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주의는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목소리가 동등한 가치를 가질 때 비로소 완성된다. 이는 중앙정부의 정책 결정 과정에서뿐만 아니라, 지방자치 단위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어야 하는 원칙이다.
우리나라 지방자치는 지난 30여 년 간 지속 발전해 왔으며, 이제는 지역 주민의 실질적인 삶과 밀접하게 연결된 정책을 결정하는 중요한 기제로 자리 잡았다.
지방자치가 그 본래의 기능을 온전히 수행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충족돼야 할 요건이 있다. 지역 주민의 목소리가 온전히 반영될 수 있도록, 지방의회가 그 역할을 충분히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경기도 기초의원 정수의 불균형은 이 같은 기본 원칙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으며, 대의민주주의의 본질을 훼손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경기도는 우리나라 최대 광역도시로, 전체 인구의 27%에 해당하는 1370만 명이 거주하고 있다. 그러나 지역주민의 생활과 가장 밀접하게 지역 발전과 민의를 대변해야 하는 기초의원은 전국 2988명 중 15%에 불과한 463명에 머물러 있다. 이는 단순한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민주적 대표성의 불균형을 의미한다.
기초의원 1인당 평균 인구수를 비교해 보아도 그 차이는 더욱 극명해진다. 전국적으로 기초의원 1인당 평균 인구수는 약 1만 6789명이지만, 경기도에서는 2만 9569명에 이른다.
특히 오산시는 그 불균형이 가장 심각한 수준에 속한다. 1991년 지방자치제 시행 당시 오산시의 인구는 6만 7000여 명에 불과했으나 현재는 약 25만 명에 달하며, 행정동도 기존 6개에서 8개로 증가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변화에도 불구하고 기초의원 정수는 여전히 7명에 머물러 있다. 이는 기초의원 1인당 인구수가 3만 4471명에 달하는 것으로, 전국 평균보다 2배 이상 많은 수준이며, 오산시와 같이 의원정수가 7명인 전국 54개 지자체 기초의원 1인당 평균 인구수가 8560명으로 감안하면 4배에 가까운 차이를 보인다.
그만큼 만나야 할 주민이 많다는 얘기이고, 단순 비교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을지 모르지만 오산시의회 의원의 업무 강도가 타 의회 의원의 4배에 달한다는 의미도 된다.
지방의원은 지역 주민을 대변하고 정책을 결정하며 집행부를 견제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하지만 이러한 불균형 속에서 그 역할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헌법이 보장하는 평등권의 원칙에 따르면 모든 국민은 동등한 권리를 가지며 특정한 지역에 산다는 이유로 차별을 받아서는 안 된다. 그러나 현재 경기도의 상황을 보면 지역에 따라 유권자의 투표 가치가 현저히 달라지는 심각한 불균형이 존재한다.
이는 단순한 행정 문제를 넘어 헌법 가치에도 위배되는 사안이다. 헌법재판소가 2018년 선거구 획정과 관련해 허용 가능한 인구 편차 기준을 기존 4:1에서 3:1로 강화한 것도 바로 이러한 문제의식을 반영한 결정이었다.
이 기준을 적용하면 현재 경기도의 기초의원 정수는 최소 80명 이상 증원돼야 하며, 이는 단순한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필연적인 조치라고 할 수 있다.
경기도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역동적인 변화를 겪고 있는 지역으로, 특례시로 지정된 5개 도시 중 4곳(수원, 용인, 고양, 화성)이 경기도에 속한다. 이들 지역은 급속한 인구 증가와 도시 확장으로 행정 수요가 나날이 증가하고 있다.
일각에선 이러한 사정과는 달리 기초의회 의원 정수를 늘리는 것에 대해 반대하는 의견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일부 기초의원들의 각종 일탈행위가 매년 끊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학계에선 의원 수를 늘려야 한다는 논의도 이어져 오고 있다. 견제와 균형의 원리에 따라 집행기관을 제대로 견제할 수 있도록 입법기관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1991년 지방자치 부활이후 지방자치단체는 그 규모가 날로 비대해졌다. 예산 규모만 보더라도, 최근 20년 동안 전국 지자체의 총 예산 규모는 2004년 111조 원에서 2024년 434조 원으로 4배 늘었다.
예산이 비대해진만큼 그 권한도 커진 집행부에 비해, 견제와 감시의 역학을 해야 할 기초의회 의원은 2006년의 2888명에서 현재 2988명으로 단 1% 증가에 그쳤다.
지방자치 활성화에 대한 유권자들의 요구가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날로 비대해지는 행정기관에 대한 감시와 견제를 위해서는 최소한의 의원 정수 확대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나오는 배경이다.
이러한 불균형을 바로잡기 위해 정부와 국회가 적극 나서야 한다. 특히 공직선거법 개정을 통해 기초의원 정수를 조정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조치다.
이는 단순한 숫자의 조정이 아니라 경기도민의 투표 가치가 공정하게 반영될 수 있도록 하는 중요한 조치이며, 지방자치의 근본 취지를 다시금 되새기는 계기가 될 것이다.
지방자치는 단순한 행정적 기능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가 실현되는 공간이다. 그러나 현재 경기도의 기초의원 정수 불균형은 이러한 가치를 실현하는 데 있어 중대한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이제는 더 이상 이러한 불균형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 경기도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인구가 거주하는 광역자치단체이며, 그만큼 지역 주민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구조를 마련하는 것이 절실한 과제다.
오산시의회는 정부와 국회가 이러한 문제의 심각성을 깊이 인식하고 지방자치의 미래를 위한 책임 있는 행동을 보여줄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 경기신문 = 지명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