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진의 언제나 영화처럼] 밀실 살인사건의 범인은 밀실 안에 있다?

2026.01.05 10:45:47

나이브스 아웃: 웨이크 업 데드 맨-감독 라이언 존슨

 

영화 '나이브스 아웃' 시리즈는 넷플릭스 최대 히트작 가운데 하나이다. 에피소드가 여럿 있는 드라마와 달리 이 작품은 단 회 형식으로 한 편씩 공개돼 오고 있다. 러닝타임은 대략 2시간 10여 분씩들이다. 이번이 세 번째로 부제는 ‘웨이크 업 데드 맨’이다. 실제로 영화 속에서 죽은 자가 (예수처럼) 살아나 또 다른 살인을 저지르는 것으로 돼 있다. '나이브스 아웃' 시리즈는 미스터리 추리극을 골간으로 한다. 주인공이 사설탐정이다. 이름은 브누아 블랑(다니엘 크레이그)이다. 블랑 탐정의 캐릭터는 1회 때는, 아무리 댄디한 신사형으로 바꿨다 한들 명백히 전설의 작가 애거사 크리스티가 창조한 에르퀼 푸아로를 모델로 한 것이었다. 2편을 거쳐 이번 3편에서는 역사상 지금까지 손에 꼽을 수 있는 여러 사립 탐정 캐릭터를 다 혼용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대실 해밋의 샘 스페이드도 들어 있고, 레이먼드 챈들러의 필립 말로도 들어 있다. 이들은 대체로 더블버튼 재킷 정장을 입고 다니며 총을 갖고 다니지 않고, 폭력을 쓰지 않는다. 오로지 지략과 통찰, 혜안으로 사건을 헤쳐 나가는 인물들이다. 무엇보다 사람의 속마음을 꿰뚫어 보는 데 있어 모두가 ‘도사급’이다. 기본적으로 이런 하드보일드 혹은 필름 누아르 계열에서의 사립 탐정은 상대가 아무리 고상한 인격자라도, 또 아무리 뇌쇄적인 미모의 여성이라도 일단 모든 걸 의심하는 남자이다. 브누아 블랑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나이브스 아웃’ 곧, ‘칼을 뽑아 들다’라는 제목처럼 블랑은 기사도가 넘치는 척, 사실은 인간 다수의 어두운 욕망을 요리조리 잘 저울질하고 요리하면서 얄미울 만큼 똑똑하게 상대를 다뤄 나간다.

 

 

이번 '나이브스 아웃: 웨이크 업 데드 맨'은 뉴욕주 올버니 교구에서 사제 수업 중인 주드 듀플렌티시 신부(조쉬 오코너)가 늘 비아냥대던 부제에게 참지를 못하고 주먹을 날린 죄로 뉴욕주 북부 외곽의 침니록이란 마을의 본당 보좌 신부로 좌천되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직급은 보좌 신부로 올라갔지만 침니록의 이 성당은 골칫덩어리다. 랭스트롬 주교(제프리 라이트)에 따르면, 이곳은 가톨릭의 사각지대로, 올버니 교구가 사실상 버린 성당쯤으로 취급하는 곳이다. 그곳의 본당 신부인 제퍼슨 윅스(조시 브롤린)가 신부로서는 가당치 않은 악행과 기행을 일삼고 있기 때문이며 그의 막무가내식 극단주의는 일부 신도들만 추종하게 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어 ‘문제 성당’이 된 지 오래라는 것이다. (이것은 상당 부분 지금의 트럼프 캐릭터와 그의 호전적인 슬로건인 MAGA의 이데올로기, 그리고 그의 극우 추종자들을 희화해 설정한 것이다) 랭스트롬 주교는 주드 듀플렌티시 신부에게, 그런 곳인데 네가 정말 해 낼 수 있겠느냐, 감당할 수 있겠는가, 라고 걱정스럽게 말한다.

 

 

아니나 다를까, 제퍼슨 윅스의 광기는 참을 수 없는 지경인 상태다. 그가 주드 보좌 신부를 상대로 하는 고해성사는 대부분 이번 주는 자위를 몇 회를 했다느니, 그때 어떤 여자와 어떤 장면을 상상했다느니 하는 얘기일 뿐이다. 주드 듀플렌티시 신부는 사제 수업을 받기 전 권투 선수였고, 오로지 증오심으로 펀치를 두들겨 상대 선수를 사망케 한 전력을 가지고 있는 젊은이이다. 간악한 윅스는 그런 주드를 부추겨 스스로 침니록을 떠나게 할 셈인 것이다. 윅스에게는 ‘다 계획이 있다.’ 새로 들어 온 신도들을, 그들이 지닌 과거의 잘못을 공개적으로 비난해(대체로 고해성사실에서 들은 얘기이다) 스스로 성당을 박차고 나가게 한다. 오로지 자신에게 충성하거나, 이해관계 면에서 필요한 골수 신도들만을 데리고 예배를 본다. 윅스 추종자 중 톱은, 어린 시절부터 제퍼슨 윅스를 보좌해 온 마사라는 이름의 여인(글렌 클로즈)이다. 마사는 원래 제퍼슨 윅스의 아버지이자 침니록의 신부였던 프렌티스 윅스(제임스 포크너)의 어린 소녀 신도였다. 프렌티스 윅스는 재산 8천만 달러를 숨긴 채 갑자기 사망했으며 이번 드라마의 살인사건은 모두 故프렌티스 신부의 막대한 재산에서 비롯된다. 성당의 모든 회계와 재산 관리는 그간 마사가 일임해 왔다.

 

 

마사 외의 주요 성당 인물로는 알코올 중독자 의사인 냇(제러미 레너)이 있고 여성 변호사 베라(케리 워싱턴)가 있다. 베라의 배다른 남동생 싸이(대릴 매코맥)는 뉴욕주 정계 진출에 실패한 뒤, 스마트 폰으로 연신 영상을 촬영하고 다니는 극렬 유튜버가 됐다. 이번 사건의 증거 자료 상당수는 싸이의 동영상에서 나온다. 여기에 한물간 펄프 픽션(대중소설) 작가 리 로스(앤드류 스콧)가 나오고 세계적 첼리스트였지만 지금은 심리적인 이유로 걷지를 못하는 시몬이라는 여성(케일리 스페이니)이 나온다. 제퍼슨 윅스 신부는 이 여성, 시몬에게서 성당 헌금 대부분을 갈취한다. 그리고 마지막 주요 인물이 정원사인 샘슨(토머스 헤이든 처치)이다. 샘슨은 마사의 정인(情人)이다.

 

자, 이 ‘천하의 나쁜 놈’ 제퍼슨 윅스 신부가 여느 때처럼 그날도 호전적이고도 극단의 근본주의적인 신앙을 내세우며 여성 혐오주의 발언의 강론을 한 후 제단 옆 창고에서 잠시 쉬고 있다가 등에 악마 문양의 손잡이가 있는 칼이 꽂힌 채 살해당한다. 성당 안에는 주드 보좌 신부와 마사와 샘슨, 냇, 베라와 싸이, 리 로스 그리고 시몬만이 있던 상태였으며 그들은 신부 윅스가 밀실인 제단 옆 창고에서 갑자기 살해된 후 그가 ‘시체가 된 것’만을 목격한 증인들이 됐다. 창고 안에는 누가 있었을까. 창고에서 가장 가깝게 있던 사람은 누구일까. 당장 주드 듀플렌티시 보좌 신부는 유력한 용의자로 수사선상에 오르게 된다.

 

 

사립 탐정 브누아 블랑이 푸는 이번 사건 역시 밀실 수수께끼이다. 미스터리극에서 벌어지는 밀실 사건의 범인은 언제나 밀실 안에 있던 사람이다. 그런데 그 밀실 안에 있던 유일한 사람이 바로 죽은 사람이라면? '나이브스 아웃: 웨이크 업 데드 맨'은 퍼즐의 퍼즐을 풀어내야 한다. 밀실에 누군가 더 있었는가. 밀실에 접근할 수 있었던 사람은 누구인가. 윅스가 죽을 때 밀실 안에서는 순간적으로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 브누아 블랑이 의심하는 것은 살인의 교묘한 계획보다는 그걸 왜 저질렀느냐는 행동 동기이다. 모든 건 동기이다. 그 점을 찾아 가면 이 드라마의 범인이 보인다. 제퍼슨 윅스는 살해당했지만, 며칠 후 무덤에서 부활한다. 그게 CCTV에 찍히자 침니록은 일대 혼란에 빠진다. 침니록의 경찰서장 제럴딘(밀라 쿠니스)은 주드 신부를 막 체포할 참이다. 자 당신의 선택은?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밀실 살인사건의 범인은 밀실 안에 있다. 적어도 밀실이 문제다.

 

'나이브스 아웃' 시리즈는 정치사회 풍자가 충만한 탐정극이다. 지난 2편 '나이브스 아웃: 글래스 어니언'의 조롱 대상은 일론 머스크였다. 이번 비아냥의 대상은 명백히 트럼프이다. 미국 할리우드는 적어도 트럼프를 미친 극단주의자로 보고 있다. 트럼프와 미국 영화계의 사이가 좋지 않은 이유이다. 제임스 본드를 사망케 함으로써 ‘007시리즈’에서 하차한 다니엘 크레이그가 이제 브누아 블랑으로 재탄생 중이다. 크레이그는 늘, 매력적이다.

오동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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