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킹·성폭행 피해자 父 “경찰 조서 때 변호사 안내 못받았다”… 사건 모두 무혐의

2025.12.23 17:43:59 15면

조울증 앓고 있는 딸, 홀로 남자 수사관에게 당시 피해 상황 진술
父 “딸, 수사 후 정동 장애 판정까지 받아… 잘못된 유도 심문 결과” 주장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당신이 한 발언은 법정에서 불리하게 사용될 수 있습니다. 당신은 변호인을 선임할 수 있으며, 질문을 받을 때 변호인에게 대신 발언하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아는 미란다 원칙이다. 현장에서 붙잡힌 현행범은 물론 경찰 출석을 앞둔 피의자나 피해자 모두에게 변호사 선임을 고지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피의자에겐 무죄추정 원칙에 따라 방어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며, 피해자에겐 일관되고 명확하게 진술할 수 있도록 돕고 수사관의 유도 심문이나 부적절한 질문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다.

 

인천지역 한 여고생의 아버지는 경찰이 이 같은 원칙을 지키지 않아 자신의 딸이 겪은 스토킹과 성폭행 사건 모두 무혐의 처분으로 끝났다고 주장한다. 특히 자신의 딸은 조울증까지 앓고 있어 남자 수사관과 마주한 상황을 빨리 벗어나고 싶은 생각에 제대로된 답변도 못했을 것이라고 한다.

 

23일 아버지가 국민신문고에 접수한 내용에 따르면 스토킹과 성폭행 범죄를 서부경찰서를 찾아 고소했고 국선변호사도 신청했지만 경찰 조서를 받을 때까지 배정되지 않았다. 조서를 작성할 때 변호사의 도움을 받을 것이라 생각했던 딸은 어쩔 수 없이 남자 수사관의 질문에 답을 했고, 이 과정에서 경찰의 유도심문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게 아버지의 주장이다.

 

앞서 아버지는 딸이 학교에서 사귄 남자친구들로부터 각각 스토킹과 성폭행을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되면서 곧바로 관할 경찰서인 서부서에 고소했다. 딸은 지난해 남자친구 A군으로부터 하루에도 수십건이 넘는 연락을 통해 심리적인 압박을 받아왔다. 견디다 못해 A군의 휴대전화 번호를 차단하자 A군은 전자금융 플랫폼인 토스를 통해 다시 연락을 해왔다.

 

돈을 보낼 때마다 문자메시지를 보낼 수 있다는 점을 노려 1원씩 송금하는 방법으로 연락하라고 문자메시지를 보낸 것. A군은 이 같은 방법으로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1월까지 52건의 문자메시지를 보냈고, 경찰에 신고하자 연락이 줄어들었다고 아버지는 주장했다.

 

딸은 A군과 헤어진 후 사귀게 된 B군으로부터는 원치않는 상황에서 성폭행을 당했다. B군은 지난해 말쯤 딸을 남녀 공용 화장실로 끌고가 입을 막은 채 강제로 성폭력을 했고, 이에 심리적 충격을 받은 딸은 일상생활이 힘들었다.

 

그러나 딸은 이후 B군과의 관계회복을 위해 그달 크리스마스 때 만나 성관계를 했고, 이 때문에 경찰은 앞서 당한 성폭력 사건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는 게 아버지의 거듭된 주장이다.

 

아버지는 “경찰이 딸에게 성폭행 당시의 상황을 자세하게 설명하도록 했다. 일반인도 하기 힘든 당시의 설명을 조울증을 앓고 있는 딸이 하기엔 더욱 힘들었을 것”이라며 “질문도 딸이 원해서 한 것처럼 내용을 받아 내 작성했다. 결국 모든 사건이 무혐의로 끝이 났고 딸은 당시 충격에 정동장애 판정도 받았다”고 분개했다.

 

이어 “국선변호사가 적기에 배정됐다면 경찰의 노골적이고 고의적인 유도심문에 제대로 대응했을 것”이라며 “여자 수사관 배정과 국선변호사 신청 모두 받아들여지지 않아 결과가 이렇게 나오니 정말 큰 힘이 적용된 것은 아닌지 의심을 지울 수 없다”고 거듭 주장했다.

 

경찰도 국선변호사를 선임하지 않고 조서를 작성한 것에 대해 모든 사실을 인정했다. 서부서는 국민신문고 답변을 통해 ‘국선변호사 누락 사유‘는 신청 과정에서 시스템상의 문제로 결제가 누락돼 검찰에 접수되지 않은 것이 확인된다고 설명했다.

 

경찰 관계자는 “워낙 사건사고가 많다 보니 당시에 시스템에서 누락이 생긴 것 같다”면서도 “담당 경찰은 최대한 피해자 입장에서 수사를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법조계는 피해자가 국선변호사를 신청한 상황에서 상부에 보고되지 않고 강제로 조서가 작성된 상황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특히 성폭행 혐의에 대해서는 강제로 성폭행을 당한 뒤 이후 성관계가 있었다고 해도 성폭행 범죄는 별도로 다뤄야한 한다는 설명이다.

 

법무법인 정앤김 소속 기미진 변호사는 “경찰 조서 때 변호사가 함께 동행하는 이유는 심리적 불안을 해소하고 불필요한 답변을 자제하기 위한 것”이라며 “성폭형 혐의 역시 이후에 여러번의 성관계가 있었다고 해도 당시의 성폭행은 별도로 취급해 수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 경기신문 / 인천 = 지우현 기자 ]

지우현 기자 whji78@kg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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