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도미술관이 세 개의 기획전을 동시에 개막하며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다. 이 중 '신진작가 옴니버스 전'은 경기도미술관이 발굴한 신진작가 지원 프로그램으로 박예나의 '뒤집힌 틈'이 가장 먼저 기획 전시되고 있다.
‘신진작가 옴니버스전’의 첫 주자인 박예나는 인공 생태계에 대한 가설을 바탕으로 설치 작업과 미디어 작업을 병행해 왔다. 그는 인간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장치와 시스템이 오히려 인간의 사고와 행동을 통제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박예나는 이 같은 구조를 '생명체'로 치환해 시각화하며, 익숙한 인공물에 생명성을 부여해 새로운 생태적 상상력을 제시해왔다.
이번 전시 '뒤집힌 틈'에서 그는 '아티젝타(artijecta)'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세계관을 펼친다. 아티젝타는 인공(artificial), 사물(object), 데이터(data)를 결합한 가상의 존재로, 인간을 숙주 삼아 데이터를 흡수하며 자라나는 생명체다. 박예나는 이 존재를 통해 인간 생태계와 인공 생태계의 접점을 상상하고, 동시대의 기술 환경을 예민하게 되묻는다.

대표작 '사건의 부분_챔버 n.3'은 2024년 개인전 'Interstitium'에서 선보였던 작품의 연장선이다. 전시장을 들어서면 물컹한 메모리폼 바닥과 뒤엉킨 전선 다발, PC 회로기판, 각종 가구 조각과 기계 부품이 결합된 거대한 구조물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이 구조물은 '챔버', 즉 아티젝타의 내부 기관 중 하나로 설정되어 있으며, 반강제적 동선을 따라 한 사람씩 공간 안으로 진입할 수 있게 설계됐다.

관람자는 구조물 내부로 들어가며 작은 구멍을 통해 바깥을 엿보거나, 어둡고 낯선 통로를 지나며 마치 실험실 속 미지의 생물체 내부를 탐험하는 것 같은 감각을 경험한다.
박예나는 이러한 공간 구성에 대해, 익숙한 인공 사물들이 유기적으로 얽히며 인간을 둘러싼 새로운 생태계를 구성한다는 상상을 제안한다. 그가 만든 구조물 안에서 관람자는 오히려 인간이 감각적으로 통제당하는 위치에 놓인다는 낯선 경험을 하게 된다.
정담회에서 박예나는 "아티젝타는 우리 삶의 기반이 된 데이터와 시스템들이 스스로 생명력을 갖고 자라나는 존재"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번 전시는 그런 존재 기관 중 하나인 챔버를 대중에게 공개하는 실험실 같은 장면을 연출하고자 했다"며 "자신의 작업을 통해 미래 생태의 새로운 감각과 상상을 제시하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이밖에 같은 날 개막한 '한국현대목판화 70년: 판版을 뒤집다'는 지난 70여 년간 한국 현대목판화의 변천사를 4개 주제로 구분해 조망한다. 자연과 서정성, 실험과 현대성, 서사와 비판성, 서사와 실존성 등 시대를 관통한 조형성과 주제의식을 아우르며, 약 300점의 작품을 통해 한국 목판화의 미학을 보여준다.

소장품기획상설전 '비(飛)물질: 생각과 표현 사이의 틈'은 퍼포먼스를 키워드로 삼아 미술관 소장품의 새로운 감상법을 제안한다. 비물질적인 수행성을 전시 구성에 녹여, 생각과 표현 사이의 간극을 실험적 전시 형식으로 풀어낸다. 전시는 ‘막’과 ‘장’이라는 연극적 구조로 운영되며, 일부 작품은 퍼포먼스 워크숍을 통해 관람객과의 접점을 확장할 예정이다.
[ 경기신문 = 류초원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