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권의 마지막 국정감사가 시작됐다. 국정감사가 시작되면 항상 어김없이 등장하는 것이 이른바 “국감 무용론”이다. 이번에도 이런 말들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번 국감은 “대장동 국감”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상임위를 초월하며 대장동 의혹이 핵심 주제가 되고 있기 때문에, 다른 중요한 사안들이 묻히고 있다며 다시금 국감 무용론이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주장에 동의하기는 어렵다. 동의하기 어려운 첫 번째 이유는, 국정감사란 입법부가 행정부를 “정기적”으로 견제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현재와 같이 여당이 180석이라는 거대 의석을 무기로,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밀어붙이는 상황에서는, 국정감사와 같은 최소한의 행정부에 대한 견제 장치는 반드시 필요하다. 정부 여당의 입장에서도 본인들의 정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서 이런 견제는 필요하다. 견제받지 않은 권력은 언젠가는 큰 문제가 터져 몰락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국정 감사는 지난 총선에서 야당을 찍은 적지 않은 수의 유권자들이 느끼는 소외감을 줄일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일각에서는 “180석을 만들어준 유권자의 뜻“이라며 여당의 독주를 합리화시키고 있지만, 이런 표현은
과거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단어가 유행한 적이 있었다. 약 7년 전의 일인데, 그로부터 요즈음까지 정치권에서 일어난 일들을 보면 '비정상의 정상화'는 아직 요원한 것 같다. 이번 “우산 사태”를 봐도 그렇다. 기자의 요청 때문이라는 것이 법무부의 주장이지만, 무릎을 꿇고 우산을 받쳐 든 젊은 공무원의 모습을 보면, 이유가 무엇이든 “이해의 한계”를 넘고 있다. 그런데 진짜 코미디 같은 일은 그 이후 벌어지고 있다. 요즘 대선 후보들이나 당 대표는 너도나도 스스로 우산을 쓰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애쓴다. 옆에 있는 사람이 잠시라도 우산을 받쳐 주려고 하면 손을 뿌리치거나, 우산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팔에 힘을 주는 모습을 TV 뉴스를 통해 쉽게 볼 수 있다. 정말 “애 많이 쓴다”고 표현이 딱 들어맞는 상황이다. 외국의 국가 원수들은 상당수가 자신이 직접 우산을 쓴다. 그것이 여의치 않을 경우에는 그냥 비를 맞는다. 뿐만 아니라, 독일의 메르켈 수상은 업무가 끝나면, 혼자 마트에 가서 장을 본다. 직장인이나 다를 바 없는 모습이다. 이 모습은 더 이상 독일 국민들에게 신선한 모습이 아니다. 독일인들은 그냥 보통사람으로 돌아간 “수상의 일상”이라고 받아들이기
민주주의의 가치는 소수 의견도 제도에 반영하는 것이다. 이런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대의민주주의는 협상과 타협을 원칙으로 한다. 협상과 타협을 통해 민주주의는 소수 의견마저도 제도에 반영할 수 있게 돼, 민주주의 본연의 가치에 충실하게 된다는 것이다. 민주주의가 소수 의견을 반영하는 이유는, 이를 통해 가장 효과적인 제도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소수의 의견까지 반영해 만들어진 제도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뿐 아니라, 설령 제도의 부작용이 나타난다 하더라도 특정 정치 세력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일 없이, 합심해서 부작용을 극복하려 들 것이기 때문이다. 즉, 민주주의 체제란, 협상과 타협에 긴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효율적인 체제라고는 할 수 없지만, 가장 효과적인 제도를 만들 수 있는 체제라는 것이다. 여기서 덧붙여 말하고 싶은 점은, 다수결은 민주주의의 가치가 아닌, 민주주의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라는 점이다. 가치와 수단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수단이 정당했다고 그 결과가 민주주의 기본 원칙과 가치에 충실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지난 18일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여당 단독으로 문광위 안건
지금 여야뿐만 아니라, 각 정당 내부의 대선 주자들 역시도 그야말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을 벌이고 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무기는 네거티브 캠페인이다. 네거티브 캠페인이 중요한 무기인 이유는, 두말할 필요도 없이 그 위력이 막강하기 때문이다. 정치학 이론 중에는 '부정성 효과 이론(Negativity Effect Theory)'이 있는데, 이 이론에 의하면 사람들은 후보에 대한 긍정적 메시지보다는 부정적 메시지를 더 오래 기억한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네거티브 캠페인은, 나라를 불문하고 거의 모든 선거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몇 가지 주목해야 할 부분이 있다. 첫 번째로 꼽을 수 있는 것은, 네거티브 캠페인의 위력이 아무리 막강하다고 하더라도 이를 통해 선거 구도를 바꿀 수는 없다는 점이다. 즉, 네거티브 캠페인은 막상막하인 선거 구도에서는 1위 후보와 2위 후보를 바꿀 수는 있어도, 정권 심판론 혹은 정권 재창출론과 같은 선거구도 자체를 바꿀 수는 없다는 것이다. 두 번째 주목해야 할 점은, 네거티브 캠페인의 소재는 단순 명료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두 마디로 유권자들의 “감정”을 자극시킬 수 있어야만 네거티브 캠페인의 위
요사이 더불어민주당의 대선 경선 과정을 보면, 한 가지 특징적 현상을 떠올릴 수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과거 지향성”이다. 미래를 말해야 하는 여당에서 “과거 지향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도 문제지만, 더욱 문제인 것은 “과거의 잘못”만을 거론하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의 정책이나 정치적 행위 중에도 분명 계승할 것이 많음에도, 잘못만을 들춰내는 과거 지향성을 보이는 것이 문제라는 말이다. 현 정권 들어서 가장 먼저 역점을 둔 사안은 바로 적폐 청산이다. 적폐 청산이란, 문자 그대로 과거의 폐단을 “청산”한다는 것이다. 물론 과거를 바로잡아야 미래를 설계할 수 있다는 논리를 내세울 수도 있지만, 과거의 잘못된 폐단을 단 몇 년간 청산을 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독일의 경우도 그래서, 역사에 관한 문제는 “청산”이라는 단어 대신 “극복”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역사 혹은 과거를 일거에 깨끗하게 만든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사실을 독일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현 정권은 적폐 청산을 내세웠는데, 이 역시 과거 지향성을 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여권의 과거 지향성을 보여주는 사안은 이뿐만이 아니다. 대통령이 사과를 할 때도 보면, 과거
이번 주는 대선과 관련한 슈퍼위크임은 분명하다. 월요일에는 최재형 감사원장이 직(職)에서 사퇴하겠다고 선언하더니, 화요일에는 윤석열 전 총장이 대선 출마를 선언했고, 목요일에는 이재명 경기 지사가 출마 선언을 했다. 이런 행사들이 단기간에 줄을 잇고 있어서, 비교적 손쉽게 대선 주자들 간의 특성과 전략을 비교할 수 있다. 윤 전 총장의 출마 선언문과 이재명 지사의 출마 선언문을 비교하자면 이렇다. 먼저 이재명 지사의 출마 선언문에는 경제가 강조됐다. 이 지사는 “양질의 일자리를 늘리고 국가 재정력을 확충해 보편복지국가의 토대를 만들겠다”고 강조하면서, 규제 합리화와 미래형 첨단 육성시스템으로 기초·첨단 과학기술 육성을 주장했다. 그런데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기본소득에 대해서는 단 1번만 언급됐을 뿐이다. 외교 부분에서도 이 지사는 “국익 중심 균형 외교를 통해 평화 공존과 공동 번영의 새 길을 열겠다”고 말했는데, 이런 발언들을 보면, 2017년 이 지사의 대선 출마 선언과는 많은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2017년 대선 때 등장했던 사드 배치 철회나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와 같은 주장을 이번 출마 선언문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정리하자면, 기본
청와대에 이어 민주당도 2030 세대의 표심을 잡기 위해 TF를 꾸린다고 한다. 돌아선 국민들의 마음을 다시 되돌리기 위해 정치권이 노력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정치권은 여론에 대해 최소한 이 정도의 “반응성”은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 여권의 이런 “부산스러움”이 과연 효과를 낼 수 있을까가 의문이라는 데 있다. 이런 식의 대응이, 본인들의 깊은 문제의식에서 비롯됐다면 당연히 성공하겠지만,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젊은 세대들의 표심을 잡기 위한 임시방편으로 나왔다면, 이들 세대들의 마음을 다시 되돌리기란 역부족일 것이기 때문이다. 과거부터 우리나라의 2030세대 들이 현존하는 정권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지난 군사정권 시절에도, 군사독재에 용감히 맞선 세대들도 이들 젊은 세대들이었고, 그 덕분에 우리나라는 민주화 됐다. 민주화 이후에도 2030세대는, 노무현 정권 시절에는 반노의 입장을 취했고, 이명박 정권 때는 반이, 박근혜 정권 때는 반박 그리고 현재는 반문의 스탠스를 취하고 있다. 이렇듯 2030세대가 현존하는 권력에 대해 반대하는 뜻을 분명히 하는 이유는, 첫째 권력에 의한 피해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거의 예외 없이 등장하는 돌발 변수는 바로 설화(舌禍)다. 이번에도 설화는 여야 가리지 않고 예외 없이 등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설화는 왜 선거 때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것일까? 선거란 권력을 잡기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의례이기 때문이다. 선거란 그런 존재여서 모든 정당들은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인다. 그런데 이렇게 하다보면 오버하게 마련이다. 때로는 방어를 위해, 때로는 상대를 공격하기 위해 오버한다. 설화는 바로 이 과정에서 발생한다. 뿐만 아니라 상대를 공격하기 위해서는 가짜 뉴스도 동원한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모든 국가의 선거에서는 설화와 가짜 뉴스가 등장하는 것이다. 미국도 선거에서 가짜 뉴스와 설화가 종종 등장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미국은 우리보다 설화나 가짜뉴스의 빈도와 강도가 덜하다. 그 이유는 권력의 통제 가능성과 관련 깊다고 생각한다. 권력 통제가 비교적 원활한 국가의 경우는, 권력 추구의 과정에서도 어느 정도 규칙을 지키는 반면, 권력 통제가 비교적 허술한 국가에서는 선거 과정이 그야말로 무한 경쟁이 되기 때문이다. 권력 통제가 이루어지지 않는 국가의 경우는, 지방 권력