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들어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골드바 판매액이 1700억 원을 넘어서며 단숨에 지난해 연간 실적을 돌파했다. 미국의 관세정책으로 글로벌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금값이 연일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운 영향이다. 최근 들어서는 급등한 금값에 차익 실현에 나서는 투자자들도 나타나고 있다.
21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은행의 올해 1월부터 4월 17일까지의 골드바 누적 판매액은 1747억 원으로 지난해 연간 판매액을 넘어섰다.
2023년 655억 원이었던 은행권의 골드바 판매 규모는 지난해 1654억 원으로 두 배 이상 늘었고, 올해 들어 1분기 만에 사상 최대 기록을 다시 썼다. 폭발적인 수요에 지난 2월에는 일부 은행에서 판매가 일시 중단되는 품귀 현상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처럼 골드바 수요가 급증한 배경에는 가파른 금값 상승세가 자리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관세 정책이 글로벌 무역 전쟁으로 번질 조짐을 보이면서 불확실성이 커지자 안전자산을 선호하는 심리가 강해졌고, 이에 금값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지난 17일(현지시각) 뉴욕상품거래소에서 금 선물은 장중 한때 1온스당 3357.4달러까지 치솟으며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금을 대체할 수 있는 미국 국채나 비트코인 등의 변동성 확대도 수요를 자극하는 원인 중 하나다. 최근 미 국채 10년물 금리는 이틀 만에 0.6%포인트(p) 이상 등락하며 혼란를 보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직후 10만 6136달러까지 치솟았던 비트코인은 이달 들어 7만 달러 초반까지 하락했다.
이러한 상승세에 힘입어 금 통장(골드뱅킹) 잔액도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상품을 취급하는 은행 3곳(KB국민·신한·우리)의 지난 17일 기준 골드뱅킹 잔액은 1조 649억 원이다. 1년 전(6101억 원)보다 75%(4548억 원)가량 급증한 것으로 이달 들어 약 보름 만에 384억 원 불었다.
금값이 연일 최고가를 경신하면서 개인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차익을 실현하려는 움직임도 포착되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개인투자자들은 지난 7일부터 18일까지 KRX금시장에서 금 현물을 404억 원어치 순매도했다. 금 관련 상장지수펀드(ETF) 역시 개인투자자들의 매도가 이어지고 있다.
시장에서는 이러한 금값 상승세가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는 의견이 우세하다. 글로벌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는 올해 말까지 금 현물 가격이 온스당 3700달러 상승하고, 내년 상반기(1∼6월)까지 4000달러에 도달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황병진 NH투자증권 연구원은 "글로벌 경기 불확실성이 투자자들의 '안전 피난처' 수요를 확대시키고 있다"며 "미 연준의 통화정책상 완화 기조가 유지되는 한 강세가 이어지면서 연내 금 가격이 온스당 3600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고 내다봤다.
[ 경기신문 = 고현솔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