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이면, 깜깜하고 시린 사월 어느 밤이면, 소주 한 잔 목구멍으로 밀어 넣고 밤바다로 향하는 아비가 있어. 아비의 손에는 까만 비닐 봉투가 들려있지. 철 지난 겨울 양말과 장갑과 내복이 들어있는 봉투 말이야. 바다는 그때의 바다나 지금의 바다나 다를 것 없어. 칠년이라는 세월에도 어김없이 침묵할 뿐이야. 어둠은 수평선 너머로 가라앉고, 그리움만 하얀 띠가 되어 파도처럼 달려들지. 술을 비워도 아비는 취하지 않아. 취할 수 없어. 봉투를 풀어 시커먼 바닷물에 내복을 입히지. 양말을 신기고, 장갑을 끼어줘. - 추웠어? 아비는 바위에 붙은 따개비처럼 밤을 지새워. 술도 목으로 넘어가질 않아. 술에서 바닷물에 흔들리는 해초 냄새가 나. 흔들리는 해초 이파리가 딸의 손가락 같아. 아빠, 안녕. 웃을 때 드러나는 덧니 같아. 교복에 붙은 이름표 같아. 이름표에 새겨진 이름 같아. 딸의 숨소리 같아. 아비는 숨을 쉴 수가 없어. 자식을 잃고도 숨을 쉬고 있는 자신이 죄인 같아서. 때만 되면 고파지는 배가 기가 막혀서. 이런 것도 아비라고 할 수 있을까. 토해내고 토해내도 밤바다는 말이 없어. 목이 쉬도록 불러도 대답이 없어. - 추웠어? 숨이 막혀서, 사월만 되면 잠
코로나19 2년차를 지나가고 있는 우리 사회는 모든 부문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지적·정서적 성장기의 청소년들이 소리없이 신음하고 있는 것이 무엇보다 애처롭다. 최근 한국교총과 한 언론사가 전국 초·중·고 교사 1천여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10명 가운데 7명 정도의 학생이 코로나 이전 학생들에 비해 기초학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응답했다. 또 고3 모의고사 평균 성적이 무려 10~15점이나 떨어진 학교도 있다고 한다. 충격적이지만 충분히 예견된 일이다. 지난해 1월20일 국내서 첫 코로나 확진자가 나온 이후 바로 2~3월에 대구 신천지발 1차 전국 대유행이 시작됐다. 이로인해 새학기 학사일정이 모두 멈췄다. 유치원부터 초중고, 사설학원까지 비정상의 일상화가 이제 1년도 넘었다. 지금도 등교 수업과 함께 진행되고 있는 원격 수업은 부실논란 등 많은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그나마 경제적 조건이나 교육 환경이 괜찮은 일부 학생들의 경우는 코로나 충격에 덜 노출돼 있다. 하지만 지방이나 시골로 갈수록, 특히 부모가 제대로 관심을 기울일 수 없는 자녀들의 경우에는 적응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성장기 자녀들은 클 때는 1년에 10cm 이상
우리의 행위 자체는 우리에게 속해 있지만 그 행위의 결과는 이미 하늘에 속한 것이다. (프란체스코) 우리는 날품팔이꾼이다. 하루하루 열심히 일해서 그날의 품삯을 받도록 하라. (탈무드) 우리의 행위에 대한 결과는 다른 사람이 평가한다. 오로지 지금 이 순간 네 마음을 깨끗하고 바르게 유지하기만 하면 된다. (존 러스킨) 우리가 추구하는 목표가 높으면 높을수록, 또 우리가 노력한 결과를 보고 싶어하는 마음이 적으면 적을수록, 성공할 확률도 더 높아진다. (존 러스킨) 인간의 행위 가운데, 결과가 천천히 나타나는 것일수록 더 훌륭하고 더 가치가 높으며 더 위대한 일이다. (존 러스킨) 만일 네가 자신이 일한 결과를 직접 볼 수 있다면, 네가 한 것은 결국 하찮은 일이었다는 것을 알라. 인간이 자신이 한 행위의 결과를 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결과를 확인할 수 있는 가능성이 적으면 적을수록 그 행위는 중요한 행위이다. 우리는 신의 사업을 행하면서 인간의 대가를 바라고 있다. 사람의 얼이란 것은 온갖 힘의 물둥지다. 모든 냇물이 흘러서는 물둥지에 고이고 또 고였다가는 흘러나서 여러 갈래의 냇물이 되듯이, 사람이 하는 모든 일은 마지막에 한 번은 반드시 정신으로
20년 전에는 우산 없이 등교해서 비가 오면 별다른 수가 없었다. 비 사이로 뛰어가는 축지법을 쓰면 좋겠지만 그럴 능력은 없어서 그냥 맞고 갔다. 어둑어둑한 학교 정문에 학부모들이 우산을 들고 서 있다가 자신의 아이를 향해 걸어오는 모습을 보면 어찌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우르르 쏟아져 나가는 아이들 틈에서 많던 사람들이 다 사라질 때까지 가만히 있었다. 시간이 조금 지나서 나처럼 우산도 데리러 올 부모님도 없는 아이들만 남아 있게 되면 급하게 뛰어서 집으로 갔다. 요즘은 이런 풍경을 찾아보기 어렵다. 학교에서 공식적으로 우산을 대여해주는 사업을 벌이는 곳도 있고, 교실에 남아 있는 우산들이 4~5개씩은 있어서 담임 교사들이 아이들에게 우산을 빌려준다. 없으면 옆 반에 도움을 요청해서라도 아이 손에 우산을 들려서 보낸다. 그러니 아이가 비 맞는 걸 강력하게 원하지 않는 이상 혼자 추적추적 비를 맞으면서 집에 갈 일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봄비가 내렸던 며칠 전 일이다. 퇴근하려고 나가는 데 정문 앞에서 3~4학년 정도로 보이는 아이 하나가 머리를 신발 주머니로 가린 채 비를 맞고 서 있었다. 우산이 없어서 집에 못가나 싶었다. 아이에게 물어보니 태권도
지난 4월 7일이 신문의 날이었는데, 신문이 큰 위기를 맞고 있다. 신뢰의 추락이 그것이다. 편파보도와 허위 선동으로 독자들을 속이고 있다는 오랜 불신에 이어서 부수조작으로 더 큰 신뢰를 잃었기 때문이다. 최근 드러난 대규모 부수조작은, 지금까지 구독의 대가로 자전거와 비데를 제공하고 나아가 현금 살포로 부수를 늘리는 수준을 넘어선다. 최근 방송 보도를 보니 조중동을 비롯한 자칭 우리나라 유수 신문사에서 발행되는 어마어마한 양의 신문뭉치들이 포장도 뜯기지 않은 채 팔려 나간다는 것이다. 이제는 심지어 동남아시아로까지 폐지를 넘겨야 할 만큼 발행부수를 더 늘린 셈인가? kg당 5백원에 팔려나가고 있었다. 신문의 유료부수를 조사하는 기관인 한국ABC공사가 집계한 각사의 유료부수는 정책광고를 수주하면서 정부로부터 받는 요금을 결정하는데, 이 자료 자체가 엉터리이다. 각 신문사가 자신의 부수를 크게 부풀려 허위보고를 하는데도 이에 대한 실사는 하지 않는다. 발행부수가 모두 유료부수인 것처럼 속여 ABC협회에 보고해도 당국에서 그 실태를 검사하지 않고 있는 현 상황에서 누가 순수 유료부수만을 보고할 것인가? 오죽하면 부수공사 사무국장을 지낸 사람이 이 같은 잘못된 관
하남시의회가 올해 서른 살이 됐다. 공자는 사람의 나이 30세를 삼십이립(三十而立·서른 살이 되면 뜻이 확고하게 서고 성숙해진다)이라 했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의 서른은 아직 뜻이 바로 서는 단단한 삶이 아니다. 방황하고 실패하며 책임이 커지는 만큼 미래에 대한 걱정도 많아 서른이라는 숫자가 갖는 의미는 매우 다양하고, 복잡하다. 하남시의회의 서른은 지방의회 부활 30년과 결을 같이 한다. 우리나라의 지방자치는 제헌헌법에 근거가 마련됐으며 1949년 지방자치법 제정을 통해 구체화됐다. 그러나 제대로 꽃피우지 못한 채 1961년 5·16 군사정변으로 지방의회가 강제 해산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다 중단됐다. 이후 1991년 지방자치법 개정으로 지방의회가 부활된 후 2021년 드디어 30년을 맞이하게 됐다. 우선 제8대 하남시의회 의장으로서 지난 1991년 지방자치제 부활과 함께 개원한 하남시의회가 서른 살의 건강한 청년으로 성장한 것을 30만 하남시민과 함께 기쁘게 생각한다. 지방의회 부활 30주년이라는 역사적인 순간을 맞아 지난 30년의 발자취를 되돌아보면, 하남시의회는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주민의 대표자이자, 지방행정의 감시자로 지방자치 발전을 견인해 왔다
부유한 지배계급과 가난한 피지배계급으로 나눠져 있는 세상이란 애초부터 잘못된 거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이 세상은 황금만능주의의 결과 공정한 경쟁이라는 미명 아래 전쟁과 다름없는 생존경쟁의 아수라장으로 변하고 말았다. 부유한 기업인은 말한다. “노동자가 굶어죽는게 나하고 무슨 상관이 있다는 말이냐? 난 약속한 대로 임금을 다 지불했다. 그 이상 나더러 어떡하라는 말이냐?” 카인도 아우 아벨을 죽이고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고 야훼께서 물었을 때, “제가 아우를 지키는 자입니까?” 하고 답했다. 공장주도 그렇게 말한다. “내가 형제인 노동자에게 약속한 임금을 다 치르지 않았다는 말이냐?” (칼라일) 인간은 땅 위에서 땅에 의해서만 살 수 있는 존재이므로, 어떤 사람이 사는 땅을 다른 사람이 빼앗는 것은, 그 사람의 피와 살을 빼앗는 것과 같다. 땅의 약탈에서 생기는 사회제도는 덜 직접적이고 덜 노골적인 뿐, 과거의 노예제도보다 더욱 잔인하고 더욱 사람을 타락시키고 만다. (헨리 조지) 지금 우리는 앞서간 사람들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온갖 편리한 물건 속에 파묻혀 있다. 그러나 우리는 행복한가? 설령 소수의 사람들이 많은 행복을 누리고 있다 치더라
파주 헤이리의 내 작업실을 찾아온 친구가 ‘기분이 울적하니 아무 생각 없이 들을 수 있는’ 풍악을 대령하라기에 경쾌한 월드뮤직 음반을 골라 들려줬다. 두 세곡 뒤 쿠바 민요 ‘관타나메라’ 가 나온다. 제목만으로 바로 후렴구를 떠올리게 하는 노래다. ‘관타나메라~ 과히라 관타나메라~’ 맞다. 그 노래. ‘호세 마르티 생각하면 이 노래를 목록에서 빼야 하는 거 아니야?’ 역사교사답다. 밝은 노래에서 어두운 역사를 바로 잡아낸다. 말 나온 김에 질문했다. ‘체 게바라는 유명한데 체 게바라의 영웅이었던 호세 마르티는 왜 그렇게 안 알려졌을까?’ 민중시각 역사교육, 세계시민의식 부재 이상의 탁견을 청했던 내 진지한 질문을 무색하게 한 답변. ‘외모 차이 아닐까’ 진심인지 유머인지 아직 확인 못해봤다. 호세 마르티는 몰라도 관타나메라를 모르는 사람은 드물다. 국정 음악 교과서에도 실렸으며 마리카스같은 전통 남미 악기를 흔들며 노래하는 모습으로 방송도 많이 탔다. 노랫말을 모르고 들으면 리듬이 경쾌하고 중독성 있어 ‘휴가지에서 들으면 딱 좋을 노래’ 정도로 느껴진다. 제목 ‘관타나메라’도 ‘관타나모에 사는 여인’이란 뜻이니 가볍다. 그러나 스페인어 가사를 번역해 들여다보
가평군이 추진하고 있는 가평 공동형 종합장사시설이 들어설 후보지 공모에 주민들의 관심이 높다고 한다. 가평군은 가평 공동형 종합장사시설 설치후보지 공모 재공고를 내고 오는 5월 7일까지 유치 희망 마을을 모집하고 있다. 재공고를 낸 이유는 1차 모집에 유치를 신청한 3개 마을이 추진 과정에서 유치를 철회하거나, 최종 심의결과 부적격 판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재공모에서는 1차 공모 과정에서 현실적 문제가 제기된 주민동의율을 하향 조정했다. 가평지역은 군부대와 요양원, 펜션 등이 많다. 따라서 단기 거주자가 많은데 1차 공모 시의 ‘주민동의율 70%’를 맞추려면 100%에 가까운 원주민 동의가 있어야 했다. 따라서 재공모에서는 ‘주민동의율 55%’로 완화했다. 가평 공동형 종합장사시설을 공동 추진하는 지방정부는 가평군을 비롯, 남양주시, 구리시, 포천시 등 4개 지역으로 2025년 말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들 지역은 그동안 화장으로 장례를 치르는 경우 성남, 용인이나 강원도 춘천은 물론 인제, 속초 등 먼 지역의 화장장을 이용함으로써 주민들의 불편이 컸다.(본보 13일자 ‘기자수첩’) 그러나 장사시설 건립은 가평군 인구만으로는 이용률이 낮아 비용대비 효율
네덜란드의 저널리스트 브레흐만의 『휴먼카인드』가 화제다. ‘친절한 인간이 살아남는다’(한겨레), ‘인간은 이타적 존재, 성악설은 틀렸다’(중앙 SUNDAY), ‘이기심이 인간 본성? 그것은 잘못된 통념’(조선일보) 등 거의 모든 매체들이 넓은 지면을 할애해 소개했다. 인간의 본성은 선하다고 하는 성선설을 주장하는 내용이다. 다윈의 진화론, 도킨스(R. Dawkins)의 이기적 유전자 등 그동안 생물학 분야에서 밝혀진 과학적 이론들은 성악설이기 때문에 틀렸다고 한다. 역사적 사실들을 그 ‘과학적 증거’라며 제시하고 있다. 이제 진화생물학자들은 이론을 전면 수정해야 하게 되었다. 언론의 상찬이 자자하므로 나는 이 책을 읽을 때 경계해야 할 점을 지적해보기로 하겠다. 처음 사례로 든 골딩의 소설 『파리대왕』을 보자. 사고로 무인도에 고립돼 살게 된 아이들이 그곳에서 지내면서 포악해지는 과정을 묘사한 소설이다. 10세 전후 초등학생 나이의 아이들을 등장시켜 인간의 악한 심성을 부각함으로써 인간의 본성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의도였다. 그에 비해 브레흐만(R. Bregman)이 현실에서 찾아낸 증거로서 이타섬에 표류한 6명의 아이들은 13~16세 사이의 사회성을 익히
박원순 시장의 3선 당시 서울시 전체가 파랗던 것과 달리 이번에 완전히 붉게 물들었다. 여당의 완전 실패다. 지난 해 4월 21대 총선에서 개정선거법에 의한 비례위성정당의 의도를 막고 사회개혁을 위해 거대 여당을 만드는 데에 일조했던 더불어시민당의 당대표였던 입장에서 매우 깊은 책임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촛불혁명에 의한 현 정부의 개혁 시도는 집권 초기 다수 야당의원에 의해 저지되었다. 이에 촛불시민은 기득권 구조개편의 사회개혁을 당청이 함께 추동할 수 있도록 180석에 가까운 여당 탄생에 기여했다. 하지만 1년 후 맞이한 이번 선거 결과는 시끄럽고 지리한 개혁과 희망없는 민생에 지친 시민의 분노를 보여준다. 지난 1년 사이에 사회는 어느 지점에선가 사회개혁 동력을 잃고 있었음을 말해 준다. 개혁은 개선이나 개량과 다르다. 개선은 기존 질서를 존중하며 이성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지만, 개혁은 뜨거운 열정으로 기존 질서를 뒤엎어 새로운 판을 만든다. 기득권의 반발이 없을 수 없다. 개혁이 시간을 끌어 기득권의 조직된 저항이 생겨 시끄럽게 되면서 지체되면, 사람들은 피로감 속에 지치면서 그런 상황을 일으킨 개혁 주체에 부정적 감정을 갖게 된다. 그동안 검찰 개혁
지난 10년간 한국토지주택공사(LH) 임직원 1천900명이 LH가 직접 분양 또는 임대한 주택을 계약한 사실이 불난 민심에 기름을 붓고 있다. 시중에는 “LH가 직원들 기숙사 짓는 기관이냐”는 비아냥이 넘쳐난다. 취약계층에 우선 공급하기 위해 건설되는 나라의 공공주택을 다수의 시행기관 임직원이 차지한 것은 불법 여부를 떠나서 도덕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짓이다. 그야말로 생선가게 맡은 고양이들의 교묘하고 추악한 일탈이다. 늦었지만, 완벽한 제도적 방지책이 마련돼야 한다. 국민의힘 권영세 의원이 LH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1년부터 작년까지 LH 직원 1천900명이 공공 임대주택(279명) 또는 공공 분양주택(1천621명)을 계약했다. 공공 분양주택 계약자 중 31%(503명)는 2015년 LH 본사가 이전한 경남 진주 소재 경남혁신도시지구의 아파트를 분양받았다. 다른 지역 혁신도시 관련 계약자는 644명(39.7%)이었다. 이 가운데 임대 의무기간 10년인 공공임대주택 계약은 모두 233건으로, 수도권이 72%(168건)를 차지했으며 절반이 넘는 93건이 수원 광교신도시에 몰려있다. 광교신도시에서는 2012년 한 해에만 44명이 계약했다. 광교신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