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4시에 온다면 난 3시부터 행복할거야'...지친 일상 속 감정을 되돌아보는 전시

2025.04.15 13:42:54 10면

동시대 회화 작가 채지민(b.1983), 함미나(b.1987) 2인전, 회화 및 설치 38점
15일부터 2026년 2월 22일까지 수원시립미술관 행궁 본관 5전시실에서 열려

 

"네가 4시에 온다면 난 3시부터 행복할 거야"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 나오는 이 대사는 여우를 기다린 어린왕자가 여우를 만났을 때 "너를 만나기 위해 기다린 설레는 그 시간이 '행복'이었다"고 표현한다.

 

수원시립미술관 개관 10주년 전시 '네가 4시에 온다면 난 3시부터 행복할 거야'는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 속 이 문장에 착안해 일상 속 '행복'을 찾고 상상력을 회복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1부 '기억의 풍경, 현실과 비현실 사이' 전시는 채지민 작가의 섹션으로 구성됐다. 채지민은 비현실적인 풍경 속에서 익숙한 오브제를 불쑥 끌어와,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교란하는 방식으로 작업해왔다.

 

디지털 3D 툴로 구성한 스케치 위에 정교하게 얹은 붓질은, 회화가 설계된 풍경이자 장면이라는 점을 드러낸다. 각 작품에 등장하는 이미지들은 삶의 순간들을 담은 기억의 파편들로, 조형성에 따라 계획적으로 배치된다. 이러한 방식은 그의 작품이 단순한 시각적 표현을 넘어선 깊이를 갖게 만든다.

 

 

특히 ‘압도적인 벽’ 시리즈는 평면 위에 그려진 구조물과 인물, 그리고 실제로 공간을 침범하는 거대한 벽을 통해 시각적 괴리감을 형성한다. 5전시실을 가로질러 복도까지 확장된 주황색 벽은 작품 '압도적인 벽 아래에서'(2025)의 일부로, 회화적으로 상상된 형상이 전시장 구조 안으로 실현된 방식이다.

 

장식적 표현을 배제하고 색과 면, 규모만으로 구성된 이 벽은 '불편함'이라는 감각을 물리적으로 구현한다. 정삼각형 호수에 빠져드는 라바콘, 하늘에서 떨어지는 콘, 들판 위 낯선 풍경은 모두 익숙하면서도 설명되지 않는 감정의 잔상을 불러온다. 작가는 이러한 구성 안에서 관람객이 각자의 해석을 시도하며, 개인적인 탐색의 여정을 밟기를 유도한다. 

 

 

이어지는 설치작 '들어가지 마시오'(2025)는 대형 트랙 구조물 위에 두 개의 문을 얹은 형태로 구성돼 있다. 관람자는 입구에서부터 트랙을 따라 걷게 되며, 어느 순간 '들어가시오'와 '들어가지 마시오'라는 상반된 지시문을 마주하게 된다.

 

관람자는 이 모순된 구조를 통과하며, 규정할 수 없는 상태로의 이동을 경험한다. 제한된 구조 안을 걷는 행위는 작가가 설계한 비현실의 경로이자, 스스로의 감정과 반응을 확인하는 심리적 경로가 된다.

 

 

2부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은 함미나 작가의 기억과 감정으로 채워진다. 작가는 유년 시절의 단편적 기억을 통해 자신을 치유하고, 관람자에게도 위로의 시간을 전한다. 흐릿하고 모호한 이미지, 과일을 따던 풍경, 숨바꼭질하던 아이들의 표정은 단순한 회상에 머물지 않는다. 회화 속 장면들은 감각의 층위를 따라 시각을 넘어 체온과 냄새, 소리의 기억까지 끌어올린다.

 

 

먼저 '숲' 시리즈에서는 토마토밭, 레몬나무 숲, 나무 사이를 걷는 아이들이 등장하며, 관람자는 그 풍경 속에서 마치 과거의 여름날을 통과하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아이들은 장난감이나 과일을 들고 수호신처럼 나타나기도 하고, 작가의 과거를 지키는 존재처럼 그려지기도 한다. 관람자는 익숙하지만 쉽게 떠오르지 않는 감정의 단면을 따라가며, 자신만의 기억 속 숲을 걷게 된다.

 

또 함미나 작가는 거짓 없이 발산되는 아이들의 감정을 순간의 장면으로 포착해 화면 위에 올린다. '숨바꼭질' 시리즈(2024)에서는 놀이 속 아이들의 긴박하고도 천진한 감정이 살아 숨 쉰다.

 

숫자 세기를 끝낸 뒤 쫓으려는 마음, 숨어 있을 때의 초조함, 뛰노는 사이 달아오른 체온과 그 열기를 식히는 바람의 서늘함까지 이 모든 감각들이 작가 특유의 붓 터치와 색감 위에서 미묘하게 교차한다.

 

배경은 대체로 단색으로 비워져 있지만, 장면 속 아이들은 눈부신 초록빛 들판이나 햇살 가득한 골목 어귀에 있다. 이 대비는 몰입의 긴장감과 감정의 여운을 더욱 부각시킨다. 작가는 단순히 과거를 떠올리는 데 그치지 않고, 어린 시절의 감각을 다시 살아보는 회화적 공간을 만들어낸다. 

 

남기민 수원시립미술관 관장은 "일상의 무게에 지쳐 있다면 두 작가의 작업 앞에 잠시 멈추어 서서 잠재된 보석 같은 순간들을 기억해 보길 바란다"고 전했다.

 

한편 이번 전시는 2026년 2월 22일까지 수원시립미술관 행궁 본관에서 열린다. 상설 프로그램과 정규 도슨트 외의 모든 연계 프로그램은 수원시립미술관 누리집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 경기신문 = 류초원 기자 ]

류초원 기자 chowon@kg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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