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미술사는 지금, 전기와 후기로 갈라진다

2026.02.06 14:14:16

구조에서 조건으로, 책임의 시대로

 

미술사는 더 이상 하나의 연속된 서사로 설명되기 어렵다.

 

지금 우리는 분명한 전환점에 서 있다.

 

의미와 해석을 중심으로 전개되어 온 미술사 전기(前期)와, 발생과 귀속을 중심으로 작동하는 미술사 후기(後期) 사이의 경계다.

 

미술사 전기는 재현, 형식, 개념이라는 질문의 축으로 요약된다.

 

무엇을 그릴 것인가, 어떻게 보이게 할 것인가, 왜 예술인가라는 물음이 미술의 방향을 이끌어왔다.

 

이 시기 예술의 중심은 의미 생산이었고, 작가는 해석 가능한 메시지의 주체였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이 전기의 말미에서 의미의 해체와 상대화를 수행했지만, 질문의 구조 자체를 전환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오늘날의 예술은 더 이상 ‘무엇을 말했는가’라는 질문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구조가 작품이 되고, 조건이 이동하며, 그 결과 예측 불가능한 사건이 발생하는 작업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 지점에서 미술의 질문은 달라진다.

 

무엇을 의미하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열어버렸는가, 그리고 그 이후의 결과는 누구에게 귀속되는가라는 질문이다.

 

이것이 미술사 후기가 작동하기 시작한 지점이다.

 

이러한 변화는 이론적 가설이 아니라, 이미 현장에서 실천을 통해 확인되고 있다.

 

필자는 이 과정을 구조, 조건, 책임이라는 세 단계의 작업을 통해 통과해왔다.

 

‘지퍼니즘(Zipperism)’은 구조 미학의 실천이다.

 

열고 닫히는 지퍼 구조를 통해 작품은 특정한 의미를 전달하기보다, 결합과 분리, 참여와 비참여가 반복되는 구조 자체를 드러낸다.

 

관객은 더 이상 해석자가 아니라, 구조를 통과하는 존재가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무엇을 보았는가가 아니라, 왜 이 구조를 열었는가라는 선택의 문제다.

 

‘에머젠티즘(Emergentism)’은 조건 미학의 실천이다.

 

구조를 고정하지 않고, 환경과 상황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도록 조건을 이동시킨다.

 

작품은 완성된 대상이 아니라, 사건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상태로 존재한다. 발생은 통제되지 않으며 반복되지 않는다.

 

작가는 결과를 관리하지 않고, 조건을 열어두는 선택만을 감당한다.

 

‘노 다지(No daji)’ 시리즈는 책임 미학의 실천이다. 관객은 선택할 수 있지만, 무죄한 선택은 존재하지 않는다.

 

작품을 유지할 수도 있고, 분리할 수도 있으며, 현실의 이익으로 전환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선택도 그 결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이 작업은 감정이나 해석의 문제가 아니라, 실제 책임의 귀속이라는 현실적 문제로 작동한다.

 

이 세 작업은 서로 분리된 개별 작업이 아니라 하나의 연쇄다.

 

구조가 열리고, 조건이 이동하며,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이 회수되지 않는 과정이다.

 

따라서 미술사 전기와 후기의 구분은 과잉된 주장이나 개인적 선언이 아니다.

 

이미 다른 질문이 작동하고 있다는 현실을 최소한의 언어로 명명한 것이다.

 

전환기는 언제나 지나간 뒤에 설명되지만, 그 징후는 내부에서 먼저 나타난다.

 

오늘날의 미술은 의미의 경쟁을 넘어, 선택과 발생, 그리고 귀속의 구조로 이동하고 있다.

 

이것이 지금 우리가 마주한 미술사 후기의 현실이다.

 

[ 경기신문 = 최순철 기자 ]

이상근 Zipperism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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