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갑자기 멀쩡하던 도로가 아래로 푹 꺼져 차량이 처박히고, 인명피해까지 발생하는 ‘땅 꺼짐’ 사고가 전국적으로 빈발하고 있다. 지하수의 흐름이 바뀌어 구멍이 생기거나, 상·하수관로의 손상으로 인한 누수가 원인인 경우가 많다. 땅을 파헤치고 공사를 벌이면서 방책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게 원인이 되기도 한다. 시한폭탄이나 살얼음판 위에서 사는 듯한 시민들의 공포를 제거할 전문 검사장비 투입 등 사고 예방책이 대폭 강화돼야 할 시점이다.
‘땅 꺼짐’ 사고가 지역 구분 없이 전국적으로 자주 발생하면서 지반침하에 대한 지자체 차원의 관심이 태부족했다는 지적이 대두되고 있다. 수원시는 팔달구 등 구도심에서 상수도관 등 기반 시설이 노후화된 곳이 많아 ‘땅 꺼짐’ 사고에 대한 위험이 있다는 우려에도 정작 행정감사 등에선 특별한 대책 논의가 이뤄지지 않는 상황이다.
지난해 7월 11일과 20일 수원시청역 사거리에서 싱크홀이 잇따라 발생했다. 또 2022년 매탄권선역 앞 도로, 2021년 수원시청역과 장안구 연무동의 한 이면도로 등 3곳, 2016년에서 영통구 원천동의 한 도로 등 4곳 등 싱크홀 피해가 있었다.
지난 3월 25일에는 장안구 정자동 동신2차아파트단지 앞 주자창에서도 깊이 2m의 싱크홀이 발생했다. 싱크홀은 도로에서 주로 나타나는데, 이 사건의 경우 입주민들의 왕래가 잦은 아파트 단지 내에서 발생해 여차하면 중대한 인명피해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등장한다. 사고가 주기적으로 발생하고 있음에도 구체적인 대책은 전무한 실정이다.
국토교통부 지하안전정보시스템(JIS)의 통계에 따르면 2018년부터 2024년까지 7년간 발생한 지반침하 사고는 전국에서 1천337건이나 된다. 이 중 경기도에서 발생한 사고만 289건(21.6%)으로서 전국 17개 시·도 가운데 가장 많다. 연간 41.2건꼴이고, 매달 평균 3.4건이 발생했다. 택지 개발과 지하 교통 개발이 늘면서 경기도의 땅 꺼짐 사고 위험도도 한결 높아졌다.
똑같은 고민을 안고 있는 서울시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시장 주재로 안전점검회의를 열어 지표투과레이더(GPR)를 이용한 구체적인 탐사계획을 수립했다. 우선 5곳의 도시·광역철도 건설공사 구간 49.3㎞와 주변 도로에 GPR 탐사를 시행하기로 했다. 또 자치구가 자체 선정한 우선 점검 지역 50곳(45㎞)도 전수 탐사할 계획이다. 아울러 전국 최초로 지반 변화 실시간 계측 시스템인 지반침하 관측망도 설치·운영한다고 밝혔다.
지자체들의 현실은 막막하다. GPR 탐사 장비를 자체적으로 보유한 지자체는 한 곳도 없다. 장비를 보유한 민간업체에 의뢰해야 비로소 장비 투입이 가능하다. 굴착 공사 주변에 ‘위험 지역’ 공지나 하는 정도의 주먹구구식 행정을 면치 못하고 있는 처지다. 길가에 나붙은 ‘위험 지역’ 공지만으로는 언제 어떻게 발생할지 모르는 ‘싱크홀’ 사고는 방지가 안 된다. 흔해빠진 경고에 만성화된 시민들은 아무런 경계심 없이 무심히 그냥 지나다닌다.
‘땅 꺼짐’ 사고의 특징은 사고가 나기 전에는 아무런 징조를 발견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땅속에서 일어나는 일이라, 웬만해서는 낌새조차도 느낄 수가 없다. 결국 운이 없는 사람만 멀쩡하게 길을 가다가 횡액을 당하는 형국이라 ‘땅 꺼짐’은 황당하기 짝이 없는 후진국형 사고인 셈이다.
‘땅 꺼짐’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땅속 상황을 정밀하게 관측할 수 있어야 한다. 위험성이 발견된 지역은 출입 통제와 함께 사고요인 제거 작업이 적극적으로 선행돼야 한다. 특히 경기도에서 많이 일어나는 토목공사나 지하 시설 공사 현장을 중심으로 GPR 탐사와 같은 첨단 장비를 동원한 전면 조사부터 진행돼야 한다. 차를 몰고, 길을 걸어가며 언제 땅이 꺼질지 몰라 노심초사하는 일상이라니, 이게 말이 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