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당 재건축 ‘입안제안’ 방식, 주민 갈등·비용 논란 키우나

2025.07.02 10:46:35 5면

성남시 “주민 자율” 내세웠지만…현장선 “비용 전가, 책임 회피” 성토
정비계획 미리 심의 안되면 지정 자체 난망…사업 지연 우려도

 

“재건축도 주민이 알아서 하라는 말입니까?”

 

성남시가 분당 신도시 정비구역 선정 방식으로 ‘입안(주민)제안’ 방식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정비사업을 준비 중인 단지들 사이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시는 주민 자율성과 사업 추진의 속도를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정작 현장에서는 행정의 책임을 주민에게 떠넘기는 방식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2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성남시는 지난 5~6월 동안 다섯 차례 간담회와 설문조사를 통해 “입안제안 방식이 선호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설문 응답자 1만 2500명 중 64%가 입안제안에 찬성했다는 것이 시의 설명이다. 그러나 이같은 수치는 응답자의 참여 동기, 정보 접근성, 경제적 배경 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뒤따른다.

 

◇ 비용 부담은 주민 몫…“정비업체·신탁사 배불리는 구조”

 

가장 큰 논란은 비용 부담이다. 입안제안 방식은 단지별로 자체적으로 수억에서 수십억 원에 이르는 정비계획서를 선제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공모 방식처럼 선정된 단지만 비용을 지불하는 구조가 아니라, 모든 신청 단지가 ‘선투자’를 해야 하는 구조다.

 

분당구 A단지 재건축 추진위원회 권모 위원장은 “계획서를 만들기 위해 정비업체나 신탁사와 계약해야 하고, 이 과정에서 10억 원 이상의 비용이 드는 곳도 있다”며 “선정되지 못할 경우 이 비용은 고스란히 손실로 돌아온다”고 말했다. 그는 “입안제안은 결국 정비업체와 신탁사에 유리한 방식”이라며 “공공의 관리·감독 책임은 사라지고, 주민은 경쟁과 갈등에 내몰린다”고 했다.

 

더 큰 문제는 소규모 단지들의 참여 자체가 구조적으로 어려운 점이다. 재정 여력이 부족한 단지는 입안제안의 장벽을 넘지 못해 애초부터 제외될 가능성이 높다. “돈 있는 단지는 정비계획서를 내고, 돈 없는 단지는 바라만 보는 방식”이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 행정의 주관적 평가…“선정 탈락 시 소송전까지 갈 수도”

 

입안제안 방식은 정비계획을 미리 마련한 단지 중에서 시가 ‘선도지구’를 선정하는 구조다. 하지만 선정 기준은 여전히 모호하다. 권 위원장은 “정성적 평가가 주가 된다면 선정 여부를 놓고 탈락 단지들의 반발이 뒤따를 것”이라며 “정보공개 청구, 나아가 행정소송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입안제안 방식이 오히려 사업을 늦출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공원, 학교, 도로 등 주요 기반시설과 관련한 사전 협의와 심의 없이 정비계획이 수립될 경우, 지정 자체가 지연되거나 반려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정비업계에서는 “빠르면 6개월, 길게는 1년 이상 지정 시점이 늦춰질 수 있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2025년으로 예정된 특별정비구역 지정 역시 미뤄질 가능성이 거론된다.

 

성남시는 “정비계획은 향후에도 활용 가능하며, 일부 비용만 먼저 부담하면 된다”는 입장을 내놨다. 그러나 주민들은 “재정 여력을 고려하지 않은 탁상행정”이라고 반박한다. 특히 시의 설문조사가 실질적 민의를 반영했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된다. 온라인 설문과 일부 간담회를 통해 도출된 결과가 ‘형식적 여론 수렴’에 그쳤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정책 방향이 ‘주민 자율’이라는 미명 하에 공공의 역할을 축소하고 있다고 본다. 한 도시계획학과 교수는 “신도시 재정비는 국가적 수준의 도시 재생 과제이자, 삶의 질을 위한 공공정책이어야 한다”며 “공공이 개입하지 않고 민간에만 맡긴다면, 오히려 사회적 갈등과 불평등이 심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 경기신문 = 오다경 기자 ]

오다경 기자 omotaan@kg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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