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천 섬 바닷가를 걷다 보면 마주치는 식물이 있다. 5월에는 예쁜 분홍꽃으로, 8월과 9월에는 붉은 열매로 우리 눈길을 끄는 해당화다. 그런데 이 평범해 보이는 해당화에는 열매 만큼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
해당화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중국, 일본, 러시아 동쪽 지역이 본고장이다. 짠 바닷바람과 모래땅에서도 잘 자라는 게 특징인데, 이 때문에 해안가 어디서든 볼 수 있다. 뿌리가 사방으로 뻗어 나가면서 바닷가 모래가 쓸려 내려가는 걸 막아주는 역할도 한다.
그런데 이런 강한 생명력이 다른 나라에선 문제가 되기도 한다.
북미와 유럽에서는 염분과 모래에 대한 내성, 왕성한 뿌리줄기 확산을 통해 덤불을 형성하는 능력 때문에 토착 식물을 압도해 일반적으로 침입종으로 간주하기도 한다.
옛날부터 우리 조상들은 해당화를 약으로 썼다. 한의학에서는 뿌리를 달여서 아픈 곳에 쓰거나 부기를 빼는 데 사용했고, 혈액 순환에도 좋다고 했다. 당뇨에도 효과가 있다고 해서 민간에서 많이 이용했다고 한다.
섬에서 자란 어른들은 어릴 적 먹을 게 없을 때 해당화 열매로 배를 채웠다는 추억담도 들려준다.
울도에서 들은 재밌는 얘기가 있다.
새우가 많이 잡히던 시절, 지금처럼 나일론 그물이 없어서 면으로 만든 면사 그물을 썼는데 고기가 많이 걸리면 그물이 자주 찢어졌다고 한다. 그래서 어르신들이 해당화 뿌리 우린 물에 그물을 담가두면 훨씬 튼튼해진다는 걸 알아냈다고 하더라. 해당화 뿌리에 면사 그물을 강하게 만드는 성분이 들어있었던 모양이다.
현대 연구 결과를 보면 옛 어른들의 경험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다.
해당화 뿌리엔 면역력을 키우고 염증을 줄이는 성분이 많고, 항산화 효과도 있어서 혈압 낮추는 데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관절염이나 허리 아픈 데도 좋다고 한다.
해당화 열매는 비타민 C가 레몬보다 17배나 많고, 브로콜리보다도 5배, 무보다는 40배나 많다고 하니 정말 놀랍다. 그냥 자연이 만든 비타민 알약인 셈이다.
꽃도 쓸모가 많다.
향이 강해서 향수 만드는 데 쓰고, 중국에선 꽃차로 마시고, 일본에선 천연 색깔 내는 재료로 쓴다고 한다. 피부에도 좋아서 요즘 화장품 회사들이 관심을 많이 보인다.


인천에서도 해당화로 여러 가지 제품을 만들고 있다. 옹진군에서는 해당화 음료를 개발해서 특허까지 받았고, 백령도 베델식품에서는 해당화 발효차를 팔고 있다. 중구 운서동에 있는 ㈜어머니손맛두레에서는 해당화 원액을 만들어 건강식품으로 내놓고 있다.

연구진들은 더 재밌는 걸 찾아내고 있다.
해당화 꽃 우린 것에 요구르트에 넣어서 몸에 좋은 식품을 만드는 연구도 하고, 고온에서 조리된 소고기 패티에서 나오는 발암물질을 해당화 차 추출물이 막아준다는 것도 밝혀냈다.
생각해 보니 해당화가 정말 여러모로 쓸모가 많다. 바닷가를 지켜주고, 사람 몸에도 좋고, 지역경제에도 도움이 되고 있다.
인천 섬들 바닷가에 해당화를 더 많이 심으면 어떨까. 해안 보호도 되고 지역에 새로운 소득원도 생기니 좋을 것 같다.
바닷바람에 흔들리는 해당화를 보며, 우리 곁에 있는 자연의 선물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글 : 김용구 박사(인천시 사회적경제지원센터장, 인천시 섬발전 자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