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제작 ‘하우스메이드, The Housemaid’에서 주목할 만한 배우는 사실 따로 있다. 주연인 아만다 사이프리드가 소름 끼칠 정도의 광적인 연기를 펼쳤고 또 다른 주연인 시드니 스위니가 아직 젊고 어린 나이에도(1997년생) 놀랄 만한 알몸 연기와 베드신을 선보였지만, 올드팬들에게는 엘리자베스 퍼킨스의, ‘알아보기 힘든’ 노년의 모습(1960년생)이 더 놀랍다. 40년 전 ‘어젯밤에 생긴 일’(1986)에서 데미 무어와 나와 스타덤에 올랐고 영화 ‘빅’(1988)에서 톰 행크스의 상대역으로 나와 인기 절정이었던 배우다. 이번 ‘하우스메이드’에서는 남자 주인공 앤드루(브랜든 스클레너)의 엄마로 나온다. 대사도 많지 않다. 깡마르고 성질이 이상한, 뭔가 정신질환의 근원 같은 느낌의, 늙은 여자로 나온다. 스타도 다 한 시절이 있고 그것은 또 순간 지나간다는 것을 역력히 보여준다.
‘하우스메이드’는 처음엔 오래전, 전설이 된 B급 영화 ‘요람을 흔드는 손’(1992)의 리메이크가 아닐까 살짝 의심이 들게 한다. 일단 안정적인 집안에 가사도우미가 들어오고 그 여자와 집의 여주인, 그리고 그녀의 남편 사이에서 벌어지는 치정 살인극이라는 테두리가 흡사하다. 그러나 조금 더 보다 보면 극의 진행 방향이 다르다는 걸 알게 된다. 무엇보다 원작이 다르다. 아마도, ‘하우스메이드’의 배급사인 ‘라이언스게이트’는 그 점, 곧 ‘요람을 흔드는 손’을 의식했던 듯, 극의 방향을 중반부터, 그러니까 일찌감치, 완전히 트는 영리함을 선보인다. ‘요람을 흔드는 손’은 한 중산층 가정의 여성(애너벨라 쇼라)을 정신적으로 이상한 외부 여성, 곧 타자(레베카 드 모네이)가 공격하고 뒤흔든다는 줄거리였다. 의미상으로는 미국 사회의 보수적 가치가 무너지고 있음을 보여 준 내용이었다. 실제로 당시의 미국은 아버지 조지 부시 대통령에서 빌 클린턴으로 넘어가던 시기였다. 조지 부시는 레이건에 이어 미국을 보수의 요람으로 만든 대통령이다. ‘요람을 흔드는 손’이 두 여성의 대결을 보여주고, 보수와 (혼란스러운) 진보의 대립을 보여줬던 작품이라면 이번 영화 ‘하우스메이드’는 오히려 여성의 연대와 연합을 보여준다는 점, 결과적으로는 남성 대 여성이라는 젠더 이슈를 강하게 내포한다는 점에서 완전히 다른 시대를 대변하는 작품이다. (광기의) 남성 중심 사회는 궤멸하고 (합리적이고 똑똑한) 여성의 시대가 됐음을 여실히 증명하는 것이 바로 이번 ‘하우스메이드’의 내용이다. 그 점 때문에 열광할 수도 있고 바로 그 점 때문에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도 영화의 ‘정치적 내면’을 볼 수 있는 사람들에게만 해당하는 얘기일 것이다. 관객 대다수는 이 영화가 자아내는 미스터리와 서스펜스가 주는 매력에 빠질 것이다. 흥행 포인트가 낮지 않은 작품이라는 얘기이다.
젊은 여성 밀리(시드니 스위니)가 윈체스터 家의 저택에 들어가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안주인인 니나(아만다 사이프리드)가 그녀를 환대하고 이 둘은 곧 밀리가 이 집의 가사도우미로 채용될지 그 여부를 놓고 얘기를 나눈다. 니나는 밀리가 도우미로 일하기엔 이력이 너무 ‘고퀄’인데 괜찮겠느냐고 말하며 곧 연락하겠다고 얘기하지만, 다음 장면은 자신의 고물차에서 ‘차박’을 하며 공용 화장실에서 몸을 씻고 이를 닦는 밀리의 모습을 보여준다. 밀리의 이력서는 다 거짓이다. 그녀는 전과자이며 보호관찰 대상이다. 나중에 알려지기로는 살인죄로 징역 15년을 받았지만 10년을 살다 가석방된 상태이다. 분위기가 어디로 흘러갈지 짐작이 된다. 그러나 이상행동, 이상심리는 밀리가 아니라 니나에게서 시작된다. 밀리가 니나의 집으로 들어와 일하기 시작한 바로 다음 날 주인 여자 니나는 가정부 밀리가 학부모 회의에 쓸 자기 원고를 치웠다며 닦달 수준을 넘어선 난동을 부린다. 이를 보다 못한 니나의 남편 앤드루 윈체스터(브랜든 스클레너)가 간신히 아내를 달래며 상황을 수습한다. 밀리는 이후에도 앤드루의 친절한 도움을 계속해서 받게 된다. 그리고 결국엔 둘 사이에 로맨스가 발아하고, 당연히 염문과 비밀의 정사가 이어지게 된다. 앤드루의 아내, 밀리의 보스인 안주인 니나는 알고 보니 할로페리돌을 복용 중이다. 밀리는 욕실 변기 물에 약 한 알이 잠겨있는 것을 발견하고 니나가 먹지 않고 버린 것임을 알게 된다. 할로페리돌은 조현병 약이다. 조현병 환자들은 종종 걷잡을 수 없이 폭력적인 증상을 보인다. 자학과 가학을 오간다. 밀리는 니나의 손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보호관찰 중이라 이 일이 꼭 필요한 상황이다. 게다가 니나는 밀리가 이력을 속인 것, 살인죄를 저지른 것까지 이미 다 아는 상황이다. 니나의 딸이자 앤드루의 의붓딸인 씨씨(인디애나 엘)도 밀리를 막 대한다. 앤드루의 엄마인 에블린 윈체스터도 밀리에게 불친절하고 기괴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에블린 여사는 니나의 집에 가보 급이라며 도자기 그릇 세트를 가지고 온다. 이 그릇 세트는 나중에 반전의 중요한 동력으로 작용한다. 정원사인 엔조(미켈레 모로네)의 행동도 수상쩍기가 이를 데 없다. 니나와 엔조는 뭔가를 공모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극 후반에 가서 보면 실제로 두 사람이 엄청난 일을 꾸몄음을 알 수 있다. 더 정확하게는, 니나가 꾸미고 엔조는 그걸 돕거나 묵인하는 쪽이었다. 니나의 광기와 집착, 이상한 편집증 증상은 날이 갈수록 더해 가고 이미 밀리와 통정을 한 앤드루는 에라 모르겠다며, 둘 사이를 밝히고 니나에게 이제 집을 나가라고, 그만 썩 꺼지라고, 그답지 않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둘은 씨씨 외에 또 다른 아이, 자신들만의 아이를 갖길 원했지만 니나가 불임임을 알게 되고 불화가 시작되던 터이다. 니나는 결국 쫓겨나고 이야기는 점점 파국으로 흘러간다. 광기의 니나는 과연 피비린내 나는 복수극을 펼칠 것인가.
만약 이야기가 그렇게 흘러간다면 ‘하우스메이드’는 실로 그렇고 그런, 아니 그렇고 그런 보다도 못한, 과거의 TV 아침 드라마, 그것도 막장 드라마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는 영리하게도 중간에 방향을 튼다. 여자 대 여자의 대결에서 여자 대 남자의 대결로 그리고 여자와 여자의 연대와 단합으로 분위기를 반전시킨다. 영화 ‘하우스메이드’는 반전의 드라마이다. 사건의 발단부터 관객의 생각과는 완전히 달랐다는 걸 보여준다. 단, 그것의 억지스러움을 줄이고 개연성의 영역을 넓히기 위해 반전의 순간을 빠르게 준비한다는 것이 다른 반전 드라마와 다르다면 다른 영화이다. ‘하우스메이드’의 전반부는 사건이 벌어지는 이야기이고 후반부는 그 사건에 대한 해설서와 같은 식으로 전개된다. 그렇다면 누군가 저걸 다 짰다는 얘기인데 혼자서 그게 가능할까, 하는 생각으로 앞서 벌어진 모든 일을 복기하게 되지만 별반 허점을 발견하지 못하게끔 상황들을 치밀하게 구성해 놓았다. 그런 점에서 레베카 소넨샤인의 각본은 프리다 맥파든의 동명 소설을 영상화하는 데 있어 탁월한 감각을 선보인 셈이다. 소넨샤인도 연출 출신이다.
아만다 사이프리드는 외모가 아닌 연기력으로 평가받는 배우임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접시를 집어 던지고 발악하는 연기는 사이프리드를 따라갈 수 없다. 아만다 사이프리드는 이 영화 직전에 출연한 ‘세븐 베일즈’(2023)에서 편집증에 시달리는 연극연출가 역을 비교적 무난하게 소화함으로써 내면 연기의 수준을 한 단계 올린 상황이었다. ‘하우스메이드’는 어쩌면 그 연장선상의 작품이다. 남편 앤드루 역의 브랜든 스클레너는 국내에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배우이다. ‘바이스’ ‘미드웨이’ 등에 조·단역으로 나왔고 OTT ‘파라마운트+’의 최고 히트작 ‘옐로스톤’의 프리퀄 드라마 ‘1923’으로 서서히 이름을 얻고 있는 배우이다. 주연인 시드니 스위니도 HBO 드라마 ‘유포리아’로 주목받았다. 브래드 피트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주연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에서 맨슨 패밀리의 ‘스네이크’로 나와 극악한 연기에 일가견이 있음을 보여주었다. ‘하우스메이드’에는 기성 스타들과 라이징 스타급 연기자들이 앙상블을 이룬다. 이 영화 역시 ‘요람을 흔드는 손’과 같은 B급 히트작이다. 심심한 극장가에 재미의 바람을 몰고 올 영화이다. 게다가 여성들이 힘을 합친다. 올바른 정치사회학까지 지녔다. 티켓값은 톡톡히 하는 영화라는 얘기이다. 지난 1월 28일 전국 개봉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