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진의 언제나 영화처럼] 야당 얘기가 아닌 척 결국 야당 얘기인 영화 '야당'

2025.04.28 13:08:04 16면

야당 - 황병국

 

영화 '야당'은 일부의 오해처럼 정치영화가 아니다. 여당이니 야당이니 하는 얘기가 아니다. 그러나 그건 표면적인 것이다. 결국 이 '야당'도 여야의 이야기, 정치의 이야기로 귀결된다. 모든 건 다 정치와 연결된다. 특히 한국사회가 그렇다. 한국사회를 그리려는 영화는 어쩔 수 없다. 정치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다.

 

 

영화 '야당'에서 야당이란 마약 조직 내부자와 대규모 거래를 위한 판을 짜고, 그 정보를 검찰에 넘기면서 조직 일부는 살리고 조직 일부는 검거하게 하는, 일종의 고도의 밀정 같은 역할을 하는 사람 혹은 단체를 가리키는 말이다. 원래 있는 말이 아니라 마약 범죄에서 쓰이는 은어인 모양이다. 그러니까 '야당질 당했다'는 얘기는 마약 조직 혹은 마약범이 한 사기꾼의 술수에 넘어가 조직이나 돈을 잃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영화 '야당'은 이강수(강하늘)란 인물을 중심으로 그를 철저하게 이용해 먹고 버리는 간악한 검사 구관희(유해진)와, 구관희에게 뒤통수를 맞고 수뢰혐의로 구속까지 당하는 서울경찰청 마약수사대의, 일명 옥황상제라 불리는 형사 오상재(박해준) 등 세명이 벌이는 삼각 관계의 속고 속이는 이야기이다. 여기에 대통령 후보 아들로 마약 중독자인 조훈(류경수)이라는 파렴치범이 나오고 이 인간 탓에 중독자가 됐다가 추락한 여배우 엄수진(채원빈)이 얽힌다. 잔혹한 마약상 염태수(유성주)가 있고 북한산 마약을 밀매해 들여 오는 김학남(김금순)이란 여자가 활개친다. 인물들이 얽히고 설킨다. 이야기를 풀어 가는 게 만만치 않은 작품이다.

 

영화 '야당'은 일종의 하이퍼 리얼리즘(극사실주의) 계통의 영화이다. 류승완의 '부당거래'(2010), 박훈정 감독의 '신세계'(2013), 우민호 감독의 '내부자들'(2015)과 같은 계보의 작품이다. 하이퍼 리얼리즘 영화란, 사회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담아 내되, 거의 모사(模寫)에 가까울 만큼 현실성을 극대화하는 작품을 말한다. 그러나 앞선 작품들이 워낙 큰 인기를 모았던 탓인데다, '내부자들'과 '야당'이 같은 제작사인 하이브 미디어코프의 작품 탓이어서인지 마치 자기복제를 한 느낌을 준다. 바로 그 점이 개봉 초기 '그 얘기가 그 얘기 아니냐'는 선입견을 불러 일으켰고 그래서 흥행 조짐이 뒤늦게 불이 붙게 된 작품이 됐다. '야당'은 오히려 개봉 일주가 지난 후, 순전히 관객들의 입소문으로 흥행 바람을 타고 있다. 

 

 

그렇게 된 데는 같은 맥락의 이야기라도 영화가 지닌 역동성이 어느 정도인가에 따라 대중 관객의 만족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야당'은 '내부자들' 류의 영화와 같으면서도 다른 지점에 착지하고 있는 작품이다. 그건 대중들이 서있는 위치가 10년 전인 2015년 전후와 지금이 많이 달라져 있다는 '사회학적 요인'도 작동하고 있다. 그간 우리사회는 얼마나 더 뒤틀려졌으며 그 사회 속에서 사람들은 얼마나 더 시달려 왔는가, 그렇다면 영화는 지난 10년의 일그러진 그 고통을 잘 담아내고 있는가, 그렇지 않는가에 따라 대중의 반응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영화 '야당'은 다소 폭력적이고 과장된 비틀림이 있다손 치더라도 지난 몇 년간의 한국사회가 지닌 병적인 욕망, 그 추악한 민낯을 그려내는 데 모자람이 없어 보인다. 관객들이 현재 이 영화에 열광하고 있는 것은 과도한 폭력이 주는 기이한 쾌감 때문이 아니라 어쩌면 이런 내용의 영화야 말로 지금의 사회를 수렁 속에서 건져 내는 밧줄과 같은 역할을 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기대감 때문이다.

 

 

영화 속 검사 구관희는 끊임없이 머리를 굴린다. 마약 '판'을 짜고 사람을 이용해 먹고 가차없이 잘라 내며 비열한 뒷 공작으로 사람에게 올가미를 씌워 재판과 투옥이라는 '영혼 털이'를 자행한다. 그런 과정을 통해 구관희는 서부지검의 부부장 검사까지 오르고 결국 그 위와 더 그 위로 점차 올라가려 한다. 구관희는 유력 대통령 후보의 아들 조훈이 벌인 마약파티를 은폐하기 위해 사람을 죽이고, 멀쩡한 경찰을 감옥에 보내는 한편, 뇌물 제공 혐의로 구속시킨('구속된'이 아니고) 대기업 오너에게 진술을 달달 외우게 해 상대당 후보에게 몇날 며칠에 돈을 건넸다고 연습 시킨다.(이건 마치 한명숙 총리가 구속됐던 뇌물수수사건의 일부를 연상시킨다.) 구관희는 다그치는 조훈에게 "내가 대통령을 만들 수도, 대통령을 못하게 할 수도 있다"고 큰 소리를 치는가 하면 결국 소변 검사를 위조해 조훈을 석방 시키려 한다. 동시에 상대당 대통령 후보에게 뇌물이 건네졌다는 자신의 각본에 맞춰 여성 대변인에게 구속 '영장을 치겠다'고 말한다. 이쯤 되면 악마의 끝판왕이지만 이런 내용에 사람들이 흥미를 느끼는 건 지난 4~5년간 우리 사회 내부에 그런 일이 횡행했었기 때문이다. 대중들은 한국사회가 정치 검찰들의 왕국이었으며 그들이 자행하는 온갖 법기술로 이런 저런 사람들이 난자돼 왔음을 잘 알고 있다. 

 

영화 '야당'은 마약 거래 이야기로 시작해 정치 영화로 끝을 낸다. 그 이야기를 전환시키는 연출 솜씨가 만만치 않다. 영화를 구성하는 세 가지 요소, 곧 스토리와 스토리 텔링(스토리를 구축하는 방식), 캐릭터 설정 모두에 모자람이 없다. 원숙하고 출중하다. 영화를 만든 황병국 감독은 노장급에 속한다. 그의 데뷔작 '나의 결혼 원정기'(2005)는 발군의 작품이었다. 그럼에도 그의 연출 호흡은 너무 더딘 편이어서 '특수본'(2011)이 실패한 이후 연출 대신 수많은 영화의 개성있는 조역으로 영화적 입지를 유지해 왔다. 이번 '야당'은 황병국의 연출 실력이 녹슬지 않았으며 영화적 패기가 죽지 않았음을 보여 준다. 유해진의 남다른 연기가 돋보이며 박해준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강하늘은 최선을 다했지만 이번 역에 있어 자신의 연기 톤을 '카우보이 비밥'의 주인공 스파이크 흉내를 낸 것처럼 느껴진다. 그걸 알고 한 것인지 아니면 모르고 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강하늘-이강수 캐릭터가 영화 전체를 약간 코미디처럼 만든 부분도 있다. 이건 호오가 엇갈릴 것이다.

 

 

영화 '야당'은 어려운 영화가 아니다. 그러나 영화가 펼쳐 놓는 여러가지 우리 사회의 모습과 그 해법은 여간 어려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영화 '야당'은 이야기와 인물을 여러 가닥으로 꼬아 놨지만 그 매듭의 시작을 알고 나면 그리 복잡한 영화가 아니다. 그러나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심사가 꽤나 복잡해진다. 영화 '야당'은 겉으론 꽤나 통쾌하고 대범한 척 한다. 그러나 역시 뒤로 가면 갈수록 이상한 울분이 쌓인다. 영화 '야당'은 알고 보면 겹겹이 주제를 감추고 있다. 양파 껍질 벗기듯 그 하나하나의 주제를 알아채다 보면 이 영화가 꽤나 심지가 있는 작품이란 걸 알게 된다. 올 상반기 한국 영화 중 거의 유일하게 괜찮은 수작이다. 상업영화라면 적어도 이 정도는 해야 한다. 

오동진 chowon@kgnews.co.kr
저작권자 © 경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흥덕4로 15번길 3-11 (영덕동 1111-2) 경기신문사 | 대표전화 : 031) 268-8114 | 팩스 : 031) 268-8393 | 청소년보호책임자 : 엄순엽 법인명 : ㈜경기신문사 | 제호 : 경기신문 | 등록번호 : 경기 가 00006 | 등록일 : 2002-04-06 | 발행일 : 2002-04-06 | 발행인·편집인 : 김대훈 | ISSN 2635-9790 경기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Copyright © 2020 경기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kg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