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도 예술인가? 일러스트는 처음에는 광고나 출판물의 내용을 보조하는 실용 디자인이어서 예술이라고 보지 않는 견해가 많았다. 그러나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 같은 전시에 가보면 순수미술에 못지않은 감동과 공감을 부르는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더구나 요즘의 컴퓨팅 신기술에 의하여 탄생하는 많은 이미지들의 퀄리티는 예술과 실용의 구분을 허물어뜨리고 있다. 오늘 소개할 내용은 어린이 그림책 일러스트로 잘 알려진 노라 힐브(Nora Hilb)의 대화하는 일러스트들로 필자의 블로그에서 단 하루에 800개 이상의 덧글이 달렸던 인기 있는 그림들이다. 5월 가정의 달에 진정으로 필요한 건 대화 겉보기에는 멀쩡한 것 같은 가정도 깊이 파고 들어가 보면 남모르는 고민을 가슴에 안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어떤 고민들은 제3자가 보기에는 아무것도 아닌데 당사자에게는 너무 심각하고, 어떤 고민들은 너무 심각해서 두려워지기까지 한다. 그리고 대부분 현대인들에게는 눈에 보이는 문제보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생각, 정신, 갈등과 괴리감, 관계의 문제가 더욱 심각한 것 같다. 가정의 달을 맞아 아이들에게, 부모님에게, 스승에게 선물을 하지만 정말 필요한 것은 진정한 대화가 아닐까? 애정을 가지고 대화하는 순간만은 상대방에게 따뜻한 위로와 이해를 줄 수 있다. 그래서 대화를 하고 나면 얼었던 마음이 녹아내리고 굳었던 마음이 부드러워지고, 돌아섰던 마음이 다시 돌아앉게 된다. 단 한 번의 대화로 모든 문제를 치유할 수는 없고 지속적인 대화가 필요하다. 자기 살기도 바쁜 요즘 누가 자신의 시간을 쪼개어 남을 위해 대화해 줄까 의심스럽지만 그렇게 대화해 주면 자신이 그런 막막한 처지가 되었을 때 분명히 누군가가 다가와 대화해 줄 것이다. Nora Hilb의 그림을 보면서 대화란 저렇게 하는 거구나~ 하는 감동을 느꼈다. 그녀의 그림에서 독자들도 어른들이 어린이들과 대화하는 방법을 배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Nora Hilb Nora Hilb는 수많은 그림책의 일러스트를 그렸다. 그녀는 현재 아르헨티나에 살면서 세계 여러 곳의 출판사에서 책을 출간하고 있다. 그녀와 작업한 출판사는 아르헨티나의 Planeta, Sudamericana, Alfaguara, Aique, Atlantida, AZ, 스페인의 Edebe , Alfaguar, 미국의 Charlesbridge Publishing, Sandvik innovation, 스위스의 Sud Berlag, 캐나다의 Annick Press, Key Porter Books 등이다. 그녀가 주로 그린 유머와 부드러움을 지닌 동물 캐릭터를 통해 따뜻하게 대화하는 아빠와 아기, 엄마와 아기의 상황을 마음속으로 그려보자. 대화가 필요해~ 대화하는 가족들 대화를 할 때에는 서로 마주 보고 깊은 사랑을 나눠주어야 한다. 서로를 깊이 마주 본다면 눈이, 코가, 입술이, 볼이, 머리카락이..... 말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전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아래의 그림은 너무 사랑스러워서 보고 또 보았던 그림이다. 잠을 잘 때도 대화할 수 있다. 따뜻하게 껴안아주거나, 얼굴을 가슴에 묻거나, 팔베개를 해주면, 아이가 잘 표현하지 못했던 말을 가슴에 안겨 아빠에게, 엄마에게 체온으로 전해줄 것이다. 때로는 그들이 무엇이 필요한지 눈여겨 봐두었다가 꼭 필요한 때에 말없이 가져다주는 행동 하나가 더 깊이 있는 대화가 될 때도 있다. 아직 상대방이 마음을 열지 않을 때에는 마주 앉는 것보다는 옆에 앉아주는 것이 좋다. 나란히 앉는다는 것은 상대방을 가깝게 느끼면서도 평등하게 대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나란히 앉아 부드럽게 얼굴을 돌려 쳐다봐주는 건 정말 아름다운 모습이다. 개미핥기와 개미, 서로 잡아먹고 먹혀야 하는 관계이지만 때로는 이렇게 마주 보며 대화할 필요가 있다. 표정과 태도가 얼마나 진지한가 보라. 지긋지긋한 웬수 놈(?)과도 때로는 대화가 필요하다. 나는 이 그림을 국회로 보내고 싶다.^^ 그리고 늘 약자라고 생각했던 상대방의 뒤를 쫓아서 그의 의견대로 묵묵히 따라 해봐 주는 것, 늘 순종만 강요하던 아빠였다면 때로는 아이가 하자는 대로 야구방망이를 들고 공원에 묵묵히 따라 나가주는 것, 어떤 대화보다는 훌륭한 대화이다. 때론 아이가 혼자 달음박질을 치고 싶어 한다. 너무 부끄러워서 숨고 싶은 마음을 이해하고 달음박질치도록 내버려두거나 숨을 곳을 찾아주는 것도 좋은 대화이다. 속상한 일이 있어 고개를 숙이고 울고 있는 아이에게 자꾸 꼬치꼬치 묻지 말고 따지지도 말고, 그냥 다가가 안아주고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숨결을 느끼게 해주는 것. 엄마와 아빠가 가장 잘 해야 하는 대화이다. 아이가 무언가를 하고 있다면 그 시간을 존중하고 바라봐 주는 것 또한. 때로 아이는 달이나 인형과도 대화하고 싶어 한다. 아이가 잠들었다면 괜히 깨운다고 생각하지 말고 살살 들어가서 한 번쯤 얼굴을 쓰다듬어 주는 것. 정말 따뜻한 대화가 아닌가? 너무 바쁜 요즘의 아빠들에게 꼭 필요한 대화이다. 아이들을 위하여 동물 친구를 만들어 주는 것도 정말 좋은 일이다. 강아지, 고양이 등의 동물들과의 사랑 속에서 보호하고 보호받는다는 것을 아이들이 배우게 된다. 고양이의 애교와 개의 충직, 이 두 가지 모두 아이가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것이다. 겁이 많은 요즘 아이들, 비 내리고 컴컴한 밤, 천둥 치는 하늘과도 대화할 수 있다면 두려움이 변하여 새로운 이야기가 생길 것이다. 그림을 그리고, 종이를 접고, 인형놀이를 하고, 아빠가 태워주는 목마를 타고. 이런 일상의 시간 속에서 아이들은 그 모든 대상들과 대화를 한다. "해야ㅡ 이렇게 환하게 비쳐줘, 즐거운 아침이다~" "배야~ 멀리멀리 무사히 흘러가서 꼭 내 소식을 바다 건너편에 있는 친구에게 전해줘." "아가야, 이젠 잘 시간이야, 코~ 자야지?" "아빠, 내 키가 너무 커졌어요 헤헤헤~" 때론 너무 크고 낯설어서 두려운 존재 앞에서 누군가를 보호해야 할 때가 생긴다. 꼬옥~ 아이를, 아내를, 남편을, 애인을 껴안고 "걱정 마 아빠가 있으니까, 걱정 마 내가 있으니까."하고 용기 있게 이야기하면 두려움이 사라지고, 두려웠던 거대한 존재가 우리에게 도움을 주는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된다. 형과 동생은 놀리고 놀림당하고, 싸우고, 화해하고 그렇게 커간다. 그 모든 시간이 그들에게는 너무도 중요한 대화의 시간이다. 큰 강과 같은 세상살이, 험난하고 깊은 강, 그 험한 세상에 다리가 되는 존재. 그 등에 타올라 있으면 안심이 되는 따뜻한 존재. 우리의 아이들에게 부모는, 형제는, 어른들은 그런 존재가 되어야 한다. 이끌어주고 밀어주고, 노는 것이 아이들에게는 가장 중요한 교육이다. 논다고, 맨날 놀기만 한다고 너무 야단치지 말고, 그 놀이 속에 숨겨진 대화와 교육을 이끌어 내어 보자. 책은 평생 동안 곁을 떠나지 않는 좋은 친구이다. 때로는 책 속에서 염소를 만나 대화를 하기도 하고 달님이나 별님을 만나 대화하기도 하고 수 만년 전에 살았던 옛날 사람과 만나 우우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원시인 울음소리로 대화하기도 한다. 모든 대화에는 진정함이 있어야 한다. 어떤가? 그녀의 그림에서 대화의 감동을 느꼈는지? 이 시대가 아무리 가볍고 말초적인 자극에 민감하다고 해도 우리의 가슴이 공허한 것은 진정한 사랑을 담은 깊이 있는 대화가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조금만 더 시간을 내어, 자신의 가장 진실한 표정을 담아 우리 옆의 사람과 대화하여 보자. [ 글 = SG디자인그룹대표. 시인 권은경 ]
우리나라는 헌법보다 국회가 먼저 만들어졌다. 1947년 11월 14일 UN 총회에서는 남북한 총선거를 결의했다. UN한국임시위원단의 관리하에 1948년 3월 31까지 총선거가 계획됐다.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UN은 다시 1948년 2월 26일 ‘한국 가능지역 총선거에 관한 결의안’을 채택했다. 북한이 반대하는 상황에서 ‘한국 가능지역’은 남한을 뜻했다. 이렇게 총선거는 남한만을 대상으로 치러졌다. 우리나라의 제헌의회는 이렇게 구성됐다. 제헌의회의 당면한 숙제는 헌법의 제정이었다. 헌법이 없다는 것은 정해진 정부형태도 없다는 것을 뜻했다. 제헌의회의 정부형태에 대한 초기 논의는 내각제가 유력했다. 하지만 연장자 순으로 국회의장으로 추대된 이승만은 대통령제를 고집했다. 정부형태를 내각제로 선택하였을 때 국내 지지기반이 부족했던 이승만 세력..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이, 총선이 2주 이상 지난 시점에서도, 20%대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일 발표된 NBS 조사(4월 29일부터 5월 1일까지 3일간, 전국 18세 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전화 면접조사, 응답률 14.6%, 표본오차는 95% 신뢰 수준에 ±3.1%p.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에서 나타난 윤 대통령 지지율은, 직전 조사와 마찬가지로 27%였다. 이런 조사 결과는, 이번 영수 회담이 대통령 지지율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이번 영수 회담은 정권 출범 이후 처음 열린 회담이어서, 성과와 관계없이 충분히 지지율을 끌어올릴 수 있는 호재였음에도 지지율이 20%대에 머문다는 사실은, 현 정권에 대한 국민들의 실망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를 짐작케 한다. 상황이 이래서 그런지 몰라도, 야당은 21대 국회 마지막임에도 각종 특검을 들고나오며 여권을 압박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국회를 마무리하는 시기에는 조용히 넘어가는 것이 ‘관례’였는데, 21대 국회 막판까지 야당이 여권에 대한 공세의 고삐를 늦추지 않는 것을 보면, 정권의 기를 확실히 누르려고 하는 것 같다. 이런 ‘이례적 상황’이 연출되는 이유는, 야당의 총선 승리와 무관하지 않다. 즉, 의석수로만 보면 야당이 압승한 것은 분명한데, 이런 기세를 몰아 정권의 기를 확실하게 누르고, 이를 통해 ‘야당’으로 출발한 22대 국회를 ‘여당’으로 마무리하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정부, 여당에 대한 기죽이기는, 상임위 배분에서도 나타난다. 민주당은 법사위원장과 운영위원장 자리도 자신들이 가져가겠다고 주장하는데, 이중 특히 법사위원장 자리를 가져가려 노력할 것으로 보인다. 법사위는 법안 통과의 ‘길목’ 역할을 하는 상임위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에서 민주당이 법사위원장과 운영위원장을 가져가겠다고 하는 것을 ‘이해’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문제가 없다고 할 수는 없다. 국회의 관례를 모조리 무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법사위의 경우, 원내 2당이 위원장을 맡는 것이 관례였다. 국회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국회의장이 1당 몫이기 때문에, 제2당의 목소리와 의견도 충분히 배려하고, ‘의견의 균형’을 맞추겠다는 취지에서 생긴 ‘관례’인 것이다. 그런데 이런 관례를 무시하려 드니,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관습법도 법의 범주에 들어가듯이, 관례 역시 존중되어야 마땅한 존재인데, 법을 만드는 곳에서 마땅히 존중받아야 할 관례가 무시되니, 이는 국회의 기능과 역할에 의문을 던질 수밖에 없는 상황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또한, 소수의 의견을 존중한다는 취지로 존속해 온 관례가, 수(數)를 내세운 다수당에 의해 무시되면, 국회는 ‘민주주의의 보루‘라는 존재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 민주주의의 가치는, 소수의 의견도 배제하지 않고 제도에 반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22대 국회가 심히 걱정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시작도 하기 전의 국회를 걱정한다는 것은, 우리 정치에 희망이 없음을 의미한다.
인천고등법원 설치법이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 7일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제1소위원회에서 인천고등법원 설치법을 심사했지만 소위를 통과하지 못했다. 소위가 열리기 전까지도 인천고등법원 설치법은 통과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예상됐다. 기존 민주당 김교흥(서구갑)·신동근(서구을) 의원이 대표 발의한 ‘각급 법원의 설치와 관할구역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에다 최근 국힘 배준영(중구강화군옹진군) 의원이 인천고법 설치 내용이 담긴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기 때문이다. 여야가 힘을 합친 것이어서 기대감이 컸다. 경기신문(8일자 인천판 1면, ‘한계 벽 부딪힌 고등법원 설치 결국 좌절’)은 부산지역 국회의원이 법사위에서 이른바 '보이콧'을 했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고등법원에 이어 해사법원까지 유치하려는 인천의 움직..
김대중 전 대통령은 “국민이 선거에서 어떤 선택을 했더라도 국민을 탓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선거에 지고 참담해하는 후배 정치인들이 자칫 국민을 탓하는 경솔함을 경계하는 말이었다. 윤석열 대통령도 비슷한 말을 했다. 지난해 10월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 이후 “국민의 뜻은 늘 옳다”고 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의 이 발언은 정치적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말뿐이었다. 불통과 독주는 계속됐다. 국민은 6개월 뒤 지난 22대 총선에서 매섭게 윤 대통령을 심판했다. 혹독한 중간평가였다. 총선이 끝난지 한 달. 자기 확신으로 똘똘 뭉쳤던 대통령의 아집도 조금 꺾이는 모습이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의 영수회담이나 취임 2주년 기자회견이 그 반증이다. 당연히, 수시로 했었어야 할 일들이 뉴스의 중심으로 자리잡는 기막힌 현실이다. 대통령이 얼마나 민심과 동떨어진 행보를 했는지 보여준다. 윤 대통령의 지난 2년간 국정운영은 실패했다. 수많은 원인이 있겠지만, 대통령의 편향된 언론관이 핵심이다. 대통령 취임 후 언론 관련 뉴스는 끝없이 이어졌다. 이런 과정에서 대통령은 국민의 신뢰를 잃은 일부 언론에 매달렸다. 22대 국민의힘 비례 국회의원 김민전의 말대로 전 조선일보 주필 김대중은 언론인이기에 앞서 보수의 큰 어른이다. 85세(1939년 생) 큰 어른은 7일자 조선일보 칼럼에서 ‘대통령이 남은 임기 동안 능동적으로 일하고도 국민의 시선이 차갑다면 자리에 연연하지 말라’는 놀라운 조언을 했다. 이 말이 나오기까지의 논리 전개를 보면 ‘대통령 하야’라기보다는 총선 민심에 위축되지 말라는 말로 들렸다. 그는 이번 총선을 ‘기괴한 선거’라고 평가했다. 아울러 ‘정책보다 대통령의 부인 문제, 경제 정책보다 대파가 선거를 지배했다’고 했다. 한편, ‘이번 총선에서 심판을 받은 당사자는 대통령이라기보다 국민의힘이다’라고도 했다. 더 놀라운 건 ‘윤 대통령은 보수의 대통령이지 국민의 대통령은 희망 사항’이라고 했다. 이런 논리가 국민적 공감을 받을 수 있을까? 건강한 보수까지 등을 돌리게 하는 극보수의 논리다. KBS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 크게 추락했다. 5공 시절 ‘땡전 뉴스’에 빗대 KBS를 ‘친윤 방송의 맏형’이란 비아냥을 듣는 실정이다. 대통령 친화적 보도가 대통령과 국민을 이간시키는 역설을 낳는다. 이번 총선은 전통언론(Legacy Media)이 SNS와 유튜브로 대표되는 새로운 미디어에 완패한 선거다. 조중동은 물론 한겨레와 경향신문까지도 집권당을 도왔다. 거의 모든 방송의 지원을 받았음에도 대통령은 참패했다. 혹자는 말한다. 요즘 사람들이 신문을 보지 않고 뉴스를 외면한다고 근엄하게 꾸짖는다. 꼰대의 훈수다. 이들은 이미 깨어있는 시민(civilized citizen)이다. 뉴스를 비판적으로 선별할 줄 아는 능동적 수용자다. 앞으로 남은 3년. 대통령은 조선일보를 접고, KBS를 멀리해야 돌아선 중도층이 돌아온다.
중소벤처기업부에서 실시한 소셜벤처 실태조사 보고서(‘21년 기준)에 따르면 경영 애로사항 1순위는 자금조달(61.1%)이었으며 2순위는 인력확보 및 운용(17.9%), 그리고 판로개척(12.8%) 순으로 3순위까지 모두 합하면 91.8%에 달했다. ‘사회적 가치 실현’을 ‘경제적 이익’보다 우선시하는 사회적금융은 사회가치 창출을 목적으로 사회적 경제기업에 투자·융자·보증을 지원하는 시스템을 말한다. 사회적금융은 환경·사회·지배구조(ESG) 우수기업을 대상으로 사회책임투자까지 포괄하는 개념으로 최근 들어 민간 영역으로 빠르게 확산하고 있으며, 기업의 창업, 인큐베이팅, 사업화 등 경영 활동 전주기에 걸쳐 자본의 선순환과 지속가능성을 위한 사회투자 방법으로서의 그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경기도가 사회젹경제 생태계의 선순환 구조를 위..
전세사기 피해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안타까운 일이 또다시 발생했다. 벌써 덧없이 스러진 여덟 번째 희생자다. ‘전세사기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에 관한 특별법’(전세사기피해자법)이 지난해 6월부터 시행되고 있지만, 허점투성이다. 여야 정치권의 느리고 무딘 대응에 대한 여론에 날이 서고 있다. 이구동성으로 ‘민생정치’를 외치고 있는 정치권의 헛구호가 한심하기 짝이 없다. 여야는 하루빨리 머리를 맞대고 마주 앉아 답을 내라. 지난 1일 세상을 등진 희생자는 대구의 38살 여성으로 전해졌다. 공개된 고인의 일부 유서에는 “저는 국민도 사람도 아닙니까? 살려달라 애원해도 들어주는 곳 하나 없고…(대한민국은)돈 많은 시민만 살 수 있는 나라입니까? 서민은 죽어야만 하나요?”라는 내용이 담겼다. 유서의 내용이야말로 정부를 신뢰하고 사람들의 선..
한국 사회에서 '정상 가족'이라는 개념은 오랫동안 전통적인 핵가족을 의미해왔다. 부모와 자녀로 구성된 전통적인 가족 형태는 유교적 가치관과 가부장제, 효 중심의 사회적 규범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러나 2010년대 이후, 한국 사회에서는 정상 가족의 틀을 넘어 다양한 형태의 '대안 가족'이 부상하면서, 가족의 정의와 형태에 대한 인식이 점차 변화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대한민국의 텔레비전 드라마와 영화에서도 분명히 나타나고 있다. 정상 가족의 개념은 오랫동안 한국 사회에서 안정과 전통의 상징으로 여겨졌지만, 최근 들어 가족의 형태가 다변화되면서 정상 가족 중심의 규범이 점차 약화하고 있다. 2018년에 방영된 텔레비전 드라마 '나의 아저씨'는 이러한 변화의 흐름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드라마는 부모와 자녀로 구성된 전통적인 핵가족 대신..
평택시는 다양한 복지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1월에는 고독사를 예방하고 사회적 고립 가구에 대한 지원사업 추진을 위한 조례를 제정하기도 했으며 경계선지능인 지원을 위한 간담회 등을 실시했다. 기존 복지정책의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한 과제 발굴에도 적극적이다. 새로운 취약계층 발굴·지원을 위해 다각도의 정책적 접근을 하고 있다. 시민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다양한 복지정책을 마련해 모든 시민이 행복한 도시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것이 평택시의 목표다. 사회복지교육 체험관과 복지테마파크 조성계획도 ‘복지 평택’으로 가는 과정 가운데 하나였다. 시는 지난 2018년부터 2025년까지 다양한 사회복지를 체험할 수 있는 사회복지교육 체험관과 복지테마파크를 조성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지난 2019년 벤치마킹과 기본계획 수립, 2..
고교시절, 이 역사를 읽고서 조선에는 세종 말고는 제대로 된 것들이 하나도 없었구나, 하고 중얼거리며 쌍욕을 했었다. 그 굴욕의 스토리를 오랫 동안 잊고 살았는데, 영화 ‘남한산성'이 상기시켜 주었다.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의 예'를 올리는 장면은 충격적이었다. 잊을 수 없다. 조선의 임금이 저 높은 자리에 거만하게 앉아 있는 청나라 왕에게 절을 세 번 한다. 한번 할 때마다 이마로 땅바닥을 세 번씩 찍는다. 저질정치가 늘 국난의 원인이었다. 그 굴욕은 마치 a파가 b파의 어깨들과 아지트를 초토화시킨 뒤, 혹시나 남아 있을지 모르는 ‘깡다구’ 기질도 깡그리 유린하는 조폭세계의 인수합병 의식과 차이가 없다. 국가간 정치외교도 그렇다. 나라의 대표들이 참모들과 함께 국리민복을 위하여 헌신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미디어가 잠든 시간에 주먹 쎈 쪽의 마음대로 이미 결론을 내놓은 것이다. 점잖고 매끄러운 어휘들로 이루어진 문장으로 힘의 논리를 가리웠을 뿐이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건달들의 법칙이다. 4.10 총선이 야권의 압승으로 끝났다. 부정선거 논란이 없는 걸 보면, 윤패는 이길 것으로, 적어도 반타작은 할 것으로 전망했던 것 같다. 한달이 지났다. 그 사이, 전에 없던 일들이 벌어졌다. 영수회담이 대표적이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15분만에 왔는데, 여기 오는데 700일이 걸렸다"고 말했다. 모두 웃었지만, 웃자고 한 말이 아니었다. 실은 한방 먹인 것이다. 야당이 김건희를 수사하겠다고 압박하는 시간에 검찰이 명품뇌물 사건으로 그녀를 소환하겠다고 한다. ‘서초동파’가 코너로 몰리고 있다. 총선 다음날 아침 일찍, "결과를 2년의 중간평가로 겸허하게 받아들인다. 심기일전하겠다"고 했다면 기본 3점은 할 수 있었다. 본인은 잘못한 게 없다면서 장광설로 망언을 뿜어댔다. 민도는 최고인데, 정치는 최악이다. 그 위대한 씨알들에게 습관적으로 거짓말하고, 수시로 저급한 변명을 늘어놓고, 직무의 전문성이 없는 자파 인사를 고도의 역량을 요하는 자리에 앉혔다. 윤석열은 지난 2년간 나라가 a부터 z까지 전반적으로 얼마나 심각하게 멍들었는지에 대해서 관심이 없거나, 모르는 것 같다. 모든 게 임기응변이다. 상식적인 사람들은 “이러다가 기업체 부도 나듯이 나라가 부도가 나면, 어쩌지? IMF식민통치를 또 받게 되는 것 아닌가?”, 하며 걱정하고 있다. 경제의 성과가 언제나 정치의 성패를 재는 최우선 기준이다. 국내정치 보다 더 심각한 것은 국제정치다. 윤석열은 미국 일본과의 관계만 좋으면, 국제관계는 그 이상 할 게 없다는 태도다. 실력이 없거나 정신이 없거나, 현대판 밀정이랄 수 있는 미국 일본의 로비스트들로부터 세뇌를 당하고 그대로 움직이는 게 분명하다. 다들 알다시피, 우리나라가 중국 러시아와 좋게 지내던 시절에는 세계 6위의 무역강국이었다. 그런데 단기간에 중러관계는 회복불가능할 정도로 망가졌다. 지금 미국과 일본은 윤석열에게 늘 웃으며 너 노래 잘한다, 너 정말 뭐 좀 안다, 하면서 마구 칭찬해준다. 3류 깍두기 취급당하고 있는 것이다. 美日은 점진적으로 우리나라를 회 처먹고 찜쪄먹고, 그것도 모자라 뼈까지 발라먹으려는 ‘조폭’들이다. 그걸 모르고 저질외교를 지속한다면 자격이 없다. 영락없는 망국의 길이다. 알고도 모르는 척하면서 지속한다면, 무슨 고약한 거래가 있는 것으로 의심받을 수 있다. 바이든과 기시다는 윤석열에게 애들 '빵셔틀' 비슷한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 시켜놓고 그걸로 각각 자신의 지지율 높이는 재료로 쓰고 있다. 그러면서도 뭘 제대로 된 걸 준 적이 한번도 없다. 그저 가지고 노는 것이다. 씨알들에게는 다 보인다. 분노와 치욕,우려의 나날이다. 그래서 3년은 길다,가 판을 뒤집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