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와 함께 하는 오늘]나의 시작

2020.06.19 04:00:00 16면

나의 시작
/박병두
나의 무덤엔
새벽마다 안개가 덮이곤 하였다
뒤늦게 선택한 무덤
한두 개쯤은 별을 갖고도 싶었지만
무덤을 비추던
내가 별이라고 여겼던 것들은
금세 스러져 버리곤 했다

 

햇빛이 안개를 말릴 때까지
나는 곧잘 안개 속에 서 있곤 하였다
무덤 밖 어둠을 둥둥 떠 다니던 불빛이
신문배달원의 오토바이라는 것을 알 때까지
가슴엔 무엇이 떠 다니는지 주목했지만
그것들은 조개처럼 입을 다물어
이내 속살을 숨기곤 했다
안개에 숨어

 

슬그머니 지나가버린 계절들과
미성숙 몇 개를 
여기에 내려놓고 
나는 이제, 무덤을 열고 출발하려 한다

 

무덤 밖은 더욱 뿌연 안개로 덮인
더 큰 무덤일 뿐이라고
던져진 조간에는 씌어 있지만
내 속에 무엇이 떠 다니는지 
내내 알아내기 어렵겠지만

 

잘 있거라 내려놓은 것들이여
어느 길에서 해후하게 되더라도
악수하지 않을 예정이니
묵묵히 지나가주기 바란다.

 

■ 박병두   1964년 전남 해남 출생. 한신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해 1985년 ‘T.V문학관’ 대본을 쓰면서 창작 활동을 시작했다. 『월간문학』, 『수필문학』, 『현대시학』, 『열린시학』을 통해 문단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해남 가는 길』 외 3권, 수필집 『흔들려도, 당신은 꽃』 외 3권, 시 산책집 『착한 사람을 보면 눈물이 난다』, 장편소설 『유리상자 속의 외출』외 3권이 있다. 고산문학상, 이육사문학상, 전태일문학상, 공무원문학상, 수원시문화상, 이동주문학상, 김달진문학상 특별상 등을 수상했다.

박병두 webmaster@kg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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