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시산책]잠 깨우는 사람

2019.11.26 18:54:00 16면

잠 깨우는 사람

/이현승

아이들과 함께 잠들었는데
새벽에 방문을 여닫는 인기척에 깬다.
자면서 한사코 이불을 걷어차는 유구한 역사의 식구들,

죽은 사람의 눈을 감기듯
이불을 덮어주고 간 아내의 손끝이 한없이 부드러워
잠 깨어 다시 일어난다.

일어나 앉아 자는 아이를 보고 있자니
내 눈을 감기고 옷 입혀줄 큰아이가
옹알옹알 잠꼬대를 한다.
뭉텅뭉텅 잘린 말끝에 알았지 아빠? 한다.
잠꼬대를 하는 것도 나의 내력이라
내림병이라도 물려준 양 얼굴이 화끈거린다.

저 눈꺼풀 안의 눈빛이 사탕을 녹여 부은 듯 혼곤하리라.

-이현승 ‘생활이라는 생각’

 

 

 

 

참 담소한 시다. 화려한 수식이나 비의를 통한 이해하기 어려운 문장들이 없다. 내용 또한 우리 생활 속의 모습을 그대로 묘사하고 있으며 읽고 나면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이렇듯 시는 특별한 것이 아닌 우리 일상 속에 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이 이러한 시와 다를 바 없으니 이 세상 살고 있는 우리는 모두 일평생 시를 살다가는 것이다. 한 가정의 가장이라면 한번쯤 경험했을 것이다. 한 밤 중 일어나 보는 내 자식들, 옹알옹알 잠꼬대를 하는 아이와 이불을 덮어주는 아내의 부드러운 손길과, 일어나 앉아 자는 아이, 이 따뜻하고도 아름다운 풍경은 대대손손 내려온 우리의 유구한 역사다. 부정할 수 없는 나의 유전자이다. 권력을 위해 명예를 위해 부를 위해 숨 가쁘게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 정작 삶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이토록 소박한 풍경인 이 시 같은 모습이다. /서정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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