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는 없고 현수막만 게시, 도심 흉물에 행인 불편 가중

2026.01.18 21:37:07 6면

도로변 뒤덮은 현수막, 보행·통행 불편… 시민 눈살

 

“이거 유령 집회 아닌가요? 당장 철거해야죠.”

 

18일 오전 11시쯤 용인시 기흥구 영덕동 A기업 건물 앞에서 만난 김모(46) 씨는 “집회가 열리는 것을 거의 보지 못했는데 현수막은 한 달 넘게 내걸려 있다”며 “바람에 펄럭거려 통행에 지장을 줄 뿐만 아니라 보기도 좋지 않은데 저렇게 방치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경기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A기업 소속 근로자 B씨 등 11명은 지난해 11월 집단 사직서를 낸 뒤 다음 달 중순쯤 경찰에 집회 신고를 했다.

 

신고한 집회 기간은 이달 16일까지다. B씨 등은 집회 신고 후 바로 A기업 건물 주변에 이 기업 대표 등 경영진을 비난하는 내용의 현수막을 내걸었다.

 

B씨 등은 집회 기간이 만료되자 집회를 이어가겠다며 최근 경찰에 집회 기간을 연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B씨 등은 집회 신고 기간 동안 거의 집회를 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B씨 등이 A기업 건물에 설치한 현수막은 모두 4개로, 건물 주변 가로수와 전봇대 등에 설치돼 있다. 이는 도시 미관을 해치는 것은 물론 행인들의 통행에도 큰 불편을 주고 있다.

 

특히 운전자 시야를 가려 사고 위험마저 우려되는 상황이다.

 

주민들은 “집회는 없고 흉물스럽게 장기간 방치되는 현수막으로 인해 도심 미관 훼손과 함께 불편이 일상화됐다”며 “현수막 철거를 요구하는 민원을 제기해도 관계 당국은 수수방관만 하고 있다”고 혀를 내둘렀다.

 

최근 현수막 철거를 요구하는 민원이 잇따르고 있지만 관계 당국인 경찰과 지자체는 집회를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현수막을 강제 철거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현행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제6조(옥외집회 또는 시위의 신고)와 제12조(질서 유지)에 따르면 집회·시위의 보호 범위는 실제로 이뤄지는 시간과 장소로 한정된다.

 

이에 따라 집회가 열리지 않는 날에 게시된 현수막은 집회 또는 시위와 직접적인 관련성이 인정되기 어렵고, 집회물로서의 법적 보호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이 법조계의 해석이다.

 

실제 신고만 하고 집회는 하지 않는 이른바 ‘유령 집회’의 경우, 주로 대기업 사업장 인근에서 타 단체의 집회를 선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장소를 선점하려는 목적이나 경영진을 비난하는 현수막을 내걸기 위해 신고되는 경우가 많다.

 

A기업에 내걸린 현수막의 경우 집회가 열리지 않는 날에는 집회·시위와의 직접적인 관련성이 인정되기 어려워 집회물로서의 법적 보호 대상에서 제외돼야 한다.

 

이에 따라 관계 당국인 용인시는 옥외광고물법상 불법 광고물로 분류해 철거 명령이나 행정대집행을 해야한다.

 

사정이 이런데도 지자체와 경찰은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하고 있다.

 

용인시는 “집회 신고가 된 현수막은 철거할 수 없다”며 손을 놓고 있다. 용인동부경찰서도 “집회 신고는 받지만 현수막 관리는 지자체가 할 일”이라고 말했다.

 

이날 A기업은 현수막을 내건 B씨 등을 명예훼손 및 업무방해 혐의로 경찰에 고소장을 제출하면서 '현수막 논란'은 법적 분쟁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김모 변호사는 “집회 신고가 있다고 해서 현수막을 상시 게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현장 확인 결과 집회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불법 광고물로 보고 즉각 철거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 경기신문 = 김태호 기자 ]

김태호 기자 th1243@kg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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