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와 함께 하는 오늘]사계리

2020.06.17 04:00:00 16면

 

사계리
                               /고주희


우리였던 일들이 이곳에 있다


내가 허리 숙여 조개껍질을 줍듯


언젠가 당신은 아픈 한 계절을 수습하러

조용히 다녀갈지도 모르는 일

당신, 아직 거기인가요?

무대조명처럼 일제히 불 켜진 한치 배들 사이로
눈부시게 출렁이던 바다
수평선을 향해 달려가던 맨발과
가슴 속 가장 먼 별을 당겨 
솨 솨 파도 소리를 내던 두 사람의 눈빛
섬이라는 징후는 
한쪽이 먼저 출발하고
남은 한쪽은 막 정박한 배의 운명으로 기울어지는 것
잠이 빠져나간 자리에 선명한 
물이 들기 전까지만 유효하고 안전한 발자국들
사계의 여름쯤에서 마음을 돌린 일이
색색의 질문으로 쌓여가는 지층일 때
대답인 줄도 모르고 잠겨가던 밤의 노래들
파도 없이도 젖은 열 개의 발가락으로
당신은 정박지가 된다
모르는 섬이 매일 밤 다녀간다


■ 고주희   1976년 제주출생.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해 2015년 《시와 표현》으로 등단했으며, 시집 『우리가 견딘 모든 것들이 사랑이라면』 등이 있다.

고주희 webmaster@kg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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