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는 현대적 도시의 성장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유럽에서는 산업혁명이 시작됐고, 동아시아는 정치적 안정 속에서 고도의 경제성장을 이뤘다. ‘18세기 도시’는 한국18세기학회에서 활동하는 인문학자 스물다섯 명이 ‘도시’를 키워드로 18세기 장소의 역사성을 탐구한 책이다.
책은 현대적 도시 성장에 가장 중요한 시기인 18세기와 그 전후를 중심으로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쓴 글을 엮었다.
당시 유럽 주요 도시였던 암스테르담, 베를린, 파리, 빈은 물론이고 고대 스파 도시인 영국 바스, 축제가 유명한 베네치아 등 여러 도시를 망라했으며 뉴욕과 보스턴 등 북아메리카, 아시아의 방콕과 자카르타, 한국의 서울과 평양, 수원 등 18세기 도시의 다양한 측면을 보여준다.
책은 5부로 구성된다.
1부 ‘유럽의 중심’에서는 황금기 네덜란드의 투기 광풍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1630년대 ‘튤립 광기’ 에피소드를 비롯해 베를린과 파리, 빈에서 벌어졌던 사건들을 소개한다. 베르사유궁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롭다. 루이 14세는 자신이 직접 등장하지 않아도 마치 자신이 어느 곳에나 있는 것처럼 모두가 행동하게 하는 장치를 베르사유궁에 만들었다.
그 장치란 바로 섬세하고 엄격하게 조직된 궁정 예절과 의례들이었다.
궁정 예절과 예식들은 이미 중세 말 이래 크게 발전했지만 루이 14세는 산만하고 불규칙한 여러 관행을 일괄적으로 종합하고 정리해 베르사유에서 엄격하게 적용되는 규범 체계를 만들었다.
이러한 예절과 예식들은 베르사유 궁정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위계적인 관계들을 몸으로 체득하게 했다.
세세하게 나뉘어 적용되는 몸짓과 표정, 말투와 어법은 미묘하고 복잡한 차별의 위계를 새롭게 재생산해냈고 왕의 총애를 둘러싼 치열한 경쟁은 이 위계의 자리를 차지하는 자들을 계속해서 갈아치웠다.
2부 ‘또 다른 유럽’에는 유럽을 매혹시킨 베네치아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18세기 베네치아는 ‘그랜드 투어’라 불리는 견문 넓히기 여행의 주요 종착지였다. 하지만 매매춘과 도박 등 퇴폐적인 산업도 함께 발달했다.
카르네발레 축제에서는 가면무도회가 성행했으며 특히 베네치아 여성들 사이에서 많은 인기를 끌었던 모레타(Moretta) 가면은 검은색이라는 뜻으로, 대화를 하려면 가면을 벗어야만 했다.
마음에 드는 상대에게만 가면을 벗고 자신의 실체를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 여성에게 자유와 선택권을 부여한 가면이라 할 것이다. 이밖에 3부와 4부는 각각 ‘유럽 주변 도시와 북아메리카‘, ‘아시아’ 도시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하며 5부에서는 서울과 평양, 수원 등 한국 도시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저자인 정병설 교수는 “나는 이 작은 책이 느긋하게 천천히 읽히기를 바란다. 단체여행객이 버스를 타고 다니며 이 명승 저 박물관 어디를 가는지도 모르게 서둘러 찍고 다니는 여행이 아니라, 수천 년 역사의 옛 도시 구도심에 내려 호텔에 짐을 풀고 천천히 시내를 걸어다니다가 노천카페에 앉아 커피 한 잔 마시는 자세로 읽히기를 바란다”고 했다.
/민경화기자 mk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