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진의 언제나 영화처럼] 한국사회가 불길하다. 이것은 일종의 경고음이다

2025.03.24 11:17:37 16면

계시록 - 연상호

 

‘계시록’은 넷플릭스가 가장 사랑하는 감독으로 알려져 있는 연상호의 신작 영화이다. 이 작품을 보고 있으면 두 가지 의문이 든다. 연상호가 왜 이렇게 ‘정상적’이면서도 현실적인 상상력의 이야기를 스스로 만들어 냈을까,가 하나이고(원작 웹툰은 연상호와 최규석의 공동저작이다. 아마도 연상호가 스토리를, 최규석이 그림을 그렸을 것이다.) 또 하나는 도대체 멕시코의 대표적인 감독 알폰소 쿠아론(‘그래비티’, ‘로마’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두 번 수상했다.)이 왜, 그리고 어떻게 이 영화의 기획에 참여했을까 라는 점이다. 뒤의 것은 특히 연상호가 인터뷰를 통해 직접 밝히는 것 외에는 알 길이 없는 내용이다.(공식 인터뷰는 24일 있을 예정으로 이 글은 그 전에 작성된 것이다.)

 

 

영화 ‘계시록’은 연상호의 유명 드라마인 ‘지옥’ 시리즈나 ‘방법’같은 작품과는 다른 선상에 있는 것이다. ‘지옥’에서는 지옥의 사자가 나오고 ‘방법’에서는 죽은 자들이 살아나 살인을 저지른다. 극단의 상상력의 캐릭터를 앞세운 작품이라는 얘기이다. 이번 ‘계시록’은 그보다는 현실 세계에 좀더 발을 붙이고 있다. 굳이 말하자면, 대중들에게 다소 외면받았던, 연상호의 저주받은 걸작에 해당하는, ‘염력’이란 영화에 더 가깝게 서 있는 작품이다. ‘염력’은 이른바 용산사태에서 희생된 사람들에 대한 진혼곡 같은 내용이었다. 무자비한 철거 전쟁에서 사람들을 살리고자 했다면 차라리 염력을 쓰는 남자가 있었어야 한다는, 연상호 특유의 사회적 상상력과 인간적 고민이 개입된 작품이었다. 이번 영화 ‘계시록’도 같은 선상에 있다. 폭력성이 내면화 될 대로 내면화 돼 있어서 어떻게 손 쓸 재간이 없을 만큼 망가져 있는 지금의 한국사회에 대해 연상호는 그 나름대로의 치유책, 치료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자신의 사회의식을 한층 더 개입시키고 발전시킨 작품이다. 지옥의 사자나 좀비 같은 캐릭터의 도발성을 없앴지만 사회의식 면에서는 자신이 더욱 도발적인 면을 지니게 됐음을 보여주고 있다.

 

계시록은 요한 묵시록의 다른 이름이다. 성경의 마지막 권이며 총 22장 22절로 돼있다. 사도 요한이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규율을 지키지 아니하고 믿음을 저버리면 7년 환난 등이 도래할 것이라는, 다소 무섭고 위협적인 내용으로 돼있다. 흔히들 성경의 종말론으로 해석하고 있어서 교파, 특히 이단들은 이를 예수 재림의 근거로 삼으며 기행과 비행을 일삼는 ‘말씀’으로 이용하기도 한다. 따라서 영화 ‘계시록’은 제목만으로도 한국 교회’들’의 비이성적 상황을 설정으로 삼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주요 인물은 세 명이다. 경기도 무산이라는 곳(가상의 공간이다.)에서 개척교회를 일구고 있는 목사 성민찬(류준열)이 있다. 여기에다, 여자나 여아를 유괴납치해 학대를 일삼는 이상성격의 범죄자 권양래(신민재)가 성민찬과 얽힌다. 형사 이연희(신현빈)는 자신이 아끼던 여동생 이연주(한지현)를 권양래에게 잃었다. 이연주는, 권양래에게서 간신히 탈출했지만 법원이 그가 어릴 때 아버지로부터 모진 학대를 받았고, 그로 인한 트라우마로 ‘외눈박이 귀신’에게서 정신을 지배받고 있다는 정신과 의사(김도영)의 법정 진술에 따라 가벼운 형을 언도하자 그 충격을 견디지 못해 자살한다. 언니 이연희 경위는 복수심에 강력반에 지원을 한다. 그녀는 권양래의 뒤를 좇고, 캐고 있는 중이다.

 

사건의 발단은 교회에서 벌어진다. 권양래는 범죄 욕구가 다시 도진다. 그는 중학생인 신아영(김보민)의 뒤를 좇아 오다가 교회까지 오게 되고 목사 성민찬의 눈에 띄게 된다. 성민찬은 그가 전자발찌를 차고 있는 것을 목격한다. 성민찬의 아내는 목사 부인임에도 불륜을 저지르고 있다. 성민찬도 그걸 알고 있다. 성민찬은 무산시에 들어설 대형교회의 담임목사 직을 노리고 있어서 아내의 간음 행위에 대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아내는 여느 때처럼 동창 모임이 있다며 불륜남을 만나러 나가고 그날 저녁 아이가 사라진다. 성민찬은 그것이 권양래의 짓이라고 생각하고 그를 추적하다가 천일산 여우고개라는 길목에서 그를 우발적으로 살해(했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때부터 이 영화의 드라마는 롤러코스터를 타게 된다. 성민찬은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한다. 경사 이연희는 권양래를 체포해 없어진 중학생 아이 아영의 행방을 찾는 것이 순서라고 생각하면서도 종종 환각 속에 나타나는 죽은 동생 연주의 명령대로 가차없이 그를 죽이고 싶다는 욕구에 시달린다. 이 둘과 맞닥뜨리게 되는 권양래는 스스럼없이 둘 다를 향해 자신보다 더 미친 인간이라고 소리지른다.

 

 

권양래가 외눈박이 괴물에 시달리는 것과 목사 성민찬이 모든 것을 하늘의 계시라고 부르짖는 것, 형사 이연희가 환각에 시달리는 것은 사실은 모두 이음동의어(異音同義語)이다. 단어는 다르지만 같은 성격의 이상질환이다. 그 모든 것은 개개인 스스로가 무엇인가에 대한 사회적 핑계나 해법을 위해 창조해 낸 것에 불과하다. 사람들에게 가장 무서운 것은 잘못된 확신이며 유괴범이 범죄를 저지르는 것과 목사가 하느님을 내세워 혹세무민 하려는 것, 형사가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하는 것 모두가 같은 소행이다. 연상호의 영화 ‘계시록’이 보여주려는 주제는 바로 이 지점에 있다. 연상호는 지금의 한국 사회가 갖가지 이상 징후에 시달리고 있고 그 원인은 개개인 모두 스스로의 환각과 광적인 확신에 빠져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교회가 문제의 핵심에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의 스토리가 다소 극단적으로 포장돼 있지만 연상호가 내리는 진단의 요체는 꽤나 명징한 셈이다.

 

연상호의 기독교 비판은 일관적이다. 그건 ‘지옥’같은 드라마에서도 두텁게 제기됐던 부분이다. 연상호는 기독교가 사람들을 광적으로 만들고, 잘못된 확신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고 있으며 자본주의적 타락의 최극단에 서있다고 생각한다. 교회가 순전히 사업상의 이익을 위해 신도들을 모으고 결국 대형화의 욕망을 저버리지 못한다고 비판하는 것도 여전하다. 이번 ‘계시록’ 또한 그 같은 자신의 기독교관을 여지 없이, 과감하게 개진하고 있다. 교회는 위선적이고 타락했다. 

 

연상호가 그려내는 공간 또한 늘, 한국사회만큼 불안하고 불길하기 그지 없다는 것 역시 특징 중 하나이다. 비가 자주 내리고 음습한 산길의 구부러진 길이 종종 부감 쇼트로 보여진다. 이번 영화에서는 특히 그것이 마치 하늘 위에서 누가 내려다 보는 것 같은 시점 쇼트를 의미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폐건물, 남루한 골목길, 영세민의 집안 풍경 등 연상호가 그리는 한국 사람들의 일상은 비루하기 이를 데가 없다.  영화 ‘계시록’이 묵시록이자 종말론의 내용을 암시하는 것인 양 지금의 우리사회가 매우 어두운 지경과 그 위기에 처해 있음을 보여주려 애쓴다. 

 

 

무섭고 끔찍하며 잔혹한 이미지와 서사를 즐겨 사용함으로써 호러 장르 감독의 카테고리에서 거의 벗어난 적이 없는 연상호는 이번 ‘계시록’에서만큼은 그다지 무섭지 않게 그려낸다. 물리적 폭력이 즐비하게 표현되지도 않는다. 그러나 그 안의 내면은, 과할 만큼 불길하다. 지금의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 자신이 얼마나 극단적 사고에 사로잡혀 있는지, 또 얼마나 쉽게 그런 생각이나 이념, 종교에 사로잡히게 되는 지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연상호의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이든 그렇지 않은 사람이든 이번 ‘계시록’은 그 어떤 작품보다 한국사회에 대한 경고음을 울리고 있다는 점에서, 그 유의미성 만큼은 높이 평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여진다. 그 때문에 영화가 다소 재미가 없어졌거나 연상호 특유의 감각이 떨어졌다거나, 기이한 ‘글로벌 표준율’같은 작품이 됐다거나 하는 지적은 있을 수도 있겠다. 개인적으로는 ‘지옥’의 연상호보다 이번 ‘계시록’의 연상호를 더 지지하게 된다. 넷플릭스에 지난 3월21일 공개됐다. 아직 글로벌 순위에서는 그리 높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지는 못하다. 호불호가 크게 엇갈릴 것으로 예상된다.  

오동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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