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은 멈추지 않는다… 삶을 내놓고 지킨 세월호의 시간”

2026.04.15 15:22:38 5면

“당연한 일을 한다는 말… 그 12년의 무게”
“아이들이 돌아올 수 있도록… 그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
“미안함과 책임 사이… 생존자 가족의 12년”

세월호 참사후 지난 12년동안 떠나보낸 이들만이 아니라 살아 돌아온 이들과 그 가족들 역시 각자의 자리에서 기억을 견디며 살아왔다. 노란 나비는 작고 가볍지만, 그 안에 담긴 시간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진실이 밝혀지기를 기다리며 그리고 잊히지 않기를 바라며. 안산의 한 작은 공간에서 이어지는 손길과 이야기들은 지금도 묻는다. 우리는 과연 그날을 얼마나 기억하고 있는가. 

 

 

세월호 참사 12주기를 이틀 앞둔 지난 14일 안산시 단원구에 위치한 4·16 꿈숲학교 1층에는 조금 특별한 상점이 있다.

 

피해자 가족들이 직접 만든 수공예품을 온라인으로 판매하고, 참사로 세상을 떠난 이들을 기억하는 ‘4·16 기억상점’이다.

 

2023년에 오프라인으로 마련된 이곳을 지키는 이는 생존 학생 장애진 양의 어머니 김순덕(57) 씨다. 그는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재정사업단에서 일을 하고 있다. 

 

 

초기에는 나비 브로치를 수천 개씩 만들어 무료로 나눔했지만, 활동을 장기적으로 이어가기 위한 재정이 필요해짐에 따라 판매를 시작했다. 온라인으로 주문을 받아 판매하고, 인천 인권영화제, 세월호 관련 행사 등에도 보따리를 싸 들고 나간다.

 

지난 11일 서울시청 인근에서 열린 4·16 기억·약속 시민대회에서도 물품을 판매했다. 그때 한 중년 여성이 꼭 안아줬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고 김 씨는 회고했다.

 

수익금은 모두 4·16 세월호 참사 가족협의회에 전달돼 진상규명 활동에 쓰인다. 김 씨는 이곳에서 회계부터 홍보, 포장, 배송까지 도맡아 하고 있다.

 

김 씨는 “이곳에서 파는 물건은 단순한 기념품이 아니라 우리가 지금도 진실을 밝히기 위해 활동하고 있다는 메시지이자 자식을 보낸 부모들의 그리움”이라고 말했다.

 

 

김 씨의 회색 자켓 한 켠에 직접 만든 노란 나비 배지가 달려 있었다.

 

“손이 정말 아파요. 본드로 붙이는 게 아니라 실을 하나하나 당겨야 하거든요. 이걸 하려면 손에 굳은살이 배이고, 물집이 잡히고, 허물이 벗겨질 정도예요.”

 

인터뷰 내내 김 씨가 반복한 말은 “당연한 일을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담담한 말 뒤에는 생활고와 사회적 오해, 흔들린 가족 관계를 견디며 버텨온 시간이 담겨 있었다.

 

참사 발생 약 반년 뒤 김 씨는 물론이고 남편 장동원(57) 씨도 직장을 그만두고 세월호 관련 활동을 이어왔다. 

 

장 씨는 “(세월호 참사에 대한) 주변 시선과 분위기 속에서 정상적인 일상이 어려웠다”며 “가족과 상의해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참사 피해자 분들 옆에 있어주자고 결정했다”고 말했다.

 

장 씨는 ‘사단법인 4·16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을 위한 피해자가족협의회(약칭 세월호 피해자가족협의회)’의 기틀을 닦았다. 그 곳에는 유가족 뿐 아니라 생존자 가족들이 함께 하고 있다.

 

현재 장 씨는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총괄팀장이다. 유가족과 생존자 가족 간의 이해관계를 조절하고 보수 단체의 집회 대응부터 정부 등과의 협상까지 총괄하는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해오고 있다.

 

 

하지만 활동을 이어가는 과정은 녹록지 않았다.

 

두 사람은 “사람들이 ‘먹고 살만하니까 그런 활동을 하는 것 아니냐’고 말할 때가 가장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초기에는 퇴직금과 저축으로 버텼지만, 돈이 바닥나자 집을 팔고 전세로 옮겼다. 두 딸에게 용돈을 줄수도 없었다. 공장에 나가고, 빵집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집안 사정을 함께 버텼다. 김 씨는 트라우마로 힘들었을 딸에게 충분히 신경 쓰지 못했다는 부채감도 남았다고 했다.

 

활동 6년째에 접어들면서 생활은 더욱 어려워졌다. 다시 직장으로 돌아갈까 고민하기도 했었지만, 유가족들은 “곁에 남아달라”고 요청했다. 김씨 부부는 소정의 활동비를 받으며 이 일을 하고 있다.

 

 

남편 장 씨는 "생존 학생 가족으로서 유가족 곁을 지키는 일은 늘 조심스러웠다"고 말했다. 미안함 때문이었다. 살아 돌아온 아이의 성장과 일상을 말하는 일 조차 조심스러웠고, 오랫동안 그 이야기를 꺼내지 못했다고 했다.

 

두 사람이 이 자리를 지키는 이유는 분명했다.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왜 수백여명이 구조되지 못하고 어린 나이에 안타깝게 숨져야 했는지 그 이유를 밝혀지기 전까지는 이 일을 멈출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세월호 이후에도 대형 참사들이 발생했다. 남편 장 씨는 2022년 이태원 참사 때 똑같은 아픔이 되풀이 되는 것을 보고 화가 치밀었다고 말했다. 

 

"놀러 갔다 죽었는데 왜 국가가 책임을 져야하냐"는 일부의 비난에 가슴이 아프다는 장 씨. 그는 ”놀러 갈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고, 안전 대책을 세우는 것은 전적으로 국가의 책임“이라고 말했다. 장 씨는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생명안전기본법’이 제정 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두 사람에게 4월은 ‘몸이 먼저 기억하는’ 고통의 계절이다. 

김 씨는 “세상을 떠난 아이들과 마을 전체가 사라진 듯한 안산의 아픔은 여전하다”며 “365일 내내 기억해달라는 게 아니다. 다만 4월 16일, 일 년 중 단 하루만이라도 기억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 경기신문 = 남윤희 기자 ]

남윤희 yuni@kg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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