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의 온고지신] 헨리크 입센

2026.04.02 06:00:00 15면

 

최근 가까운 후배(공연제작사 '스튜디오 반' 대표:이강선)의 '민중의 적:거짓의 시대'가'입센 스코프 그랜트 2026'에 선정되었다. 노르웨이 출신 극작가 헨리크 입센(1828~1906)의 정신을 세계적으로 확장하는 창작 프로젝트에 대한 지원금을 받게 된 것이다. 이 분야의 전문가들은 이를 '공연예술의 노벨상'으로 높이 평가하고, 세계 공연예술의 담론을 주도하는 플랫폼으로 인정한다. 금년에는 65개국의 작가들이 총 207편의 작품을 출품하였으며, 최종적으로 5편이 선정되었다. 경쟁률이 41:1이었다.

 

헨리크 입센! 우리는 그를 '인형의 집'으로 기억한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버나드 쇼(1856~1950)는 1925년, 입센을 '인류역사상 최고의 극작가'라고 평가했다. 심리학의 아버지 지그문트 프로이트(1856~1939)도 입센을 고대 그리스의 비극작가 소포클레스(BC 497~ BC 406)와 셰익스피어(1564~1616)와 더불어 3대 극작가로 꼽은 적이 있다. '입센 스코프 그랜트'는 2007년에 출범, 입센의 업적과 명성에 걸맞은 위상을 달성했다. 

 

 

노르웨이 정부의 사업이라는 점이 특별하다. 입센을 국보1호로 친다는 뜻이다. 이 사업의 대표적 특징은 다음과 같다. 1) 노르웨이 정부가 직접 지원하고, 수백 건의 지원작들 가운데 극소수의 작품만 뽑기 때문에 권위가 아주 높다. 2) 예술적 완성도를 넘어, 사회·정치적 담론의 확장성에 중점을 둔다. 3) 입센의 예술가적 문제의식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수준을 본다. 4) 선정작은 제작비를 지원하며, 노르웨이의 시엔(Skien. 입센의 고향)에서 열리는 세계 연극제에 작품을 올리며, 국제 무대에서 장기간 주목을 받게 된다.

 

입센은 금수저 물고 태어났으나, 여덟 살에 집안이 파산했다. 모진 가난 속에서도 열다섯살까지는 정규교육을 받았다. 마침내 삶의 전환기를 맞았다. 학교를 그만두고 약방의 점원으로 취업한 것이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철학과 문학을 독학했다. 대학입시에 응했으나 떨어졌다. 스물둘에 정치극 '카틸리나'로 데뷔했으나 호평을 받지 못했다. 스물세살에 전업 작가가 되었다. 그때부터 승승장구의 삶을 살았다. 제도교육을 받지 않았기에 글이 깊었을 것이다. 

 

입센은 연극을 인간정신의 실험실로 바꾸어 개인의 자유와 사회적 위선의 충돌을 통해 근대문명이 직면한 가장 본질적인 문제를 드러낸 극작가였다. 그는 문학 뿐만 아니라, 철학, 심리학, 정치담론에도 깊은 영향을 끼쳤다. 그의 작품들은 셰익스피어 이후 가장 많이 공연되었다. 죽기 몇 해 전부터 3년 연속(1902~1904) 노벨문학상 후보로 지명되었으나 수상자가 되지 못했다. 그는 무정부주의자였다. "국가는 개인에 대한 저주다. 국가는 폐지되어야 한다." 그가 아나키스트로서 남긴 어록이다.

 

'입센 스코프 그랜트 2026'에 '민중의 적: 거짓의 시대'를 출품, 한국 감독으로서 유일하게 선정된 이강선은 육군 중사 출신으로 나이 들어 한예종에 입학한 연극인이다. 일본 유학 시절 경험한 재일교포 공동체의 특별한 아픔과 슬픔, 분노와 연민을 담아 이 작품을 썼다. 압도적 기세의 K-Culture에 그가 긴 시간 품고 있던 문제의식이 또 하나의 분야로 추가되었다. 이재명 대통령이 X에 올리면 좋겠다. 참으로 근사한 쾌거다. 이 감독! 축하한다.

오세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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