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아發 충격파…韓 대기업 대미 투자 ‘빨간불’

2025.09.14 15:17:59 4면

배터리·반도체·조선·자동차 등 200조 투자
8조 8000억 투자한 배터리 공장 '직격탄'
ESTA·B1/B2 남용, 구조적 리스크 드러나
저문가 "단순히 자본 투입하는 시대 끝"

 

미국 조지아주에서 발생한 대규모 불법체류자 단속 사태가 한국 기업들의 미국 투자 전략에 큰 타격을 주고 있다. 구금됐던 한국인 근로자 300여 명이 귀국했지만, 충격의 여진은 장기화할 전망이다. 국내 주요 대기업들은 현지 공장 건설·운영 계획을 전면 재점검하며 리스크 관리에 부심하는 분위기다.

 

이번 사태의 진원은 LG에너지솔루션과 현대차가 8조 8000억 원을 투입한 조지아주 HL-GA 합작 배터리 공장이다. 불법 고용 논란으로 숙련 인력이 빠져나가며 공정이 최소 2~3개월 지연될 것으로 관측된다. 신뢰도 훼손과 추가 비용 발생이 불가피해지면서 글로벌 투자자들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

 

삼성SDI는 인디애나주에서 스텔란티스·GM과 합작 공장을 건설 중이며, SK온도 조지아·켄터키·테네시에서 공장을 확장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텍사스에 51조 6000억 원 규모의 파운드리 공장을 건설 중이고, SK하이닉스는 인디애나에 5조 4000억 원을 투자해 반도체 후공정 공장을 준비하고 있다. 한국 기업들의 미국 내 누적 투자액은 200조 원을 넘어섰다.


구금됐던 한국인 근로자 상당수는 전자여행허가제(ESTA)나 상용관광비자(B1/B2)를 소지하고 있었다. ESTA는 최대 90일, B1/B2는 최대 6개월 체류가 가능하다. 현지 숙련공 부족과 취업 비자 발급 한계 때문에 기업들이 상대적으로 용이한 비자를 활용해왔지만, 이번 사건으로 구조적 리스크가 수면 위로 드러났다.

 

외교부와 재외공관은 수차례 비자·취업 규정 준수를 강조해왔다. 실제로 주 샌프란시스코 총영사관은 지난 5월 I-9 양식 작성·보관 의무를 안내했고, 주 뉴욕·보스턴 총영사관도 불법 고용 리스크를 경고했다. 그러나 기업 현장에서 지침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아 사태를 막지 못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업계 일각에서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멕시코·캐나다 등으로 투자 거점을 다변화하거나, 현지 고용 비중을 대폭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일부 중소 협력사들도 미국 진출 전략을 재검토하며 필요 시 현지 법인 설립을 고려하는 등 신중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크리스티 놈 미 국토안보부 장관이 “불법체류 근로자 상당수가 추방될 것”이라고 언급하면서 기업들의 불안은 더욱 커졌다. 한국 정부가 자진출국 방안을 모색하는 입장과 엇갈리며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정부는 한미 워킹그룹을 통해 취업 비자 쿼터 확대와 절차 간소화를 협의 중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대미 투자와 관련된 비자 정원 확보나 새로운 유형 신설 협상을 하고 있다”며 “미국도 현실적 필요가 있으면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통상 협상은 난항을 겪고 있다. 한국은 직접 투자 비중을 줄이고 보증을 확대하길 원하지만, 미국은 직접 투자 확대를 강하게 요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투자 이익 배분 문제에서도 미국은 일본 사례를 근거로 ‘투자금 회수 전 수익 절반, 회수 이후 90% 미국 귀속’ 모델을 제시했으나 한국은 “비합리적”이라며 맞서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한국 기업들의 글로벌 경영 리스크 관리 능력을 시험하는 분수령으로 본다. 단순히 자본을 투입하는 시대는 끝났으며, 합법 고용 체계 구축과 현지 법규 준수가 필수라는 지적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대규모 투자가 몰리는 미국 시장에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기업 모두 제도 개선과 준법 경영을 병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 경기신문 = 오다경 기자 ]

오다경 기자 moon@kg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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