 2002-04-06 | 발행일 : 2002-04-06 | 발행인·편집인 : 김대훈 | ISSN 2635-9790 경기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Copyright © 2020 경기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kg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