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화골 내려가는 길, 진달래가 비를 맞고 있다. 가지마다 꽃망울이 맺혀있다. 남한산성 아래 법화골은 조선 인조 때 청나라군 유인술에 속아 우리 병사 300명이 몰살당한 곳이다. 상관은 북문을 통해 병사들을 억지로 내몰았다. 뒤에서 머뭇거린 병졸은 현장에서 참수당했다. 북문 현판 전승문은 이런 아픈 기억을 담고 있는데, LH는 그 땅을 파헤치겠단다. 이곳 주민들은 자신들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수없이 집회를 나갔다. 그때 법화골이 얼마나 오랫동안 지속 되어 온 공동체인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남한산성은 2014년도 세계문화유산으로 유네스코에 등재되었다. 법화골 주민들이 사용하던 연자방아 역시 경기도 제82호 문화재로 지정됐다. 하남시는 교산 3기 신도시 재개발로 인해 연자방아를 이전한다고 했다. 천만다행히 존치로 결정 나 그대로 두고 보수공사에 들어갔다. 나는 너무 기뻐 수리를 하는 인부들에게 불 피울 드럼통과 전기를 제공하고 라면을 끓여 주었다. 그렇지만 더는 인적을 들을 수 없다. 어둠 속에서 기침 소리만 듣고도 서로를 알아보던 이웃들은 모두 사라지고 적막만 남았다. 옛날 이곳은 버스가 다니지 않았다. 주민들은 산곡동 미군 부대 군용 트럭을 타고 시내를 오갔
삼성전자는 반도체 부문에서 날개를 다시 펼치고 있다. 지난 몇 년간 힘들었던 국면에서 벗어나 지난해부터 재도약을 추진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메모리 분야에서는 세계 1위 자리를 고수해 왔는데, 파운드리 분야에서 대만 TSMC와 시장점유율 격차가 커져 어려움을 겪었다. 고대역폭메모리(HBM) 반도체에서도 SK하이닉스에 1위 자리를 내주었다. 엔비디아에 HBM을 공급하지 못해 애를 태웠다. 2024년은 삼성전자에 힘든 시기였다. 이재용 회장이 경영진을 독려하고 삼성의 기술 경쟁력을 다시 회복하기를 주문했다. 삼성 반도체는 오랜 기간 메모리 반도체 1위를 지속하여 전문경영진이 시장변화를 꿰뚫어 보는 통찰력을 잊어 버렸다. 이른바 경영진의 늪인 맹점(blind spot)이었다. 이 점이 삼성전자를 힘들게 하였는데, 경영진을 교체한 후 각고의 노력 끝에 과거의 명성을 되찾기 시작했다. 반도체 수율이 회복되고 기술력도 복원되었다. 맹점은 글로벌 1위 기업도 무너뜨리는 고질병이다. 이제 삼성전자 경영진은 미래 산업변화를 제대로 보는 혜안을 장착하게 되었다. 이재용 회장은 지난해 경주 APEC CEO 서밋에 참석한 엔비디아 총수 젠슨 황과 현대자동차 정의선 회장과 함께 깐부
최근 중동전 발발 등으로 에너지 위기감이 깊어지는 가운데 자원 순환 사업을 운영 중인 재단법인 기빙플러스의 활약과 성과가 주목받고 있다. 기빙플러스는 기업의 재고·이월 상품이 단순히 폐기되는 대신 새 생명을 얻어 시장에서 유통되도록 유도하고, 이 과정에서 장애인과 취약계층의 안정적인 일자리를 창출하는 모범적인 선순환 모델이다. ‘기빙플러스’에 대한 호응도를 더욱 높여 긍정적인 역할을 극대화하도록 하는 적극적인 성원이 필요하다. 지난 2017년 첫 매장(석계역점)을 시작한 이 사업은 선도적인 친환경 나눔스토어로서 입지를 다져왔다. 2019년 10호점, 2022년 20호점을 돌파한 데 이어 현재 전국에 28개의 매장을 운영하며 빠르게 확장 중이다. 특히 경기도와 인천 지역에는 인천갈산역점, 인천부평점, 인천논현점, 수원권선점, 성남태평점, 평택안중점 등 다수의 매장이 자리 잡고 있다. 서울 지역에서도 접근성이 좋은 지하철 인근에 매장을 열어 소비자들의 발길을 유도하고 있다. 기빙플러스의 사업 모델은 복잡하지 않지만, 그 효과는 강력하다. 기업으로부터 기증받은 재고 상품을 철저한 품질 검수 후 매장에서 합리적인 가격에 판매한다. 이렇게 하여 발생한 수익은 전액 장
[ 경기신문 = 황기홍 화백 ]
전쟁은 당사국을 넘어 세계적 범위에서 개인의 일상을 파고들고 있다. 뉴스는 연일 공습 지점과 전쟁의 경과, 첨단 무기의 전과 등을 경쟁하듯 보도한다. 세계 지도 위에서 국가라는 장기 말을 옮기듯 중계되는 전쟁 담론 속에서, 정작 전쟁이 개인의 삶, 특히 사회적 약자의 일상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논의는 뒷전으로 밀려나 있다. 국제 정세를 읽는 ‘국가’적 관점도 중요하지만, 그 시선이 놓치기 쉬운 평범한 시민들의 일상에 더 깊은 관심이 필요하다. 전쟁이 과연 누구에게 가장 가혹한 무게를 지우고 있는지 살펴야 한다는 의미다. 우선 전선으로 가장 먼저 투입되는 이들이 누구인지 살펴야 한다. 모병제를 시행하는 미국에서 군입대는 종종 애국심만큼이나 절박한 경제적 선택의 결과다. 학비 마련이나 의료 혜택, 혹은 안정적인 생계를 위해 제복을 입은 젊은 장병들의 상당수는 사회경제적으로 취약한 계층에 속해 있다. 국가의 결단으로 시작된 전쟁에서 정작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이들은, 역설적이게도 사회에서 충분한 삶의 기회조차 보장받지 못했던 청년들이다. 이들은 스스로 입대를 선택했을지라도, 막상 전쟁이 터진 뒤 이를 거부할 권리는 없다. 전쟁에 나서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순간 탈영이
베이비부머 세대가 은퇴기에 접어들었다. 정말 ‘100세 시대’라는 말이 낯설지 않은 오늘날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은퇴’를 끝으로 여기는 삶의 문법에 익숙하다. 오랜 세월 직업과 역할 중심으로 달려온 우리에게 퇴직은 마침표로 느껴지기 쉽다. 그런데 그 마침표 이후의 시간이 생각보다 길다. 준비되지 않은 긴 시간은 축복이 아니라 지루한 외로움으로 다가올 수 있다. 이 점에서 나는 은퇴 후의 ‘버킷리스트’가 단순한 소망을 나열한 유행어가 아니라 삶의 방향을 재구성하는 중요한 도구라고 말하고 싶다. 그동안 ‘무엇을 하는 사람’으로 자신을 정의했다면, 이제는 ‘무엇을 할 사람인가’라는 질문 앞에 서게 된다.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면 자존감이 흔들리고 무력감이 찾아온다. 버킷리스트는 바로 이 시간을 어떻게 살아가겠다는 적극적 선언이며, 미래를 향한 능동적 설계도다. 버킷리스트의 첫째 기능은 삶의 방향성을 회복시키는 데 있다. 직업 중심의 정체성이 사라진 뒤에도 스스로 목표를 설정하고 실행하는 과정은 자기 효능감과 삶의 의미를 회복시키며 자신을 다시 삶의 주체로 서게 한다. 여행지 몇 곳을 적는 단순한 목록을 넘어, 배우고 싶었던 악기, 다시 시작하고 싶은 공부,
학교급식 ‘잔식’은 배식하지 않고 남은 음식이다.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급식을 실시하고 있다. 음식이 모자라지 않도록 넉넉하게 준비하기 때문에 항상 밥과 국, 반찬 등은 남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 잔식들은 음식물 쓰레기 통으로 들어간다. ‘학교급식지침’에 의해 폐기처리 되는 것이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급식 인원이 급격히 변동하면서 잔식이 그대로 버려지는 사례가 많았다. 하지만 최근 푸드뱅크·사회복지시설 등에 기부해 나눔을 확산하고 음식물쓰레기 처리비용을 줄이는 지방정부들이 나타나고 있다. 경기·서울·세종·충남 등의 지역에서는 잔식 기부를 지원·장려하는 조례를 제정·공포했다. 학교 역시 운영위원회 심의 및 협약 체결을 통해 기부를 진행하고 있다.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다. 잔식 기부에 가장 적극적으로 앞장서는 지역 가운데 한곳은 수원특례시다. 시는 학교 측과 협의해 남은 학교급식을 지역 내 취약계층에게 지원하고 있다. 지난 해 8월 시는 수원교육지원청, 수원지속가능발전협의회, 수원시자원봉사센터, 8개 초중고등학교, 광교종합사회복지관·우만종합사회복지관과 ‘수원시 학교급식 잔식 기부사업’ 협약을 체결했다. 이어 학교급식 잔식 기부 시범사업을 추진했다. “급
[ 경기신문 = 박재동 화백 ]
지난 주말 대전 대덕구 문평동 한 자동차부품 제조 공장에서 무려 74명이나 숨지고 다치는 인명피해를 내는 대형화재 참사가 발생해 국민의 가슴을 에게 하고 있다. 경기도에서도 의정부 섬유공장과 안성 원곡면 창고 등에서 잇따라 화재가 발생하는 등 봄철 건조기 화재 경보음이 울리고 있다. 초대형 화재가 아니었긴 해도 산불이 가장 많이 발생한 기록이 있는 지역도 경기도다. 화재 발생을 미리 방지할 수 있는 대책들이 적극적으로 강구돼야 할 시점이다. 지난 20일 오후 대전 대덕구 문평동 한 자동차부품 제조 공장에서 발생한 화재는 사망 14명, 중상 25명, 경상 35명 등 부상자 60명을 포함해 모두 74명이 죽고 다치는 끔찍한 비극으로 귀결됐다. 화재는 공장 내부 절삭유와 기름때, 임의로 마련한 ‘2층 복층’ 구조 등 여러 요소가 작용해 급속히 확산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정밀 조사 결과가 나와 봐야 정확한 전말이 밝혀지겠지만 또다시 조금만 잘했으면 방지할 수 있었던 비극으로 판명될 개연성이 높다. 같은 날 경기도 의정부시 용현동 용현산업단지 내 한 섬유공장에서도 화재가 발생했다. 불은 건물 2층에서 시작돼 건물 상당 부분을 태웠고, 인근 공장으로까지 불길이 번지기도
인류가 겪는 대재난은 어떻게 나에게 전달되고 수용되는가. 매체의 발달로 자연 재앙이든 인위적 재난이든 우리는 그 현상 현실을 빠르고 여실하게 전달받는다. 재난을 어떤 언어(매체)를 통해서 전달·수용 받고 의미화하는지에 따라, 재난을 이성적·감성적으로 처리하고 소비하는 양태에 차이가 있는 듯하다. 러·우 전쟁이나, 미국·이란 전쟁의 내용을 다루는 장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전쟁이야말로 인위적 재난의 앞순위에 놓이지 않는가. 2001년 9월 11일 아침, 알카에다 테러범들이 납치한 여객기를 빌딩에 충돌시키는 자살 공격으로 뉴욕의 110층짜리 세계무역센터 빌딩은 폭발했다. 사망 2996명, 부상 2만 5000명의 피해 장면을 영상으로 보면서도,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이후 사람들은 이 영상 장면으로 수없이 빠져들어 갔다. 그것은 안타까움과 분노를 공유하는 일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놀라움[驚異]에 대한 목격 욕구도 작동하는 것이었다. 이런 현상은 2011년 3월 11일 오후 일본 동북해안에서 대 쓰나미 재앙을 겪을 때도 나타난다. 40m 높이의 쓰나미가 밀려닥치고 2만 명의 사망·실종자를 내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쓰나미에 파묻히는 영상은 지옥도 그 자체였다. 이
얼마 전 ‘지방소멸 전문가’랍시고 ‘경북연구원 생활인구센터’ 현판식에 초대받았다. 행사는 오후 4시로 잡혀 있었기에 아침 일찍 출발해 예천 회룡포 마을을 둘러보았다. 육지의 작은 섬으로 참 아름다웠다. 은빛 백사장, 강물 위 뽕뽕 뚫린 뿅뿅다리. 산을 배경으로 한 작은 호수들. 마을 여인이 모는 빨간 스포츠카. 밭 가는 농부들의 목소리. 이색적인 정취에 젖어 이곳저곳을 거니는 데 한 여행객의 불만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 정자만 가득해. 여기도 정자, 저기도 정자. 어디를 가도 정자 투성이야!” 그 말을 듣고 보니 역시 그러했다. 여느 지자체처럼 회룡포 마을도 문제가 있어 보였다. 인구감소시대, 지자체들은 마을 살리기에 고군분투라지만 정부 보조금으로 덕지덕지 건물만 세운다. 회룡포의 정자들 역시 닮은꼴이다. 영혼이 없다. 어디 그뿐인가? 아이디어를 짜내기보다 카피만 하니 전국의 봄 축제, 가을 축제가 거의 똑같다. 여기도 핑크뮬러, 저기도 핑크뮬러.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짜내야 한다. 이는 뼈를 깎는 품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창적인 개발을 해야지 그렇지 않다면 인구 유인은 어렵다. 이런 관점에서 핀란드의 피스카스(Fiskars)는 우리에게 상당한
[ 경기신문 = 황기홍 화백 ]
얼음 베개를 베고 자려느냐 완전 벗은 몸으로 거리에 서서 겨울을 입고 밤 지새는 겨울나무가 되려 하느냐 사납게 휘두르며 달겨드는 혹한에 맨살을 맡겨 마구 쳐라 해라 내 남루한 의지를 기꺼이 던져 놓으리니 허공을 헤치듯 갈겨 오는 저 하늘의 회초리 그래 나 여기 있느니 빗나가지 마라 - ‘다시 겨울이다’ 부분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시인 신달자 선생의 시 ‘다시 겨울이다’의 두 연 중 첫째 연이다. 겨울이라는 계절을 통해 삶의 순환과 노년의 시간, 그리고 엄혹한 순간을 견디는 의지와 그에 대한 성찰의 깊이를 담은 시다. 이 한 부분만으로도 선생의 시가 가진 섬세하고 치열한 감성, 그 곤고한 심정적 곡절들을 균형성 있게 감당하는 내면 세계를 유추할 수 있다. 시와 에세이, 그리고 소설에 이르기까지 선생의 문학은 여성적 감수성과 자아 성찰, 삶의 고난과 죽음의 절대성에 대한 사유(思惟), 이를 표현하는 맑고 선명하고 절제된 언어로 충일하다. 문필가로서의 연륜이 깊어질수록 사랑과 인생에 대한 수발(秀拔)한 통찰을 담고 있어, 사뭇 친숙하게 독자들과 만난다. 지난해 연말, 12월 4일의 일이다. 경남 거창군 남하면에서, 이 고장 출신의 문인 신달자 선생의 문학을 기리고
2차 세계대전이 막을 내린 1950년대. 미국의 과학자들 사이에는 공통된 두려움이 흐르고 있었다. ‘창의성에 집착하는 시대’의 저자 새뮤얼 W. 프랭클린은 전후 심리학자들이 마주했던 고민의 흔적을 추적한다. 전쟁은 과학기술이 어떻게 반인권적 살상 도구로 전락할 수 있는지 처절히 보여주었고, 과학자들은 그들의 연구가 또다시 전체주의와 독재정권을 위해 쓰이지 않을지 극도로 경계했다. 과학자들에게는 새로운 비전이 필요했다. 당대 심리학자들은 사회의 발전 동력이 국가가 아닌 개인에게 있으며,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진보를 일굴 수 있는 능력이 내재해 있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과학자들은 소수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것을 막고, 특정 인종이나 이데올로기를 앞세운 전체주의에 대항하고자 하였다. 창의성 연구는 그 고뇌의 결과였다. 심리학자들은 창의성이 교육과 훈련을 통해 누구나 계발할 수 있다고 찬양했다. 창의성은 자유롭고 자율적인 개인에 의한 진보를 가능하게 하는, 가장 미국적인 개념이자 국가적 방어 기제였다. 창의성에 대한 예찬은 산업계로까지 확장되었다. 혁신적인 기업은 창의적 인재를 모으기 위해 노력했다. 광고 업계는 영감과 신선함이 넘치는 예술적 집단으로 탈바꿈했다. 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