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법원이 부당합병·회계부정 혐의를 받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무죄를 확정했다.
17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오석준 대법관)는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행위·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이 회장에게 전부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법원은 이 회장이 안정적 경영권 승계를 위해 삼성물산·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각종 부정거래와 회계부정을 저질렀다는 검찰 주장을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검찰이 제시한 증거 중 일부는 위법하게 수집한 증거이며, 수집된 물증의 경우에도 재판에서 증거로 쓸 수 있는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는 등의 고법 판단이 그대로 인정됐다.
2심 선고 후 5개월여 만에 나온 결론으로, 이 회장이 재판에 넘겨진 지 4년 10개월 만이다.
함께 기소된 최지성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미전실) 실장, 김종중 전 미전실 전략팀장, 장충기 전 미전실 차장 등 나머지 피고인에게도 13명(회계법인 포함) 모두 무죄가 확정됐다.
대법원은 "원심 판결에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은 채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해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자본시장법, 외부감사법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고 판시했다.
또 검찰이 제시한 주요 증거의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은 2심 판단에 대해서도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해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전자정보에 대한 압수수색의 적법성, 재전문증거의 증거능력, 위법수집증거 배제법칙의 예외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고 말했다.
앞서 1·2심 법원은 "삼성바이오로직스의 18테라바이트(TB) 용량에 달하는 백업 서버와 삼성바이오에피스 서버, 장충기 전 미래전략실 차장의 휴대전화 메시지 등 압수수색 과정에서 탐색·선별 등의 절차와 실질적 참여권 보장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취지로 판단한 바 있다..
증거능력은 '증거로 사용될 수 있는 법률상 자격'을 뜻한다. 증거능력이 인정돼야 법원이 유무죄 판단의 근거로 쓰는 증명력을 따질 수 있지만, 이번에는 애초에 인정되지 않았다. 압수수색으로 확보한 물증 일부는 위법하게 수집됐다는 평가를 받아 배제됐다.
이 회장 측 변호인은 이날 선고 뒤 "대법원 최종 판단을 통해 삼성물산 합병과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처리가 적법하다는 점이 분명이 확인됐다"며 "5년에 걸친 충실한 심리를 통해 현명하게 판단해주신 법원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전했다.
앞서 이 회장은 2015년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과정에서 최소 비용으로 경영권을 승계하고 지배력을 강화할 목적으로 사내 미전실이 추진한 부정거래와 시세조종, 회계부정 등에 관여한 혐의로 2020년 9월 기소됐다.
지난해 2월 1심은 이 회장 등에 대한 19개 혐의 전부에 무죄를 선고했다. 올해 2월 2심도 추가 공소사실을 포함해 23개 혐의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1·2심 법원은 부정거래 행위와 관련해 이사회 결의-합병계약-주주총회 승인-주총 이후 주가 관리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에서 보고서 조작, 합병 성사를 위한 부정한 계획의 수립, 부당한 영향력 행사가 있었다는 검찰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다.
당시 2심은 "수사의 어려움을 고려해도 공소사실에 대한 추측, 시나리오, 가정에 의해 형사 책임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쟁점이 됐던 회계부정 혐의와 관련해서도 "회사 측의 재무제표 처리가 경제적 실질에 부합하는 것이었고, 재량을 벗어난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며 주위적(주된)·예비적 공소사실을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삼성바이오가 자회사인 삼바에피스 합작사인 바이오젠의 콜옵션(주식매수청구권) 보유 관련 구체적 사실을 은폐하다가 2015년 합병 과정에서 콜옵션을 부채(1조8천억원)로 반영해야 하자 자본잠식을 회피하기 위해 회계처리 방식을 갑자기 바꿨다는 것이 검찰의 시각이었다.
1심은 2015년 삼성바이오에피스의 바이오시밀러 유럽 판매 승인 권고 등 사업 성과로 콜옵션이 실질적 권리가 됐고 삼성바이오는 그에 따라 에피스에 대한 지배력 상실 회계처리를 한 것이라며 삼성 측 주장을 전부 받아들였다.
그러나 지난해 8월 서울행정법원이 "삼성바이오는 자본잠식 등의 문제를 회피하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별다른 합리적 이유가 없는 상태에서 삼바에피스에 대한 지배력 상실 처리를 했다"고 판단해 분식회계 여부는 항소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검찰은 이를 반영해 예비적 공소사실을 추가했지만, 2심 역시 자본잠식을 우려해 지배력 상실 회계처리를 했다거나, 지배력을 상실했다고 볼 만한 특별한 상황 변화가 없는데도 그같이 회계처리를 했다는 주위적(주된)·예비적 공소사실을 모두 인정하지 않았다.
업무상 배임과 위증 혐의에 관해서도 합병의 필요성, 합병비율 등에 관한 배임이 인정되지 않고 공모나 재산상 손해도 인정되지 않는다고 봤다. 또 일부 피고인의 발언도 위증이 아니라고 평가했다.
검찰은 무리한 수사였다는 일각의 지적에도 그룹 지배권 승계 목적과 경위, 회계부정과 부정거래 행위에 대한 법리에 대한 대법원 판단을 구할 필요성이 있다며 상고심의위원회를 거쳐 상고했지만, 이날 대법원 판단도 같았다.
[ 경기신문 = 안규용 수습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